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기생수(寄生獸)
- 쑤세미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기생수(寄生獸)
-이와아키 히토시(HITOSHI IWAAKI) 글, 그림
후각이 발달한 애완견이 주인을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속도로에 애완견을 버리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산을 깎아 서식지가 파괴된 짐승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에 부딪쳐 죽기도 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반경 500m내의 소, 돼지들은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살 처분된다. 인간의 환경파괴로 인해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이상기온, 지진, 쓰나미가 몰아친다. 이 지구를 파괴하고 좀먹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오만한 욕망덩어리인 인간에 의해 모든 생물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어졌다. 소수의 인간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봉건주의를 지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는 굶는 사람들이 나오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양날 검’인 인간은 지구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존재다. 인간의 몸에 기생하게 된 기생수를 통해 진정 ‘기생’하고 있는 존재는 무엇인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 있다. 인문학 서적도 아닌 바로 만화 <기생수>이다.
어느 날 인간에게 대량의 정체모를 기생수가 침입한다. 기생수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 때문에 인간의 몸과 뇌를 점령해 다른 인간들을 공격한다. 고교생 신이치의 오른손에도 정체모를 기생수가 침입해 살게 된다. 기생수는 흔히 인간의 뇌를 점령하여 그 종을 말살하지만, 기생수 ‘오른쪽이’는 신이치의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오른손에 기생하여 신이치와 공존하게 된다. 한 육체 속에 두 개의 종이 살게 된 것이다. 신이치는 인간을 해하는 다른 기생수들과 맞서 싸워야 하지만, 기생수들의 입장에서는 인간 또한 자신들 종족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을 해하는 종에 불과하다.
신이치와 오른쪽이는 생존하기 위해 서로 죽이지 못하고 공존하며 오히려 서로를 닮아가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종을 넘어선 우정을 쌓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 신이치에게는 너무 많은 적이 생긴다. 대부분의 기생수들이 신이치를 공격하면서 신이치의 일상은 급격히 무너진다. 기생수가 인간을 점령해 다른 인간을 공격하는 과정은 작가 이와아키 히토시의 음울한 캐릭터와 어두운 그림체를 통해 사실적이고도 잔혹하게 그려진다.
신이치...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두 종류야...”
신이치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의 고통이 아니게 된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기생수에게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느 종 어느 생물에게나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기생수의 등장으로 속수무책 당하게 된다. 기생수와 공존하면서 방학을 보내는 동안, 신이치는 깊어진 눈매와 날쌘 몸놀림을 갖게 된다. 신이치는 자신의 외적 변화와 내적 변화에 서서히 적응해나간다. 평범한 신이치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인류를 구원하는 인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유약한 주인공이 강인한 인물로 변모할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평범한 고교생 신이치는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자신의 삶이 파괴된 이후부터 변한 것이다. 마치 <터미네이터2>의 영악한 문제아에서 지구의 미래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게 된 소년처럼, 혹은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인류를 구원하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말이다. 극한 상황에서 ‘각성’하게 되는 것처럼, 낯선 환경에 내던져진 신이치는 처음엔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결국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그건 신화 속의 주인공이 영웅으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으로 존재 자체를 고뇌하는 안드로이드처럼, 만화 <기생수>는 급격히 무너져가는 인간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기생수 오른쪽이는 ‘인간 최대의 장점은 바로 마음의 여유이며 그것은 무척 근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파괴하는 것도 세상을 구원하는 것도 결국엔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전력질주하고 있으니 세상은 점점 피폐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기생하는 한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남겨진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기생수/ 8권 애장판 완결/ 이와아키 히토시/ 학산문화사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