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陰翳礼讃−梅花 ⓒ 혼다 히사시

그날, 바로 그때 2011년 3월 11일, 바다의 바닥이 갈라져 바다를 밀어 올렸습니다. 엄청난 힘이 밀어 올린 바다는 가공할 힘을 가진 해일이 되어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골골을 샅샅이 엄습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항상 보내던 날, 즉 일상은 ‘늘 보내던 그날이 아닌 날’로 바뀌었습니다.

‘어제’처럼 ‘오늘이’ 가고, ‘오늘’처럼 ‘내일’이 온다고 믿고 있던 세계, 즉 평온하게 지나간다고 생각하던 세계가 커다란 파도가 삼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커다란 파도가 밀려간 다음 우리 앞에 출현한 것은 큰 파도가 밀려오기 직전까지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방금까지 변함없을 것으로 믿었던 일상이 무너지고, 경험한 적 없던 비현실적인 세계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이 비현실적인 세계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평소처럼 이웃과 수다를 떨고, 인사를 하고, 일 하던 사람들도 말을 잃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가축을 잃고,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잃고, 전기, 석유, 물도 끊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처참하게 무너진 세계에 남겨진 것입니다. 사람들 눈앞에는 쓰레기더미가 된 집들의 잔해가 있고, 그 잔해들 위에는 바다에 떠있어야 할 어선, 도로를 달려야 할 차들이 올려져있었습니다. 게다가 원자로가 붕괴되어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세계를 24인치밖에 되지 않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진행 중인 비극의 “끝과 시작”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24인치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는 세계는 허상이므로, 진흙냄새도, 바닷물 냄새도, 분뇨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쓰레기더미에 깔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외침, 비명과 단말마의 목소리도 없습니다. 말과 소의 울음소리나 개나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없습니다.

즉 아비규환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난 마을에는 따분하게 느끼던 조용함도 없습니다. 아비규환도 따분한 조용함도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상상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홍수나 화재나 지진 등의 기억을 불러 깨우고, 그것을 구르는 발판으로 해서 상상을 부풀려보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실은 그들의 것이지 내가 경험한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상상을 멈추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