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村心象 ⓒ 혼다 히사시

밤 동안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탓일까, 이른 아침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다. 평소대로라면 삼나무와 대나무 숲이 아침 햇빛으로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을 테지만, 오늘 아침은 짙은 안개에 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그래도 안개를 통해 배어나오는 것처럼 퍼지는 아침햇살. 나는 그 유백색의 빛을 걸치고 산보를 나간다. 시계는 사방 1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익숙한 골짜기의 경치가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언덕을 내려오면 다랑이 논이 있고, 희미한 사람 그림자가 멍하게 서있다.

 
이렇게 안개 짙은 아침에 대체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다가가보니 허수아비였다. 농부의 모습을 흉내 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안개 속에서는 사람과 구분이 잘 안 된다. 

안개 속에 꼼짝 않고 초연하게 서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신비적이고, 마치 천년 정도 서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침묵 속에 서있는 하나의 말뚝처럼 보인다. 거기에서 파문처럼 퍼져가는 정적이 골짜기에 차오른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발걸음도 살금살금 골짜기를 걷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이 세상의 길일까? 나는 어느 사이엔가 다른 세계 속에 섞여버린 것은 아닐까?

그 때였다. 안개 속에서 새하얀 개가 나타났다. 우린 놀라서 멈춰 섰고 눈과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리고는 눈을 외면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뒤돌아보았다. 
그렇지만 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홀로 안개 속에 멈춰 서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가슴 속에서 쓸쓸함이 복받쳐 오른다. 이 세상의 종말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쓸쓸했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눈을 뜨니 안개는 점점 짙어져 정적감도 한층 깊어지고 있다. 

바로 그때 조금 전 지나쳤던 개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마치 신에게라도 매달리듯이 개에게 매달렸다. 개는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내 볼을 핥더니 “따라오라”고 말하는 듯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개의 뒤를 따라서 안개 자욱한 골짜기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