•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묵계마을 노인회의 풍경
• 강병두 2009-12-21

  

누집 총각인고?

 

아니요, 할머니! 묵계서원 구경 왔다가 마을 좀 돌아보려고요.

 

그래~~난 또 우리말에 누~집 안고 했제. 그럼 찬찬이 둘러보고 가소

 

할머닌 어니 가니껴?

 

말 노인정에 가니더! 와 총각도 가게

 

언지요, 할머니 모습이 보기 좋아 안카니껴.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니껴?

 

 

늘그이 찍어 뭐할라카노, 안 된데이.

 

하며 손사래를 치다가 이내 옷매무새를 고치고 서시더니 뒤따라오는 할머니에게 빨리 오라고 성화시다. 그렇게 두 분은 카메라 앞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쳐다보신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다 보니 할머니가 꽤 많이 모였다. 노인정으로 향하는 할머니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붙여본다. 몇 마디 말도 채 건네지 않았는데 뒤에서 오던 할머니의 농담 한마디에 모두들 웃음이 터진다. 

 

우리한테는 말도 마이 안 걸두마 젊은 새댁이가 나오니 총각이 말도 마이거네. 차별하나?

 

아이고, 아인데요.'

 

내 웃자고 농담해따.

 

 

마을회관에서는 묵계마을노인회 정기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새 집행부를 선출하기 위해서라지만 모처럼 동네노인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으니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다. 할머니들은 음식준비를 하느라 정담들을 나누느라 바쁘다. 이윽고 할머니들이 준비한 음식과 막걸리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표정이 환하다. 한편에서는 새 집행부를 구성하기 위해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한다. 마을은 한동안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고성이 그치지 않았다. 조용하던 마을은 오랜만에 생기가 넘치고 왁자해졌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60세가 다 되어가는 마을주민들이 회관 밖에 따로 계시기에 여쭤보니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 노인회에 가입하지 못해서란다. 고령화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해서 마음이 짠해왔다. 회관 밖에서 기다리며 일손이 필요한 이곳저곳에서 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문득 잔치분위기가 나는 곳은 젊은 이장이 끼어있는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집마다 담근 술들을 하나 둘 가지고 나와 마치 품평회를 하듯 마시며 자랑하신다. 도라지술, 백봉령술, 더덕주, 등 많은 종류가 나왔다. 가나해진 어른들은 말 수가 많아지지만 유순해 보이는 동네 아저씨는 헛웃음을 띠며 잠자코 말이 없다. 다만 술이 맛없다는 말에는,

 

“됐다. 니는 묵지마라.”
하고 정색하고 다부지게 말한다.

 

 

 

국가유공자 배지를 달고 있는 두 어르신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회의와 술잔치에는 관심이 없는지 따뜻한 양지쪽에서 볕을 쬐고 계신다.

 

어르신은 와 저기 마을잔치에 안 가시니껴?’

 

예전에는 나도 술 꽤나 묵었는데...이젠 힘도 없고 그냥 따뜻한 여기가 낫따.

라는 한마디 하신다. 이젠 늙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서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동네사랑방이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된 구멍가게 아줌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입을 노상 벌려 놓고 있다.

 

 

아지매는 사람 많이 모이고 자꾸 부르면 귀찮을낀데 뭐가 그리 조으껴?

 

와요? 간만에 사람 마이보이 조코 담배하고 까자도 많이 사가이 조치요!

 

하며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젊었을 때 꽤나 많은 사내들이 눈웃음에 넘어갔을 법하다. 공연히 나도 덩달아 비시시 웃음이 나왔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토론에 지친 할배들이나, 덩달아 마실 나온 할매들, 뒤치다꺼리는 도맡아하는 이장님이나, 한잔 술에 거나해져서 객기를 부리는 아재들, 모두 한 동리에서 오순도순 살아온 이웃들이다. 의견이 서로 다르면 옥신각신하기도 하지만 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끈끈한 정이 쌓인 갈등을 풀어지게 한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해봅니다. 

 

 

 

글쓴이 : 강병두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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