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안상학_안동이 건네준 시와 말]선어대 나루에서 봄을 기다리며
- 안상학
仙漁暮帆
나는 요즘 강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첫배를 기다리는 꿈을 꾼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강 건너 마을 이름을 모른다.
아는 이도 한 사람 없다.
언 강에 발목 묶인 채 겨울을 나는 저 배
나는 아직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다.
겨우내 마을 사람들이
얼음장 위를 걸어 오가는 동안에도
나는 저 배와 같이 한 번도 강을 건너지 않았다.
물결도 없고 닻도 없는 얼음 위의 정박
봄이 와도 한동안은
강을 오가지 않을 것이다.
반나마 남은 얼음길
반나마 드러난 뱃길
사람들은 한동안 먼 산길을 돌아 오갈 것이다.
저기 저 배의 꿈은 강을 건너는 것
머지 않아 강물은
온전히 몸을 풀고 흐를 것이다.
저 배와는 달리 애당초 나의 꿈은
그 강물을 따라 흐르는 것, 하지만
어느새 나의 꿈도 저 배와 같이
강을 건너는 꿈을 꾸고 있음을
봄을 기다리면서 알았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강 건너 나루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는 나를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을 싣고
저녁 노을진 강을 건너오는 막배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생각한다.
시작노트
봉산 선생이 내가 덤산기를 쓸 때 참조하라고 좋은 글을 보내 주셨다. 덤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선어대나루 대목에 참조하라는 거였다. 이 글은 졸시 <선어대 나루에서 봄을 기다리며-仙漁暮帆>을 읽고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이 속에는 맹자의 한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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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가슴은 어떤 모습이기에 선어대 나루에서 이런 울림을 가지는가? 나는 범상한 사람이라 시인의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고, 줄에 묶여 있는 나루의 배를 보면 {맹자}가 생각난다.
뱃놀이를 하면서 물길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 돌아옴을 잊어버리는 것을 일러 유(流)라하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돌아옴을 잊어버리는 것을 일러 연(連)이라 하며, 아무리 사냥을 해도 싫어함이 없는 것이 황(荒)이고, 술 마시기를 낙으로 삼아 싫어함이 없는 것이 망(亡)이니 선왕들은 유련을 즐기지 않았으며 황망을 하지 않았다.
{맹자}를 읽으면서 몹시 궁금했다. 만약 임금이 작심을 한다면 어떤 즐거움인들 누릴 수 없겠는가? 그 무수한 즐거움 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것이 유련황망의 네 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엄선하고 또 엄선한 그 네 가지 즐거움 중에 강물에 배를 띄우고 노는 것이 두 개나 들어 있다. 그것 참, 도대체 뱃놀이가 얼마나 즐거운 일이기에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다른 모든 즐거움을 밀어내고 동시에 들어 있을까?
나는 유원지에서 보트도 한 번 타보지 않았으니 뱃놀이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자주 선어대를 지나면서도 배를 탈 생각을 않다가 {맹자}를 읽고 난 뒤 꼭 한 번 선어대에서 줄에 매인 배일망정 타 보리라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이제 때가 무르익은 듯하니 약산(藥山, 583m) 문필봉에 휘영청청 보름달 솟아오를 때, 배 띄워놓고 약주 한 잔 하리라. 혹시 아는가? 선녀가 하강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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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련황망!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든, 아니면 거슬러 오르든 그 즐거움에 취해 '돌아올 길 까마득히 잊고마는'(졸시 '안동소주' 중에서)것에 대한 경계다. 또 사냥과 술의 탐닉에도 그침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네가지 즐거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 나아감과 물러섬, 이러한 것들이 어느 일방만 존재한다면 유련하고 황망하기 짝이 없을진저. 그래도 그 속에 허우적대는 내 영혼의 그리움을 맹자에게 들킨 심정이다.
위의 시는 역사의 씨줄, 그 흐름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는 한 시절을 보내고 비로소 역사의 날줄에 덕지덕지 묻어나는 삶의 숨결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에 썼다. 마냥 흘러가기만 한다면, 또 마냥 강가를 서성이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유련황망이랴. 아침에 길을 떠나 저녁에 돌아가는 것의 소중함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영혼의 귀소, 그 아득함이라니.
- 글쓴이 :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당선. 시집으로는 『그대 무사한가』(1991), 『안동소주』(1999), 『오래된 엽서』(2003), 『아배 생각』(2008) 등이 있다.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