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주치재(挑李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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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주치재(挑李院)
글. 김범선
영양읍에서 투방걸을 거쳐 봉화로 가는 918번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영양읍과 일월면 접경 지역에 위치한 주치재를 만날 수 있다. 주치재는 차로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걸어서 올라가면 이내 숨이 찬다. 지명 표기 시 주치재는 한글로 ‘주치재’라고 표기하며 한자로는 ‘挑李院(도리원)’으로 표기한다. 왜 우리 선조들은 주치재를 한자로 ‘挑李院’이라 표기했을까? 그 이유에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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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라! 난이 진압되었다고?”
조선 영조,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을 진압하기 위해 곡강에서 의성군 도리원(挑李院)까지 말을 달려 온 오삼달(吳三達)장군은 그곳에서 이인좌의 난이 이미 진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크게 실망한 장군은 그의 애마인 번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탄했다.
“번개야, 곡강으로 돌아가자. 이인좌를 죽여 공을 세우려 했더니 공연히 헛걸음만 했구나.”
장군은 하는 수 없이 말고삐를 뒤로 돌렸다. 그의 애마는 하루에 천리 길을 달려 번개라고 불렀는데, 발목이 가늘고 길며 검정색 털을 가진 명마 중에 명마였다.
오삼달 장군은 곡강리(曲江里) 무곡(茂谷) 사람으로 축지법을 사용해 땅을 주름잡아 달리는 장수였다. 곡강은 강물이 굽어서 흐른다고 굽은갱이, 곡강이라고 불렸다. 곡강은 배가 물을 가르며 달리는 행주형(行舟形) 지형으로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 배 바닥에 구멍을 내면 배가 침몰 한다는 풍수설 때문이다. 대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강물을 생활용수로 썼다.
곡강에서 의성 도리원까지 한 걸음에 내처 달려왔다가 성과 없이 발길을 돌리려니 도저히 허망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오삼달 장군은 번개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번개야 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고, 나는 축지법을 한다. 내가 여기서 활을 쏘면 너와 나, 화살 중에 누가 가장 먼저 주치재에 도착하는지 시합을 해 보자꾸나.”하고 오 장군은 주치재를 향하여 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 번개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고, 오장군 또한 지지 않으려 전속력으로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주름잡고 달리던 오삼달 장군이 주치재에 도착했다. 그는 마땅히 화살이 가장 먼저 도착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살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그 때, 그의 명마 번개가 숨을 헐떡거리며 주치재로 올라왔다. 허망함이 분노로 바뀐 장군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번개에게 소리쳤다.
“야 이놈 번개야! 네놈이 꼴찌구나. 나와 화살은 벌써 도착했는데 네놈이 제일 느리구나. 전장에서 내 발이 되어야 할 놈이 이토록 느리다니 이래서야 어디 내 목숨을 지키고 적장의 목을 벨 수나 있겠느냐?” 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단칼에 번개의 목을 쳤다. 말의 목이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장군이 도리원에서 쏜 화살이 날아와 말 위에 툭하고 떨어졌다. 화살이 가장 늦게 도착 한 것이다.
“아뿔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두 동강내어 척금대에 던져 버렸다. 그길로 그는 도인들이 모여 산다는 구도실(도곡)에 숨어 살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옛날 영양읍에서 투방걸을 지나 주치재로 오르는 길은 신작로 1차선 자갈길로, 영양읍에서 5일장을 보고 달구지에 한 짐 싣고 일월로 넘어가는 소는 입에 하얀 게거품을 물 정도로 힘겨운 길이었다. 지금은 주치재에서 읍내를 통과하지 않고 동산 뒤로 우회하는 외곽도로와 읍내로 바로 들어가는 굴다리 도로가 나 있지만, 과거에는 주치재에서 일월면으로 가는 길은 주치채 정상에서 좌측 ⊂자형 도로를 따라가 협곡으로 내려가는 지점에 있는 4m 정도의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아래 흐르는 물은 흘러 척금대에서 합수 되는데, 물살은 오랜시간 그곳을 흐르며 천길 절벽의 좁은 협곡을 만들었다. 평소에도 좁은 협곡에는 물이 흘러 곡강 아이들은 그곳을 놀이터 삼아 가재나 물고기를 잡으며 놀기도 했다.
이 협곡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들이 일월산으로 퇴각 하자, 국군은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추격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깜깜한 밤에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은 최대한 노출을 줄이며 은밀한 전투를 위해 전조등은 켜지 못하고 미등만 켠 채 앞차만 따라가야 하는 상황. 선두트럭이 ⊂ 자형의 도로를 모르고 주치재 정상에서 천길 절벽 협곡으로 직진을 하자 그 뒤를 따르는 트럭들도 같이 직진을 하여 천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 그들의 시신은 후방의 군인들이 주치재에서 기름을 부어 화장을 했다. 하늘로 떠오른 회색빛 재와 연기가 읍내까지 날아와 당시 읍내 사람들은 우물의 뚜껑을 덮을 정도였다고 한다. 곡강에 살고 계시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도 이 참상을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릴 때, 설레는 첫눈이 하늘에서 흩어질 때, 곡강의 어르신들이 잠시 걸음을 멈춰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마른세수를 하시는 것은 풍경의 경이로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래에서 바라볼 때와 다르게 주치재는 속으로 들어서면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숨이 차 입안에서 비린맛이 나는데 고개를 들면 산은 고요히 끝 모를 가파른 경사를 보여준다. 고개는 높고, 멀기만 하다. 재를 넘는 일은 산의 고비를 넘는 것. 고개를 넘을 때 마다 그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마음이 차오르기도 이울기도 하는데, 어느덧 내 뒤에 재가 서게 되면 재를 통과한 ‘나’가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주치재가 건네준 유산을 손에 쥐어보는 건 어떨까? 남풍 부는 이 계절에.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