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만동_영화이야기]세 바보(3 Idiots)
- 김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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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바보(3 Idiots)」
감독 라지쿠마르 히라니
출연 카리나 카푸르(피아) 마드하반(파르한) 셔먼 조쉬(라주) 보만 이라니(비루)... |
자살이 만연한 사회다. 학생이, 교수가, 연예인이, 운동선수가 몸을 던지고, 독을 마시며, 목을 맨다. 저마다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그 자살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경쟁’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한 경우다.
최근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는 경쟁이 사회시스템을 보다 공정하고, 생산적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더욱 건강하고 효율적인 사회적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이며 우애 넘치는 연대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교양’이라는 핀란드의 교육정책은 부럽고 탐나는 남의 떡이다. 교육은 다만 자아의 성취일 뿐이므로 경쟁보다는 협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저들의 생각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 요아힘 바우어의 증명과 통한다. 그는 ‘사회적 결속과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한 삶의 한 요소로 보거니와 지당한 일이다. 신뢰와 애착이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부끄럽고도 한심하다. 지난 발표이기는 하지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0 한국청소년 핵심역량 진단 조사 분석 보고서’에는 한국 청소년들은 다른 나라 청소년에 비해 지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공동체 안에서 이질적인 상대와 협조하거나 동료와 조화롭게 지내는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고 적혀 있다. 민망하고도 서럽다. 우리는 어느 때쯤에나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가장 고갱이로 삼게 될까? 우리 아이들은 언제 비로소 행복한 현실에 발 디디며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짜장 언제쯤에나 옥시토신 팍팍 솟아나는, 즐겁기 그지없는 세상을 살아보기라도 할까? 이참에 생각나는 영화가 ｢세 바보3 Idiots｣이다.
‘2010 부천 국제 영화제’에 ｢못 말리는 세 친구｣라는 제목으로 출품된 이 영화는 지난 2009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인도에서 개봉해 당시 전세계적인 3D영화 ｢아바타｣의 열풍마저 잠재우며 불과 한 달여 만에 인도영화 사상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영화 ｢세 바보｣에는 두 이야기가 겹쳐 있다. 파르한, 라주, 그리고 차두르가 ‘란초’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하나요, 학창 시절 그들과 함께 했던 ‘란초’의 영웅적 일화들이 그 둘이다. 여행이 액자라면 액자 속에 든 그림은 일화이다. 여행이 씨실이라면, 일화는 날실인 것이다. 액자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림은 영웅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파르한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여행 이야기를 해보자. 학창시절 ‘란초’와 함께 어울리며 그에게 감화를 받던 친구들은 졸업과 함께 사라진 친구 ‘란초’를 찾아 길을 나선다. 졸업한지 10년 만이다. ‘란초’를 찾았다는 차두르의 전화에 파르한은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우고, 라주는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뛰쳐나간다.
그리하여 드디어 ‘란초’가 실은 ‘초테’이며 란초다스 샤말다스 찬차드는 바로 정원사로 일하던 초테 아버지의 주인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란초에게서 초테의 주소를 얻어 마침 수하스와의 결혼식장에 서려던 예비신부 피아와 함께 초테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가여운 차두르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바이 어떤 인물인가? 그는 기억력을 증대시키려고 이상한 약까지 먹어가면서 하루 8시간씩 주입식 암기를 하며, 시험 전날엔 꼭 친구들을 방해하던 이상한 캐릭터이다. 비루 총장의 경쟁 체제에 잘 적응하던 경쟁 모범생(!)말이다.
그는 ‘바이러스’ 총장에게 잘 보이려고 스승의 날에 개회연설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나서, 10년 뒤 9월 5일, 누가 더 성공했을지 내기를 하자며 탱크 위에 날짜를 새겼던 것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록클레지 회사의 부회장으로서 난방이 되는 수영장과 단풍나무 마루가 있는 42억짜리 집에 살며, 6496cc 람보르기니를 탄다. 그의 불타는 과시욕이 이 여행의 도화선이다. 경쟁에서 이겼다는 자만 말이다.
이제 영웅과 그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톺아보자. 학창시절 우리의 영웅 란초는 전통이며 관습에 맞선다. 입학 첫날 팬티바람으로 선배들에게 존경을 표해야 하는 학교 전통에 반기를 들고 방문 앞에 ‘소변을 추방’하던 선배를 감전시켜 혼내준다. 또 비루 총장의 맏딸 결혼식장에서는 학력주의, 물신주의, 속물주의의 표본인 약혼자 수하스와 둘째 딸 피아를 통쾌하게 찢어놓는다.
그리고 숨 막히는 교육제도에 맞서 교육의 본질이 정녕 어떠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뻐꾸기 새끼처럼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을 죽여야 한다.”며 학생들을 극한의 경쟁 속으로 몰아넣는 ICE 총장 비루 사하쓰뜨라부띠에게 사사건건 도전하고 부딪혀 끝내는 그마저 바꾸어버리는 것 말이다. 또 한 명의 란초였던, 조이 로보가 과제 제출일을 넘겨 졸업을 못할 거라는 총장의 말에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어 죽자, 점수 잘 받는 방법만 가르치며 학생을 서커스 사자처럼 잘 훈련시키는 것이 대학이 아니며, 대학은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비루 총장을 몰아붙이는 그의 말은 차라리 거룩하다. 졸업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하는 비루 총장에게 점수는 분열을 일으키므로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그의 견해는 참으로 좌뜨기 그지없는 교육학이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의 강요를 어쩌지 못하는 파르한, 자신의 성공에만 목을 매고 있는 가족들에게 발목 잡힌 라주가 결국, 공부는 점수나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므로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뒤따라온다는 란초의 말대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 되는 대목은 또 어떤가!
라주 아버지의 응급상황에서 시험은 많지만 아버지는 하나이므로 아버지를 두고 시험 보러 가지 않겠다는 란초의 의리 가득한 유대는 결국 방황하는 라주를 우정의 옷자락으로 감싸 안는다. 피아에게 전하는 란초의 사랑 고백, 사진과 결혼하겠다는 파르한의 결심, 면접 보러 갈 때 반지를 다 빼 버리겠다는 라주의 선언이 한 뿌리에서 피어난 세 송이 꽃이라는 걸 영화를 본 사람은 다 안다.
주인공 란초, 아니 초테는 그러니까 영웅설화의 영웅성을 그대로 가진 치어난 인물이다. 정원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읜 그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비범한 재능을 갖추었는데, 현실 속의 여러 부조리와 맞서면서 주인 아들 대신 수석으로 학위를 따고는 사라진다. 마침내 다시 만난 그는 400개의 특허를 가진 과학자이면서 교사인데, 바로 록클레지 회사의 부회장인 차두르가 목을 매는 푼수크 왕두이니까 말이다.
델리에서 심라, 마날리를 거쳐 초테의 시골 학교에 이르는 시원한 드라이브 씬의 조감은 보너스다. 라주나 파르한의 취업에 고빈드가 비루 총장의 콧수염을 미는 사건이나, 라주를 위한 시험지 도둑질, 피아 오빠의 자살, 폭우로 전국 도로가 완전히 물에 잠긴 상태에서 란초가 화상카메라를 통해 피아의 지휘 아래 모나의 아이를 받는 일 따위는 이 유쾌한 코미디의 맛깔난 양념이다.
｢세 바보3 Idiots｣는 착하고 순수하며 재미난 영화이다. 순진하면서도 과장된 코믹 연기며, 극의 매듭마다 난데없이 주제를 아퀴 짓는 춤과 노래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때쯤, 영화는 끝이 난다. 16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꾸로 오르는 자막과 함께 신나게 퍼져 나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려본다.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 글쓴이 : 김만동
-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