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祭礼譜—蝸牛 ⓒ 혼다 히사시

스무 살에 만나서 알고 지낸지 44년이 되는 판화가 친구가 있다. 나처럼 그도 산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숲 속에 ‘그림책의 고향’이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을 지어 운영하고 있고, 나는 감귤 밭에 살면서 작은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가 올해 예슨 일곱, 내 나이 예슨 넷이다.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할아버지지만, 정신만은 둘 다 아직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소년이다.

‘그림책의 고향’에서 판화전을 개최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즈음 ‘그림책의 고향’에서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세계 속의 그림책의 원화전을 열고 있다. 또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산과 들에서 놀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워크숍을 개최하여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교감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 친구는 미래로부터의 선물인 아이들이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길 원해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스스로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놀았던 경험이 없다. 따라서 자연이 지닌 치유력에만 관심을 나타내고, 자연 속에 내재된 무서움과 잔혹함에는 무관심하기 싶다. 또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유행에 비해 정말 느릿느릿한 자연의 변화와 추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정말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자연에 살고 있는 조수충어(鳥獸蟲魚)나 산천초목과의 치밀한 관계를 통해서다. 물론 인간도 그 관계성을 벗어나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설령 어른이라 할지라도 이 관계성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말을 배우기 전인 유아기에서 소년시대에 걸친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조수충어가 배우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배울 수밖에 없다. 매뉴얼이나 텍스트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머리로만 배운 것은 몸으로 체득한 것과는 다르다. 살아가는 것에 우선해서 매뉴얼이나 텍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체험과 경험 후에 매뉴얼과 텍스트가 완성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한 사람의 매뉴얼이나 텍스트가 다른 사람의 매뉴얼이나 텍스트가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내 친구가 아이들과 함께 온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소중한 것”, “죽이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대답을 했지만, 애벌레의 번데기를 밟은 한 아이가 “초록색 물”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벌레와 놀다가 실수로 밟아 벌레를 죽인 아픔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물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한 아이만이 “봄이 된다.”고 대답했다는 옛날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초록색 물”도 “봄이 된다.”도 시이며, 생명일 것이라고 말하며, 이런 파악 방식이야말로 자연과의 깊은 교류를 통해 키워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시를 쓰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출판사를 하는 사람도 「그림책의 고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이런 새로운 발견이 있기 때문에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