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학_안동이 건네준 시와 말]자력갱생
• 안상학 2009-12-08

  자력갱생

와룡으로 들어가는 길목 좌우로 남근바위와 치마바위가 마주 서 있게 된 까닭은 동네 여자들 극심한 바람기가 바람에 날리는 치마 형상을 한 바위 때문이라 하여 건너편 둔덕에 남근바위를 세워 바람기를 잠 재웠다는 게 정설,

自力更生, 70년대 대통령이 도산서원 가는 이 길을 특별 포장하며 그 치마바위 한가운데 또박또박 해서체를 새겨 넣었는데 그 뜻을 스스로 힘으로 다시 한 번 세워보란 의미로 확대해석하는 자가 늘어날수록 마을 사람들 가슴은 타들어갔지만 다 나랏일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끙끙대기만 했다는 낭설 또한 만만찮았는데,

근자에 들어 도로 확장공사를 하다 남근바위가 무너지자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반년 동안 공사를 중지한 채 남근을 바로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여 치성을 드린 후에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는 게 또한 정설이고 그 탓에 수풀 무성한 곳에 매복해 있던 남근바위가 민둥민둥한 잔디밭에 달랑 올라앉은 격이 당최 어린 놈 뭣 같아서 바람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라는 게 또한 낭설 짜한,

자력갱생을 잊은 용이 아직도
발라당 누워 있다는 내 고향 와룡아
언덕이 아름다워 가구리라는 외딴 골짝아
봉긋봉긋 어매 아배 누운 지도 한참인 둔덕
망부석 세우지 않는 까닭은 나만 아는 전설이란다. 

[시작노트]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고개를 두 번 넘어서 내려가면 좆바위와 치마바위가 좌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야천에 치맛자락을 적시고 있는 치마바위는 오른쪽에 있고, 건너편 언덕에 좆바위가 불알 두 쪽으로 삼은 바위 위에 포신처럼 걸려 있다. 정확하게 치마바위의 가운데를 겨냥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좆바위에 치마바위를 자웅석(雌雄石)으로 뭉뚱그려 표기해 놓았다. 따로따로 이름은 불알바위와 치마바위다. 불알바위라. 점잖은 표현이다. 더 점잖기는 담긴 이야기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달리 기자석(祈子石)으로 풀고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석을 굳이 치마바위 앞에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선돌은 비보다. 좆바위를 굳이 치마바위 앞에 세운 것은 비보풍수에서 나온 발상이다. 내 시의 내용이 맞다.

2009년 12월 7일 현재, 치마바위에 새겨놓은 ‘自力更生’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붉은 페인트도 선명하고 깊던 음각이 어찌된 일인지 식별이 잘되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그새 풍우에 다 닳았단 말인가. 치마를 벗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살펴보련만 족탈불급, 내를 건너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 보니 뜻밖의 답이 나왔다. 누군가 시멘트로 메워 놓은 것이다. 뚫어진 양은냄비를 때워놓듯 말이다. 自자만 겨우 알아차릴 수 있고 나머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 이름도 지워져 있다. 누가, 왜 그랬을까. 시원섭섭한  섭섭시원한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18살에 아버지와 혼인했다. 35살까지 살다 가셨으니 17년 정도 같이 사셨다. 사별한 지 25년 만에 아버지도 어머니 곁에 묻히셨다. 생각해보니 같이 합방하신 지 10여년이 지났다. 회포를 푸셨는지 알 길이 없다. 가난과 오욕으로 등진 고향에 다 늦어 돌아가셔서 기분은 어떠실까. 저 세상에서나 사이좋게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쓴이 : 안상학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당선. 시집으로는 『그대 무사한가』(1991), 『안동소주』(1999), 『오래된 엽서』(2003), 『아배 생각』(2008) 등이 있다.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