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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애_영주 문화산책, 지역의 역사인물]부석사에 관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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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부석사에 관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가는 길
글. 안경애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중, 최순우(학고재, 2008년)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알려진 영주 부석사(浮石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지은 전통건축물이기도 하다. 오래전 건축 잡지 『플러스(Plus)』에서 건축가 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당시 “가장 잘 지은 우리나라 고건축” 항목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영주 부석사다.
부석사는 어느 때 가도 좋지만 가는 길은 가을이 좋다. 노란 가로수 은행잎이 발밑에 융단처럼 깔리고 가로수 건너 과수원의 사과가 푸른 하늘아래 붉게 익어가는 것을 보며 오르는 길, 소슬한 바람에 안단테로 유영하듯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으려 손 뻗으며 걷는 길, 부석사 무량수전 가는 길은 낭만길이다.
그 길에서 ‘寺石浮山白太(사석부산백태)’편액을 단 일주문을 지나 좀 더 걷다보면 천왕문 가까이 왼편으로 연화좌대에 ‘부석사 중수 기념비’가 앉아있고 이어 높이 4.3미터의 훤칠한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조금씩 좁아지고, 모서리는 부드럽게 다듬어 끝마무리를 꽃잎처럼 둥글게 공글렀다. 마치 단정히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손처럼 느껴지는 이 부석사 당간지주가 대한민국 보물 제255호다.
당간(幢竿)이란 절에서 큰 행사를 벌일 때 크고 긴 깃발을 매달아 올리기 위하여 길쭉한 철통을 겹겹이 연결하여 만든 높은 장대를 말한다. 그리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한다. 지금부터 47년 전인 1977년 어느 날,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차 편으로 가마니에 싼 무거운 수하물 하나가 배달됐다. 풀어보니 황금빛이 찬란한 용의 머리가 아닌가! 바로 금동 당간 용두였다. 단번에 당간 용두라 알 수 있었던 것은 입 안쪽에 도르래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幢)을 달아 끌어올리는 장치로 당간 두(頭) 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보물 제1410호로 지정되었다. 소장처인 국립대구박물관의 시그니처 모델이기도 한 ‘금동 당간 용두’는 당시 영주군 풍기읍에서 하수도 공사를 하다 발견됐다. 금동 당간 용두의 용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을 옆으로 길게 벌려 여의주를 문 모습이다. 목은 앞으로 내밀어 휘어진 몸통에는 두 가닥 선으로 촘촘히 비늘과 주름을 음각하였고, 각 비늘마다 안쪽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워 당시의 우수한 예술성을 말해준다.
더욱이, 목과 만나는 입 안쪽에는 도르래가 장착되어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역동적인 용이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 금동 당간 용두는 9세기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당간 두(幢竿 頭)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형미 또한 가장 뛰어나 통일신라 전성기의 금속공예 기술이 잘 발휘된 걸작 중 걸작이라고 한다. 특히, 매우 희귀한 계룡형(鷄龍形)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계룡형 당간 두(頭)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당간 두(頭) 중 유일하다고 한다.
영주에는 부석사 당간지주 뿐 아니라 보물 제59호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소수서원에 있고, 같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높이가 4.2m의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毘盧寺) 소재 ‘영주 삼가동 석조당간지주’도 있다. 당간지주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소수서원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3.65m, 부석사 당간지주는 4.3m이다. 참고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6호 경주 불국사 당간지주는 2.9m이다.
영주시 풍기읍에서 출토된 보물 제1410호 ‘금동 당간 용두’를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나 ‘소수서원 숙수사지 당간지주’, 풍기읍 삼가리 비로사 소재 ‘영주 삼가동 석조당간지주’ 등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 앞에서 무량수전 석등 앞까지 계단은 총108개로 속세의 번뇌를 떨쳐버리고 오라는 의미가 있다. 천왕문을 지나 평평한 오르막길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회전문이다. 멋스럽게 휘어진 회전문 나무 문턱을 프레임 삼아 앞의 누각 범종루(梵鐘樓)를 사진에 담아보자. 이곳이 부석사 사진 스팟 중 한곳이다. 회전문을 지나면 동·서로 쌍둥이 같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여기서 다시 몇 계단을 오르면 ‘봉황산부석사(鳳凰山浮石寺)’ 편액을 단 범종루가 우뚝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범종루는 소백산을 향해 날아갈 듯 앉아있는 건물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통건축물은 앞면이 좌우로 길고 측면은 짧다. 그런데 범종루는 앞면은 짧고 측면이 길다. 범종루는 측면으로 앉힌 건물이다. 특히, 건물 앞면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뒷면의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범종루 한 건물이 두 가지의 지붕을 가졌다. 팔작지붕 앞면과 맞배지붕 뒷면의 범종루는 소백산을 향해 비상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건물이 무겁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게 해준다. 특히, 무량수전 마당에서 앞을 바라보면 대목장의 센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범종루에는 종(鐘)은 없고 오래된 법고(法鼓)와 목어(木魚), 운판(雲版)이 있다. 현재 부석사 범종은 신축한 범종각에 새로 조성했다.
범종루 아래를 지나면 꽤 널찍한 마당이 나오는데 마당 왼쪽 끝 석축 단 아래 식수대 옆으로 괘불지주 한 쌍이 있다. 괘불은 야외 의식이나 야단법석(野壇法席:야외에 단을 세우고 펴는 설법 자리)에 걸기 위해 제작한 대형 불화(佛畫)다. 1684년 부석사에서 제작한 ‘부석사 괘불’은 현존 괘불 중 시대가 앞서고 펼친 높이가 9.2m에 달하며 화폭에는 67명이 정연하게 자리한 설법 모임을 그렸다. 세분의 부처를 표현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괘불의 화기(畵記)에 1684년(숙종10) 부석사에서 제작해 1745년(영조21) 중수, 청풍 신륵사로 보낸다는 기록이 있는 ‘부석사 괘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부석사 소장 보물 제1562호 ‘영주 부석사 오불회괘불탱’은 1745년 제작한 괘불이다. 이것은 기존 괘불의 보수와 새 괘불의 제작이 동시에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괘불지주 옆 식수대에서 목을 축이고 고개를 들면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보인다. 안양루(安養樓) 앞에서 보니 누각 아래쪽엔 안양문(安養門), 윗층 처마 밑에는 ‘부석사(浮石寺)’ 편액이 걸려있다. ‘부석사(浮石寺)’ 편액은 1956년 부석사를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이 안양루 누각 위에는 건축물의 추녀 밑에 지붕을 받쳐주는 공포 사이에 여섯 분의 공포불이 계신다고 한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위치한 누각으로 ‘안양(安養)은 극락’을 의미한다. 부석사 안양루 중창기 등의 의하면 원래 강운각(羌雲閣)이라는 단층 건물이 있었으나, 1555년(명종10) 화재로 소실되어 1596년(선조9)부터 1598년(선조11)까지 석린(石麟)스님이 안양루를 그 자리에 중창하고 사명대사가 중창기를 썼다.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37세 젊은 나이에 ‘부석사 안양루 중창기’를 쓰면서 안양루의 풍광을 이렇게 읊었다.
안개가 끼고 서리가 내린 가을,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으면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며, 길은 천리가 되며 몸은 푸른 하늘 위에 있어 하늘에 올라 구름에 타는 듯하다.
서쪽으로 소백산을 바라보면 저녁비에 고운 빛깔은 등왕각의 운치가 있고 동쪽으로 청량산을 바라보면 가을 구름이 자욱해서 종산의 맛이 나니 길손은 고향을 생각하게 되고 외로운 신하는 나라 걱정을 하며 임금을 그리워하게 된다.
도사(道士)가 이곳에 오르면 환골(換骨)하지 않아도 곧바로 찬바람을 타게 될 것이요. 승려가 이곳에 오르면 공력을 들이지 않고도 선정(禪定)에 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누각 이루어짐으로 인해 갖가지 즐거움이 구비되거니와 하필이면 어진 이름을 얻은 이후에야 이를 즐길 것이다. 하늘에 올라 구름에 탄 것 같은 기분이 사로잡히는 곳
안양루 아래 돌계단을 오르면 단아한 자태에 섬세한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석등을 마주하게 된다. 국보 제17호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는 “무량수전 앞 석등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감정은 단아한 기품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러나 이 석등의 조각은 완벽한 기법의 형식의 힘이 받혀주고 있기 때문에 화려하면서도 단아하다.”라고 극찬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되어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 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부석사』, 김병연(김삿갓) -
안양루에서 바라본 경치에 취한 방랑 시인은 ‘부석사’라는 시문을 남겼다. 누각 내에 김삿갓이 쓴 한시 편액이 걸려 있다.
안양루를 지나면 한국 건축의 백미 부석사 법당 무량수전(無量壽殿)이 나타난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 건물은 고려 1016년(고려 현종7)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건물이다. 1358년(공민왕7)에 왜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서 1376년(우왕2)에 다시 짓고 조선 1611년(광해군3)에 수리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해체하여 수리했다.
국보 제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팔작지붕 주심포 양식, 배흘림기둥으로 기둥머리 지름 34cm, 기둥 밑 지름 44cm, 기둥 가운데 배흘림 부분 49cm로 간결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준다.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국보 제45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소조상(塑造像; 진흙으로 만든 불상)으로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어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무량수전의 나무 바닥은 원래 녹유전(綠釉塼;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이라는 전돌이 깔린 바닥이었다. 유리와 같은 광택의 녹유전은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부석사 성보박물관에는 무량수전 바닥에 깔려있던 녹유전을 재현해 놓고 있다. 무량수전 좌우로는 부석사 창건설화를 간직한 부석(浮石)과 선묘 아가씨의 사당 선묘각(善妙閣)이 있다.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은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글씨다. 홍건적 침입으로 안동으로 피난 온 공민왕이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휘호한 것을 새긴 것이다. ‘무량수전’ 현판 뒤에 다음과 같은 묵서명이 남아 있다.
“금당의 글씨는 공민왕이 쓴 것이다. 〈중략〉 신미년(1691) 여름엔 이 절 화승 영필이 마음을 내서 액자 테두리를 다시 만들었다(金堂題字, 恭愍王之親筆也, 〈중략〉 到于辛未孟夏間, 寺畵僧瑛珌慨然傾心四雪角改造也)”
묵서명의 글씨는 공민왕의 것이고, 편액의 테두리는 17세기 후반에 보수한 것임을 알려준다.
어느덧 저녁예불 시간이 다가 오나보다. 스님 두 분이 천천히 범종루에 오른다. 다가오는 가을,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부석사를 다시 찾으리라. 그때는 의상대사가 거처하셨던 조사당과 건너편 나한상을 모신 단하각(丹霞閣)과 웅진전 그리고 자인당(慈忍堂)도 둘러보리라. 안양루에 계신 공포불(栱包佛)도 친견(親見) 할 수 있기를 ...
- 글쓴이 : 안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