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만동_영화이야기]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 (2005)
- 김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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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 (2005)
감독
기본정보 다큐멘터리 ㅣ 168분 ㅣ 개봉 2009. 12. 03
등급 국내 전체관람가
공식사이트 |
지난해 12월 3일 단관 개봉한 『위대한 침묵』이 2월 28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집계로 누적관객 8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10개 가깝던 상영관이 4개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는단다. 2주 뒤에 개봉한 『아바타』의 전대미문한 흥행에 가려 우뚝 드러나진 않았지만, 귀 있는 사람은 이미 다 듣고 있는 이야기이다.
『위대한 침묵』은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로마 카톨릭교 중에서도 위없이 엄격하기로 유명하거니와, 그 중에서도 그랑드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도원일 터인데,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그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필립 그로닝Philip Groning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기까지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이 얽혀있다. ‘침묵의 영상화’를 화두로 처음 작품을 구상했던 필립 그로닝 감독은 1984년 카르투지오 수도회에 영화 촬영 허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나서 카르투지오 수도원 측은 몇 가지의 조건을 들어 촬영을 허가했다. 그 조건들이란 일체의 인공적인 조명이나 사운드를 추가하지 말 것, 수도원의 삶에 대한 어떤 해설이나 논평을 하지 말 것, 스태프 없이 혼자 촬영할 것 등이다. 수도원의 일상을 통해 침묵을 영상화하기로 한 감독으로서는 충분히 동의할 만한 것들이었으므로 그는 수도원 내에서 수도사들처럼 생활하면서 영화를 촬영했다. 수도원의 의식과 일상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때문에 메이킹 필름은 애초부터 없을 수밖에 없었으니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위대한 침묵』은 62회 베니스영화제, 30회 토론토영화제, 22회 선댄스영화제 등 유수한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으며, 바바리안 필름 어워드, 저먼 필름 크리틱스 어워드, 저먼 카메라 어워드 등의 영화제에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휩쓸었다.
좋은 영화는 때로 숨 막히는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쏟아지는 재미로 스트레스를 깨끗이 날려주거나, 미증유의 신비로움으로 상상을 실현시켜주거나, 소박한 감동으로 마음을 맑게 헹궈 주기도 한다. 『위대한 침묵』은 어떨까? 기도하는 젊은 수도사의 옆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 침묵 속에서 보여주는 침묵 저편의 세계를 함께 바라보자.
카메라는 우선 수도사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 곁에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미사하고, 찬송하며, 먹고, 마시고, 종 치고, 공부하는 그들을 가만 바라본다. 그리고 옷 짓는 이, 밥 짓는 이, 물 긷는 이, 장작 패는 이, 씨 뿌리는 이, 물 대는 이들 옆에서 고요히 그들을 응시한다. 그 중간 중간에 수도원의 풍광에도 이슥히 눈길을 준다. 수도원의 눈 덮인 지붕과 창밖 설경, 혹은 낙수와 새싹과 아득한 원경까지도. 수도사들의 삶이 영화의 씨줄이라면 수도원의 공간과 그 공간을 감싸 안은 시간은 날줄이 될 것이다. 프랑스 알프스 그르노블 북쪽 샤르트뢰즈 계곡, 해발 1,300m의 높이에서 1084년부터 지금껏 그들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묵묵히 구도의 길을 걸어온 수도사들의 일상은 참말이지 침묵 속에 있다. 그들의 단조로운 일정은 1,000년 동안 매일 매일 반복되어왔다. 그들은 줄곧 절대자에게 귀 기울여 왔으며, 묵묵히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 왔으므로 앞으로도 줄대 침묵이 유지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상의 어느 성취가 반복 없이 이루어졌던가? 경이란 수많은 반복이 축적된 눈부신 높이인 것을.
침묵을 영상화한 영화지만, 사실 영화 속에는 숱한 소리들이 있다. 사람의 소리도 있고 자연의 소리도 있다. 수도사들의 미사와 찬송, 산책에서의 대화, 종소리와 발걸음 소리, 옷감을 재단하는 소리, 머리 깎는 기계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방문을 여닫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톱질하는 소리, 눈 녹는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따위 말이다. 무성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견고히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하여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하여 침묵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속에 속된 욕망의 소리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독이 숭고한 기다림으로 빚어놓은 위대한 침묵 속으로 들어가 우리는 비로소 욕망의 침묵을 듣게 되는 것이다.
지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드높여 겸손하게 숭고함에 몰두하는 저들의 삶에 어즈버 우리는 옷깃을 여민다. 스크린 밖에서 스크린 속의 저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금욕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하던 우리 마음속에 내재한 높고 그윽한 상황을 시나브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수도원이며 수도사들이지만, 화면을 응시하면서 결국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가슴 한 켠에 밀쳐둔 우리 스스로의 실루엣인 것이다. 사소한 것에 얽매이고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건 가련한 치룽구니로서 자신 말이다.
감독은 편집을 하면서도 굳이 필름을 말끔하게 봉합하지 않는다. 18mm는 HD캠코더와 마주치면서 별다른 변명 없이 자신의 자취를 드러낸다. 수도원 공간을 전체적으로 비추는 큰 프레임과 수도사 개인을 구체적으로 잡아내는 작고 직접적인 앵글들은 그렇게 꾸밈없이 순하게 섞여있다. 말끔하고 화려한 수사의 허구보다는 어설프고 성긴 침묵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여기에도 드러난다.
우리가 언제나 목말라하는 풍요와 편안과 나태와 쾌락으로부터 탈출한 저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인내일까, 아니면 오롯한 행복일까? 16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저마다 숨을 죽였다. 숨죽이다가 영화의 침묵에 기대어 숙면하는 이들도 여럿 보인다. 문득 손가락 끝에 머물던 시선을 좀 더 밀어본다. 거기 달빛이 환하다. 저 거룩한 사람들의 구도 수행이 어쩌면 고통스러운 금욕의 과정이 아니라 황홀한 터득의 과정은 아닐는지.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저들처럼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없을 진대는, 저들이 수도원에서 수행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터에서 온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리라. 사소한 것들에 얽매이고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거는 우리의 삶 또한 우리에게는 그만큼 소중한 것일 테니까.
- 글쓴이 : 김만동
-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