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상주 은자골마을
• 이선아 2009-12-08

 

두부처럼 보였지만, 하얗고, 네모난 백설기였다.
“먹어.”
나는 백설기 비닐봉지 속에 얌전하게 담겨 있는 백설기를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마르고 뻑뻑해서 잘 씹히지 않았다. 입 속에 넣고, 물고 있었다. 천천히 씹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쌀가루가 혀에 감겼지만, 단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피비린내가 입 안에서 느껴졌다. 입안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
“다 먹고 하자.”

 

강 형사가 낮게 속삭였다. 백설기를 내 앞으로 밀더니, 종이컵에 물을 한 잔 받아 가져다주었다. 내가 비릿한 백설기를 꿀꺽꿀꺽 삼키는 동안 50m 정도 떨어져 있던 남자가 길길이 뛰었다. 형사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철제 의자가 내 머리를 강타했을 것이다. 남자는 분을 삭이지를 못하고,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더니, 결국 자신의 눈가로 흐르는 피를 보고, 내 멱살을 쥐었다. “이 새끼 너 오늘 죽었어.”
“조용히 좀 하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만있는 사람 먼저 시비 걸고, 때리더니……. 죽어도 지가 잘 못 했다는 말 안하잖아.”
“가만있었던 건 저에요. 술 마시고 먼저 덤빈 사람이 당신이구요. 포장마차 아저씨한테 물어보세요.”
“너 상습범이지? 사람들한테 시비 걸고 돈 뜯어내고. 들어보니, 밥 처먹고 쌈질만 한다면서?”
나는 이 사이의 백설기를 혀로 감아 모아서 다시 씹어 삼켰다.
“내가 밥 처먹고 쌈질만 하면, 너는 지금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고 있어.”
“어디서 주둥아리를 나불대? 사람이 이 지경이 됐는데, 사과 한 마디 없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저는 죽어도 합의 못합니다.”
“쪽 팔리냐? 피도 안 마른 새끼한테 맞아서, 아침부터 대가리에 피나 질질 흘리고 있으니?”
내가 눈을 허옇게 떴다.
“뭐라고, 이 호로 새끼가 뒤질라고...”
남자가 부들부들 떨더니, 내 옆구리를 찼다. 숨이 턱 막히더니, 앞으로 꼬꾸라졌다. 
얼굴로, 배로, 가슴으로 남자의 발길질이 느껴졌다. 시멘트 바닥으로 검붉은 피가 흘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렸고, 괴성이 오갔으며, 서류철과 재떨이, 먹다 남은 백설기가  내 눈앞으로 떨어졌다. 경찰서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개새끼. 떡도 덜먹었구먼.’ 떡은 아직 입에 반이나 남아 있었고, 엄마는 음식 남기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가을햇살은 그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했다. 여름의 그것처럼 번들거리거나 거만하지 않았으며, 봄의 그것처럼 야속하지도, 겨울의 그것처럼 아쉽지도 않았다. 구부리고 펼 수 있는 몸통으로 지붕위로, 땅위로 우아하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날렸으며 누군가의 등을 덥혔다. 노란색 체크 남방 위에 얼굴을 묻었다. 햇살에 잘 마른 빨래비누의 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비 갠 뒤 짧게 보이는 무지개의 향처럼 새침하고, 영롱하며 신비로웠다.
“똑바로 앉아. 기대지 말고.”
엄마가 앙칼지게 쏘아붙이더니, 한쪽 어깨로 나의 얼굴을 밀어냈다.
“나 아파.”
“그렇게 맞았으니 아프지. 똑바로 앉아. 내가 못살아, 못살아. 넌 어째 허구한 날 쌈박질이냐. 내가 경찰서에 해다 바친 백설기만 해도 쌀 열 가마는 넘겠다. 집에 가서 보자. 각오해라”
“싫어. 아파.” 나는 다시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은비 보기 창피하지도 않니?”
“은비, 유치원 갔다 왔어?”
“병원 갔다 왔어. 감기래. 지금 자.”
“엄마는 애 하나 못 보고, 뭐야?”
“이노무 자슥. 그렇게 잘 보면, 네가 집에서 보던가. 경찰서가 제 집인 줄 아니, 동생이 아픈지, 엄마가 아픈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엄마도 아파? 뭐 한다고?”
“뭐? 야! 너 내려.”
엄마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뺏더니, 정말로, 혼자 가버렸다.
‘줘도 안탄다. 속도가 70km도 안 나오는 고물오토바이.'
늑골이 뻐근하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에이. 집까지 언제 걸어가나...’
엄마는 달달거리며 오토바이와 떠났고, 시냇가의 물은 졸졸거리며 흘렀다. 나는 어디 가서 호루라기를 삐익 삐익 불고 싶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다. 새벽, 이맘 때 사위가 고요하고, 창밖에서 비치는 시퍼렇고, 낯선 빛이 방안에 깔리기 시작하면, 천장의 격자무늬 부엉이가 눈을 뜨고, 벽지속의 톱니바퀴가  째각거렸다. 이불을 끌어 덮고 모로 누웠다. 이제 10분 쯤 지나면, 엄마가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잘 덮어주고 다친 곳에 약을 발라 줄 것이다. 나는 계속 잠든 척을 할 것이고, 엄마가 나갈 때 까지 내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엄마가 조용히 나가고 나면, 나는 못 다 쉰 숨을 몰아 쉴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찰싹하고 팔을 때렸다.

 

 

“아야.”
“일어나.”
“아야, 왜 또오?”
“일어나서 나가.”
“어딜? 청소하게? 내일 해. 나 오늘 잘 거란 말이야.”
“나가서, 합의금이랑 치료비 벌어와.”
“뭔 소리야?”
“어제 합의금이랑 치료비, 포장마차 수리비까지 다 벌어와. 네 뒤치다꺼리 이젠 더 못하겠다.”
“어디 아파? 왜 그래?”
“잔소리 말고, 당장 일어나서, 싸움만 빼고, 무슨 짓이든지 해서 벌어와.”
“뭘 어떻게 벌어? 식당 일 도와 줄 테니까 그걸로 샘샘 하자.”
“시끄러. 식당이 내 꺼지? 니 꺼냐?”
“한두 번도 아니고 왜 그래 정말?”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나도 이렇게 본전도 못 뽑는 자식농사는 싫다. 코피 흘려가며 일해서 학교 보내놨더니, 휴학하고 내려오질 않나, 그럼 군대라도 가라고 했더니, 돈으로 빼달라는 헛소리나 하고, 도저히 안 되겠어. 너, 네 손으로 돈 벌어와. 두 달 시간 주고, 이자는 은행 이자로 받을 거야, 그리고, 이제 곧 마을에서 축제가 시작되니까 식당에 손님이 많아질 거야. 그 동안은 식당일은 당연히 돕는 거고.”
“나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라는 건데, 아르바이트하면서 식당일을 어떻게 해! 미쳤어?”
“너 같은 자식 기르면, 미치게 돼있다. 이건 네가 갚아야 할 돈이고, 견적서 목록 보이지? 계산 틀림없이 했으니까 의심나면 네가 다시 한 번 계산해 보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돈 너한테 받을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
“말이 돼? 부모가 자식 먹이고 입히는 건 당연한 거잖아!”
따악 - 엄마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그럼 자식이 부모한테 효도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 지금 네가 효도는 하니?”
“엄마는 내리 사랑도 몰라?”
“한마디도 안지고 사사건건 말대꾸야?” 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나도, 그 동안 식당일 해준 거 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거 듣고 자란 정신적인 피해하고, 정들만 하면 이사 가서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것도 보상해주고..”
“손가락질?”
“남편을 둘이나 잡아먹은...”
엄마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휘청거리며 뒤돌아나갔다. 앙상하게 드러난 엄마의 어깨는 숨죽이고 있었고, 치마 아래 가는 발목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이...망할 입방정.’
더 이상 자는 건 틀렸다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베게와 냄비, 빗자루부터 신문뭉치가 내게로 날아왔다.
“뭐야?”
“뭐가 어째고 어째? 정신적 피해보상?”
엄마가 악을 썼다. 감자가 얼굴을 강타했다. 이어 양파와 부추, 쪽파가 날아오고, 땡땡 얼어 있던 냉동고 돼지고기가 연타에 직구 스트라이크로 목을 때렸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만해. 잘못했어.” 나는 양손을 교차시켜 얼굴을 막고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잠에서 깬 은비가 빼에빼에 울었다.

 

“은비야 이리와. 거기 있다가 다쳐.”
은비는 하얀 잠옷을 입은 채로 마루에서 눈을 비비며 울었다. 콧물이 흐르고, 침이 턱으로 흘러 마루 곳곳에 떨어졌다. 마지막 접시가 엄마 손을 떠나자, 엄마는 총알을 장전하기 위해, 식당 쪽으로 들어갔다. 이때다. 때를 놓치면, 하루 종일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빠르고 신속하게 오토바이를 찾았다.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오빠아, 앙앙, 여기, 앙앙.” 은비가 열쇠를 가지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밤새 앓았는지 얼굴이 해쓱하고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은비, 이리와, 오빠가 오토바이 태워줄게.”
두 팔을 벌리는 은비를 안아 오토바이 앞에 태웠다. 열대과일의 과즙 같이 단 은비의 냄새가 힘껏 후려쳐 엉망이 된 우리 집 아침 바람을 열었다. 은비는 그네를 좋아했다. 그네를 밀어주면, 양다리를 뒤로 하고 발끝을 아래로 폈다. 허리는 넣고 가슴을 내밀어 까르르 자지러지게 웃었다. 은비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핥으면, 가래가 끼였던 마음 한쪽이 밝아왔다. 은비의 웃음소리는 그를 닮았다. 그러나 은비 아빠는 은비의 웃음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는 은비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암으로 죽었다. 은비아빠는 엄마보다 5살이 어렸다. 눈썹이 짙고 눈이 작았다. 손이 곱고 몸집이 단단했으며. 키는 컸지만 싱겁지는 않았다. 말이 없는 대신 잘 웃었고 수줍음이 많았다. 머리숱이 많지 않았지만, 가늘고 윤기 나는 머리칼을 가졌던 그와 둘이서 고기를 잡으러 간 적이 있었다. 나의 운동화와 양말을 양지바른 곳에 단정하게 벗어두고 자신의 신발을 벗어 내게 신겼다. 내게 반두를 쥐어주고 물고기를 몰아오기 시작했다. 햇살 속에서 물결이 바위에 부딪혀 잘게 부서졌다. 그의 몸에서 하얗고 예쁜 구슬이 쏟아져 내렸다. 꿈같은 날, 켜켜이 전부를 끌어안고 싶었던 물보라 이후, 그는 병원에 환자로 누워있었고, 다시는 그와 냇가에 갈 수 없었다. 마음이 가물어 갔다. 누군가 아버지를 말하면, 그가 선물한 스치듯 반짝이는 ‘물보라’를 꺼내보고는 했다. 그를 단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버지라 부른 사람과는 그런 추억이 없으니 그가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떠나고, 상을 치르고, 우리는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서, 살구꽃이 필 때, 그곳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엄마는 산파를 불러 혼자 은비를 낳았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도 못하고 쩔쩔매다가 집에 오니, 임시 휴업이라는 푯말과 함께 집안 전체에 뜨끈하고 세지 않은 불기운이 느껴졌었다. 산파가 엄마 방에 못 들어가게 했었다. 뭔가가 자꾸만 낯설어 졌다.

 

“오빠. 배고파.”
은비가 그네를 세웠다.
“그래?” 엄마가 시장에 가려면, 두어 시간 쯤 더 기다려야 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다.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오랜만에 매운탕 집에 갈까? 맹탕도 보고?”
“맹탕이?”
“응. 멍멍! 맹탕이.”
은비가 코가 막혀, 끙끙거리며, 입으로 숨을 쉬었다. 입술이 마르는지 자꾸 침을 묻혔다.
매운탕집 주인아줌마는 엄마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다. 엄마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친언니처럼 돌봐 주었다. 관광지에 가까운 우리 집과 시청 쪽에 가까운 아줌마 매운탕 집은 조금 멀었지만, 엄마는 가끔 매운탕 집에 와서 아줌마와 술을 마시며, 니 팔자가 세니. 내 팔자가 세니, 권커니 작거니 술을 마셨다. 아줌마도 남편을 오래 전에 잃었다. 아줌마는 맹이와 탕이라는 큰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은비는 맹탕을 좋아해서, 가끔 맹과 탕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우야꼬. 은비 이래 잘 먹네.”
아줌마는 은비를 무릎에 앉히고 배추전을 찢어 밥을 떠먹여 줬다.
 

 

“무릎도 안 좋으시다면 서요. 내려놓으세요. 은비 혼자도 잘 먹어요.”
“놔둬라. 내 좋아서 하는 긴데, 얼굴은 또 왜 그러노? 싸왔나?”
“.....”
“그라지 말거라. 니 엄마 고생하는 거 안보이나? 빼짝 말라가 자식새끼 키운다고, 그 젊은 나이에 옳찮게 사는데 그라지 말거라.”
우거지와 참기름에 비빈 밥이 쑥하고 넘어갔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구?”
“해골 목걸이요.”
“아...축제 때문에 들어왔다 카더라. 얼마 안 남았잖아.”
“축제에서 뭐 하는데요? 뭐 팔러 왔나?”
“쇼 한다 카던데, 궁금하나?”
“아니요. 밖에 저 큰 오토바이 저 사람이 타고 온 거예요?”
“좋지? 차보다 비싸다더라.”
나는 오토바이를 흘끔거렸다. 맹과 탕이 오토바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을 뒤쪽에 황량한 공터에 들어서 있는 직사각형의 길고 붉은 컨테이너 건물은 물과 기름 처럼 주위와 분리되어 늠름하게 공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다가 작게 뚫린 창문 안을 까치발로 들여다보았다. 컴컴한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거대하고 육중한 몸집의 컨테이너는 창고와 매점 그 중간쯤 같았는데, 며칠 만에 이렇게 들어서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굳게 잠긴 문을 두드려 보았다. 조용했다.
“계세요?”
창 쪽으로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무도 안 계세요?”
마을 쪽에서 경운기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뭐야? 엄마가 잘 못 가르쳐 줬나?’
아침 청소를 마친 엄마가 이곳을 가르쳐 주며, 돈을 받아 오라고 했다. 돈을 받기 전에는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기에 그러마 하고 논밭을 지나 왔었다. 계속 문을 두드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건지, 있는데 없는 척 하는 건지, 여기가 아닌 건지, 답답한 컨테이너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손에 들린 영수증만 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웅- 하는 굉음 혹은 주위를 넝마로 날려버릴 것 같은 투박한 소리가 들렸다. 왼쪽 방향 지시등이 깜빡거렸다. 매운탕 집에서 본 오토바이였다.
“뭐냐? 도둑고양이.”
스터드 장식이 있는 뱀가죽 웨스턴 부츠를 신고 체인이 달린 가죽바지를 입고 있었다. 헬멧을 벗자 긴 머리가 드러났다. 십자가 귀걸이가 달랑거렸으며, 팔찌와 손가락마다 낀 반지, 지난 번 식당에서 보았던 해골 목걸이가 햇빛에 반짝 거렸다. 
“밥값 받으러 왔어요.”
남자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씨익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입 냄새가 진동을 했다.
“따라와.”
금니는 컨테이너 박스를 열었다. 햇볕이 스며들자 어둠이 둘둘 말려지고 내부가 눈을 떴다. 새가 날고, 원숭이가 나무 위로 뛰고, 개들이 몸을 일으켰다. 나무 책상 위에서 토끼가 놀란 눈을 하고, 새장 속의 구관조를 바라보았다. 구관조는 부리로 몸을 뒤적거렸다.
금니는 다리를 벌리고 허리에 손을 얹더니, 나를 쳐다봤다.
“청소부터야.”
“예? 청소를 하라구요? 아저씨, 저 돈 받으러 왔거든요.”
“청소를 해야 돈을 주지. 일단 청소부터 하고, 동물들 밥도 줘야 하고, 이틀에 한 번은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산책과 운동도 도와줘야 해.”
“여기서 일을 하라는 거예요?”
“일을 해야 돈을 벌지. 몰라?”
“집에 좀 가봐야겠어요. 뭐가 뭔지...”
내가 몸을 돌렸다. 금니가 내 팔을 잡더니,
“엄마가 돈 받아서 오라고 했을 텐데...자, 빨리 빨리. 오후에는 연습해야 하니까, 정오까지 청소 마치도록!” 남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나보다 사고를 더 치는 것이다.
“언제 봤다고 자꾸 반말 하세요?”
“뭐? 어허..좋다. 불의에 대항하는 그런 정신 아주 좋아. 헌데, 난 반말 체질이야. 지금부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천 원씩 깎겠다. 닥치고 일해라.”
금니는 컨테이너를 걸어 나갔다. 몸에 있는 액세서리가 엿장수 가위질 소리 보다 큰 소리로 쩔럭거렸다. 비둘기는 계속 날아다녔고, 일본원숭이는 이빨을 드러냈다. 개들은 가까이 다가가자 경계의 눈빛으로 짖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 지 몰랐다.
“청소는 어떻게 해요?” 큰 소리로 물었다.
“똥부터 치워.” 금니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밥을 먹던 은비가 나를 빤히 보더니 토했다. 은비의 등을 밀던 엄마가 나를 보더니, 눈짓을 했다.
“너 나가서 먹어.”
“왜? 나 오늘 고생했거든. 엄마 덕분에.”
“은비가 너 때문에 밥을 못 먹잖아.”
“목욕했다니까.”
“냄새나잖아! 이게 어디 사람냄새냐?”
은비는 쉬지 않고 토악질을 했다. 보드랍고 하얀 목에서 핏대가 솟았다. 분홍색 원피스가 지저분해 지고, 갈색 머리카락에 침이 묻었다. 엄마는 계속 은비의 등을 두드렸다. 은비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나는 국에 밥을 말아 마당으로 나가서 밥을 먹었다. 서늘한 바람을 맞은 손톱달이 밤하늘에 박혀, 월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멀미를 하고 있었다.
“엄마. 금니랑 무슨 사이야?” 입안의 총각김치를 우적우적 씹었다. 대꾸가 없었다.
“어떻게 아냐고, 어?”
“몰라.”
“근데 나를 거기 왜 보내?”
“돈 준다니까 보냈다. 왜?”
“언제까지 일해야 되는데?”
“합의금, 수리비, 백설기 떡값 다 채울 때까지.”
“뭐야? 그 똥통에서 늙어 죽으라고?”
“시끄러.” 방안에 있던 걸레가 날아와 볼에 붙었다.
“에이, 밥 먹는데...진짜.” 

 

해가 중천인데, 컨테이너로 가는 발이 질질 끌렸다. 어제는 일본원숭이한테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뽑혔다. 일본원숭이는 두 마리였는데, 두 마리 모두 목욕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밥을 안주거나, 간식을 안 챙겨주면, 계속 머리채를 쥐었다. 모자를 쓰고 가도 소용이 없었다. 한 놈이 벗기고, 한 놈이 쥐고,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흔들었다. 머리를 묶어도 소용이 없었다. 무조건, 잡고, 쥐고, 흔들었다.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원숭이는 처음이었다. 1년밖에 안된 비글은 벗어놓은 신발을 잘근잘근 씹었다. 비글과 코카스파니엘은 잠시도 가만있질 않았다. 치우면, 어지르고, 치우면, 어질렀다. 컨테이너 건물을 백 바퀴는 도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활동량이었는데도, 언제나 표정은 생기 발랄, 봉주르 봉주 형과 뛰고파 했었다. 비글과 코카스파니엘에 비해 몸집이 큰 셰퍼드와 핏불테리어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는 듯 했다. 몸집이 큰 만큼 힘이 세서, 처음 산책길이 힘들었다. 셰퍼드는 제복만 입은 사람을 보면 따라갔는데, 한번은 경찰차를 따라 달리는 바람에 경찰서에서 야근 중이던 강 형사에게 인사까지 하고 왔다. 토끼는 예민했다. 아주 조용히 다녀야 했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도 피했다. 사람을 가리는 탓에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건 금니가 했다. 한 번은 토끼를 목욕시키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금니에게 욕을 먹었다. 토끼는 물을 싫어한다고 했다. 저렇게 예민한데 어떻게 쇼를 하나 싶었다. 그렇지만 비단 옷을 입혀주고, 모자를 씌워주면, 사다리를 잘 오른다고 했다. 사다리를 계속 돌려 방향을 바꿔주면, 밤새도록 사다리를 타기도 한다며, 금니는 토끼를 아기처럼 다뤘다. 비둘기는 똑바로 쳐다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눈이 정말 동그랗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분홍부리로 콕 쫄 것만 같았다. 새장 안을 좋아하는 늙은 구관조는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첫날에는 나더러 바보 바보 하더니, 나중에는 치워치워 했었다. 내가 갖다 버린다고 협박했더니 못 들은 척 했다가 내가 등을 보이면, 다시 바보 바보라며 놀렸다. 털을 확 뽑아서 구이안주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너나 닥쳐 라고 받아쳤다.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구관조와 말씨름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됐다, 늙은 할망구, 됐다. 바보. 구관조는 지지 않았다. 앓느니 죽고 싶었다. 수다스런 구관조에 비해 앵무새는 말이 많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자신의 몸을 다듬거나, 우아하게 컨테이너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알아서 폴짝 폴짝 굴렁쇠를 두고 갈지자로 뛰고, 훌라후프 속을 넘었다. 금니가 뿌듯하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금니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사료를 챙기러 나갔다가 건물 밖에 세워 둔, 할리데이비슨이 눈에 들어 왔다. 여전히,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언제 봐도 육감적이다. 할리데이비슨 헤리티지의 엉덩이가 실룩거렸다. 얼마나 달리고 싶을까? 사이드미러의 광택과 백테 타이어. 스로틀을 잡아 보았다. 황홀한 엔진 음과 배기 음이 들리는 듯 했다. 투둥 퉁퉁퉁...심장의 소리다. 투둥 투우우웅.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검은 심장에 붙어 튀던 나는 100m도 못 가 잡혔다. 게다가 금니는 할리를 탄 죄로 장날 공연을 함께 가자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훔쳐 타 보는 건데, 그랬다면, 동네 한 바퀴를 돌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회를 양심에 맡겼던 게 후회됐다. 이번 공연은 앵무새만 데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공연이 되겠냐고 물었더니, 금니는 네 월급은 나올 거라며, 공연도구를 챙겼다.
“제대로 가는 거 맞냐?”
뒤 따라오던 금니가 툴툴 거렸다.
“그럼요. 여기만 지나면 되요.”
“지름길 맞는 거야?”
“맞다니까요. 거참 성격 이상하네.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금니가 알고 있다는 공연장으로 가는 길을 극구 말려, 이곳으로 왔다.

 

 

제법 알려진 관광지가 있었다. 동학교당이라고 김낙세 부자의 노력으로 설립 된 당시 교세가 문경과 안동, 충청도 강원도까지 이를 정도였기 때문에 3칸짜리 초가집 4채가가 전부인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동학교당이 있는 은자골 마을은 감나무가 많았다. 앞마당에는 강아지가 뛰어놀고, 외양간 소들이 여물을 씹고 있는 아기자기한 집들 뒤로는 하늘에 콕콕 박혀 있는 듯한 감들이 잎을 떨쳐 내느라 바람이 불 때 마다 흔들렸다. 과하거나 따갑지 않은 가을 햇살 속에서 동네 골목을 누비는 닭과 그를 부르는 까만 염소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색동 단풍 같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 낙엽이 떨어지는 사이로 춤을 추는 노랑나비, 낮은 돌담장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몸을 늘어뜨린 대문과 둥글고 큰 누런 호박이 나른한 햇살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이 동네는 감나무가 많네. 심심하진 않겠어.”
“네?”
“감꽃이 피고, 감이 열리고 자라서 홍시가 될 때까지 부지런히 달라질 것 아니냐. 그것만 보고 있어도 세월이 절로 흘러갈 것 같다고.”
“하나 따드려요?” 나는 금니가 홍시가 먹고 싶다는 소리인 줄 알았다. 대답이 없길래, 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홍시를 따서 금니에게 주었다.
“나무도 잘 타네...”
보들보들한 홍시는 발그레한 볼로 웃고 있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을 것 같았다. 해가 나는 날을 기다려, 그것들을 거름으로 열매를 만들 준비를 하고, 철을 타고 오는 비들을 하나 둘씩 온 몸으로 받아내고 나면, 열매들은 어느새 홍시가 되어 찬 서리에 씻긴다. 금니는 홍시를 이리 저리 돌려 보더니, 나무 아래 앉았다. 그리고 가을을 깨물었다. 진하고 달콤한 홍시가 입안에 가득 퍼지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가을의 맛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금니는 가 홍시를 다 먹을 때까지 나는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실실 흘러가고 있었다. 앙증맞은 주황색 감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하나 씩 눌러 구름 속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갑자기 여기는 왜?”
“축제만 따라 다니면 좋은 곳도 많이 보겠지만, 이렇게 숨어 있는 곳은 놓칠 때가 많을 껄요?” 사실, 나는 동학교당을 구경시켜주는 척 하며 금니를 두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초가집 사이로 이리 저리 둘러보게 해 놓고, 적당한 때를 봐서, 유물관 쪽문으로 튈 생각이었다.
하나하나 짚으로 엮은 이엉들이 낮은 담장 위에서 꿈꾸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데굴데굴 굴러 마중을 나왔다. 교당은 고요하고 점잖았으나 거대하고 뜨거운 용암이 그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까마득하고 오랜 시간을 흘렀지만 여전히 힘찬 생명력을 가진 불의 야성들이 시뻘건 몸을 꿈틀대며 흘러, 직전의 순간, 그대로 솟구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눈을 밝히고 날개를 달아준 거대한 입김이 불어오는 듯 했다. 햇살이 숨을 죽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안채를 가린 담장이 보이고, 왼편과 오른편으로 각각 한 채의 초가집이 있었다. 붉은 맨드라미가 담장을 돌며 피어 있었고, 소쿠리 안에 수북한 감들과 입을 벌린 은행이 날아가는 새를 잡아 두고 속닥거렸다. 맨 오른쪽의 초가집 마루에서 퇴문을 열면, 중앙 안채를 지나 맨 오른쪽 초가집을 드나드는 대문이 보였다. 한 곳에서 모든 곳을 볼 수 있는 영리한 틈이었다. 열려있지만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다 보이는 듯하지만 가려지는 부분이 있는 묘한 배치였다. 퇴문이 있는 마루에 올라앉으면 헤매던 바람이 한숨 돌리고 곁에 앉아, 싣고 나르던 햇살을 떨어드려 대들보에 붙여 놓고 갈 것 같았다. 여기서 사람들은 씨앗을 따 모으고, 비바람을 견뎌, 열매를 만들어 허리춤에 묶고, 다시 길을 떠났을 것이다. 자고 나면 다시 생기는 가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아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상처의 뒤, 더 뜨거운 것이 힘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장은 꽤 컸다. 못 보던 잉어가 큰 고무 대야에 담겨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고, 땅콩 한 줌, 밤 한 되를 펴놓고, 검정 염색물이 귓바퀴에 묻은 할머니들이 졸고 있었다. 포도와 사과, 배, 단감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과일전을 지나, 생 도넛을 파는 분식집을 지났다. 소쿠리에 먹음직스럽게 담긴 송이버섯이 탱탱했다. 금니는 봐 둔 장소가 있다며, 계속 걸었다. 상설 시장 입구 쪽에 있는 작은 공터였다. 금니는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페도라를 멋지게 썼다. 사다리를 세우고, 앵무새를 금니의 어깨 위에 올렸다. 금니는 나에게 삐에로 옷을 입히더니, 빨간 가짜 코도 끼웠다. 음악을 틀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공연을 시작했다. 앵무새는 금니의 몸을 걸어 다녔다. 내 왼팔을 타고 내 어깨를 지나, 빨간 코를 부리로 콕콕 찍었다. 내가 움찔하자,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앵무새는 인사를 하더니, 내 머리 위로 올라가, 다시 인사를 하고, 오른팔로 내려와 다시 금니의 왼쪽 어깨에 올라, 금니와 입을 맞췄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앵무새는 한쪽 날개로 얼굴을 가렸다. 상자를 놓고, 작은 평균대를 놓았다. 앵무새는 평균대 위를 폴짝 폴짝 걸어 다녔다. 날개를 펴 몸을 부풀리기도 했고, 평균대 끝에서 금니가 먹이로 유혹했지만, 가던 방향을 놓치지 않고 계속 걸어가 평균대 끝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넋을 놓고 앵무새를 봤다. 금니가 옆구리를 치며, 배를 가리켰다. 배 뭐? 옷이 찢어졌나? 내가 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금니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돈? 돈 뭐? 받으라고? 배로? 나는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고, 어깨를 으쓱 했다. 앵무새가 내 어깨로 날아왔다.
사람들에게 여기 여기. 고마워, 고마워. 했다. 사람들은 내 옷을 끌어 당겨 돈을 줬다. 만원짜리는 앵무새가 물었다. 금니는 사람들에게 조금 위험하니 물러서라고 한 뒤, 윗통을 벗었다.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양손에 봉을 들고, 불을 붙이더니, 돌리기 시작했다. 불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윙윙거리고, 불이 눈앞을 스칠 때 마다 홧홧 거렸다. 혀를 널름 거리는 불은 서로를 감고 엉키고, 탐하며 누렸다. 금니는 불을 꽃처럼 피웠고, 활처럼 쐈으며, 허공에서 길을 내, 춤추게 했다. 바닥에 던져진, 금니의 페도라 안에 돈이 쌓였다.

“누구한테 배웠어요?”
“뭘?”
“불이요.”
“어머니한테.”
“어머니 입 다 데서 맛있는 것도 못 드시겠네.”
“여기선 그랬는데, 거기서는 좋은 거 많이 드시고 계실거야. 니네 집 지금 문 닫았냐?”
“아니요. 우리 집에 가시게요?”
“안되냐?”
“안되는 건 아닌데, 매운탕 집으로 가죠. 아줌마가 음식 더 잘해요. 닭볶음탕 끝내주는데, 감자옹심이랑.”
“그래? 야, 저거 괜찮네.”
금니는 난전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유리로 만든 작은 별모양을 가죽 끈으로 엮어 둥글게 만든, 팔찌를 골랐다.
“너도 뭐 하나 골라봐라, 오늘 조수 노릇 잘 했으니, 기념품 하나 챙겨야지.”
이것저것 보다가 작은 링 귀걸이를 하나 골랐다.
“여자 친구 주게?”
“아니요.” 귀걸이를 놓고, 곰 인형 하나를 집었다.
“은비 주게요.”
“여자 친구도 줘.” 금니는 내가 집었다 놓은 귀걸이를 쥐어주며 함께 계산 했다.

 

잠든 은비 곁에 곰 인형을 두려고,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가 없었다.
매운탕 집에 없었는데...어디 갔지? 엄마의 단화와 핸드백도 없었다.
식당은 깨끗했고 뒷정리도 잘되어 있었다. 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은비가 뒤척였다. 은비가 깨서, 엄마가 없는 걸 알면, 울 텐데, 수색을 그만 두고, 내 방으로 건너왔다.
점퍼를 벗어 걸고, 주머니에서 링 귀걸이를 빼 책상 위에 두고 누웠다.
어딜 간 거야? 얼핏 잠이 들었다가 새벽 무렵, 조심스럽게 열리고 닫히는 안방의 방문 소리를 들었다.  

 

알람이 없어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엄마의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었다.
“어디 갔다 왔어?”
“깜짝이야! 왜 벌써 일어나?”
“어디 갔다 왔냐고?”
“가긴 어딜 가?”
“새벽에 들어왔잖아. 나보다 늦게, 은비 재우고 어디 갔다 왔어?”
“조용히 해. 은비 깨.”
“은비가 들으면 안되나부지?”
“이게 그냥. 얼른 씻고 식당 앞 좀 쓸어. 그리고 정육점에 가서 소고기 좀 찾아오고.”
“엄마. 대답 아직 안했잖아. 어디 갔다 왔냐고.”
“친구 만났어.”
“친구 누구? 나 어제 매운탕 집 갔었거든.”
엄마는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다가 말고, 나를 돌아 봤다.
“무슨 소리가 듣고 싶은 거니?”
“친구가 누구냐고. 엄마가 밤이슬 맞고 다니면서까지 만나는 친구가 누구냐고.”
“그만 하자, 아들!”
“뭘 그만해. 이제 시작이구만.”
엄마와 나 사이 공기가 팽팽해졌다. 허리에 얹은 엄마의 오른손, 손목에 별모양의 팔찌가 묶여있었다. 감이 왔다. 어쩐지 친절하더라. 그 때, 투둥웅 하는 소리가 들리고, 금니가 오토바이를 식당 앞에 세웠다.
“아침 하시죠?”
눈치 없는 금니 때문에, 아침을 셋이서 같이 먹었다. 금니가 파를 다듬고 엄마가 쌀을 씻고 나는 김치를 꺼냈다. 엄마와 금니는 간간히 대화를 했다. 둘이 대화를 하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했다. 뭐지 이 익숙한 느낌들은...금니 새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는데, 그래, 은비 아빠를 닮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개껌을 씹던 비글이 바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해보았다.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말로 할 때, 떨어져라. 목덜미를 쥐고 떼어 놓았다. 이번에는 코카스파니엘이 달려들었다. 나를 깔고 뭉개더니 얼굴에 침을 묻히고, 배 위에서 몸을 털었다. 병신 병신. 늙은 구관조가 조불거렸다. 후두둑 오르던 비둘기가 똥을 싸, 셔츠 위에 뿌려 놓았다. 제대로 빨지 않으면 옷이 삭을 터였다. 순간온수기를 눌렀다. 삼초에 한 번 딱딱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셔츠를 벗어서, 빠는데, 다시 또 러닝셔츠 위로 비둘기가 허연 똥을 쌌다. 저것들을 진짜, 잡히는 대로 휘둘러보았다. 줄 위에 나란히 앉은 비둘기가 구구구구, 울었다. 삽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삽질 삽질, 구관조가 거들었다. 조용히 못해. 할망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원숭이가 머리채를 쥐었다. 아팠다. 아파서 눈물이 다 났다. 원숭이 새끼 너 잡히면 죽어, 오른손에 쥔 아무렇게나 삽을 휘둘렀는데,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원숭이가 낑낑댔다.
“야! 너 미쳤어?” 금니가 뛰어 왔다.
“저게 머리채를 잡았다구요.”
“한두 번 겪어? 너 오늘 왜 그래?”
“제가 뭘요?”
“사람 눈도 안 마주치고, 하루 종일 삐딱하잖아.”
“그래서요? 어떻게 사람이 맨날 좋아요? 웃으면서 일해야 돈 주기로 엄마랑 약속했어요?”
“그런 게 아니라...엄마를 봐서라도...”
“우리 엄마 걱정을 왜 아저씨가 하는데요? 엄마랑 뭐 했어요?”
“엄마랑 뭐 하다니?”
“무슨 소린지 아시잖아요? 그동안 눈엣 가시 같은 나를 여기 쳐 박아두고, 둘이서 살랑살랑 밤이슬 맞으니 좋으셨어요? 둘이 내 얘기 하면서 사이좋게 만리장성 쌓으니 좋았냐구요?”
번쩍하고 눈앞에서 불이 나더니 뺨이 달아올랐다. 나는 머리로 금니를 받았다. 두 팔로 금니를 끌어 앉고 정신없이 밀어 붙였다. 금니는 힘을 살짝 빼는 듯하더니, 크고 두툼한 손으로 나를 밀어, 자로 잰 듯한 어퍼컷을 날렸다. 몸이 잠시 허공으로 뜨는가 싶더니,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삽자루에 등이 찍혔다. ‘아’라고 하기도 전에 또 다른 충격이 왼쪽 복부와 오른쪽 복부에 가해졌고, 나는 켁켁 거렸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다리가 풀렸다. 스르르 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피가 입속에 고였다. 앞이 흐릿해 졌지만, 금니의 뒷모습은 가늠할 수 있었다. 바닥에 있던 삽자루를 쥐었다. “으아아아아....” 머리통을 박살내줄 생각이었다. 제 멋 대로 움직이는 삽이 허공을 가르고, 잠시 꼼짝할 수 없더니, 삽자루가 내 입 속에서 혀와 이를 짓이기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다가 머리가 순간온수기에 부딪혔다. 입속에서 빠진 삽자루가 다시 눈을 향해 다가오더니, 멈칫했다. 나는 순간온수기의 가스 배관을 뽑았다. 가스 냄새가 시큼했다. “이 새끼이이이. 다 태워버릴 거야.”

 

“먹어.”
금니는 하얗고 네모난 백설기를 내밀었다. 엄마가 줬다는 백설기를 받았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얘기 했지. 네가 백만 불짜리 얼굴에 멍을 그리고, 원숭이 혼을 빼 놓아, 공연을 할 수 없게 됐으니 책임지라고 했지. 농담이야.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고 싶다고 했어. 일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고, 뭐든 배워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여기 약. 발라줄까?”
“됐어요. 징그럽게...엄마가 뭐래요?”
“별 신경 안 쓰던데, 네 용돈 주시더라.”
금니는 내게 10만원을 쥐어줬다.
“사고뭉치를 맡겨서 미안하다고 하던데 잘 봐달라고. 사고 치면, 뭐든 보상해 주겠다고...”
“엄마는 항상 그래요. 저를 부끄러워하시죠.”
금니는 나의 백설기를 빼앗아 먹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는 말이야. 통 굴리기를 잘하셨지. 동물을 조련하고, 입에서 불을 뿜는 법을 알려주신 게 어머니셨어. 떠돌아다니는 어머니를 둔 덕분에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어. 항상 혼자였고, 누구와도 쉽게 말 붙이이지 못하는 내게 어머니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주셨지. 목욕도 시키고, 먹이도 주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어. 나를 아프게 하지도 않고, 말을 못해도 싫어하지 않고, 어머니가 서커스 단원이라고 수군거리지 않는 듬직한 친구들이였지. 매일 천막을 치고 공연하는 게 일이니, 동물 조련하는 법도 쉽게 배웠어. 하지만, 나는 그 때. 어머니가 동물을 사주시지 않았다면, 차라리, 어머니가 좀 더, 나와 얘기하고 한 번 더 안아주셨더라면, 사람을 느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이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떠돌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나도 그냥, 살수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아. 누구나 다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거니까. 엄마는 네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미안한거야.”
“그게요...미안하지 말았으면 좋겠거든요. 저는, 엄마가 미안하다고 할 때마다, 저 때문에 이리 저리 미안해하러 다니실 때 마다, 더 화가 나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뭐가 가슴 속에서 확확 끓어올라요. 참을 수가 없다구요. 엄마가 웃는 걸 본 게, 은비 아빠와 살 때였어요. 나름대로 우리는 단란한 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비적거리며 살았어요. 그렇게만 살아도 좋았는데..은비 아빠가 죽고, 엄마는 울지 않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 웃지도 않았죠. 이게 아닌데 하면서, 자꾸 엄마와 다투고, 싸우고, 웃는 걸 보고 싶은데, 자꾸 울리게 되고, 차라리 엄마가 혼자서 웃을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갔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혼자서 웃을 수 있을까? 너희도 없이, 어디로 가면 웃을 수 있는데?”
햇살이 무거워졌다. 금니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너희 엄마가 끓여주는 해장국이 최곤데, 그걸 또 어떻게 찾아내냐?”
“지금 웃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너희 엄마는 재밌던데, 너는 유머 감각이 왜 그러냐? 가스밸브 잠가놓고, 불 지르겠다고 우기던 건 웃기더라.”
“죄송해요.”
“게다가 사내 주먹이 그게 뭐냐? 물 주먹도 아니고 경찰서 문턱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든다면서, 싸움을 그렇게 못하냐?”
“방어용 싸움이라니까요.”
“그럼 맞지는 말아야지.”
“아저씨는 축제 끝나면 어디로 갈 거예요?”
“글쎄.. 뜨거운 모자가 부러워서 말이지. 둘 사이에 집지어 볼까 싶기도 하고.” 금니가 지난 번 장에서 샀던, 별 모양 팔찌를 쥐어 줬다. 노을이 어둠을 펼치고, 사라진 밤, 마을 아래, 펑펑, 달고 예쁜 불꽃이 하늘로 솟았다. 축제를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넌 왜 자꾸 싸우냐?”
금니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싸울 이유가 생겨요.”
“싸울 이유가 뭔데?”
“자꾸 시비를 걸어요.”
“하긴, 니가 시비를 당하게 생기긴 했지.”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어디로 도망을 가지? 금니의 눈치를 살폈다.
“다시 말씀 드리는데요, 저는 늘 가만히 있어요. 제가 싸우는 건 일종의 방어라구요.”
“방어를 뭐 그렇게 하냐? 엄마 봐. 멋지잖냐?”
“네?”
“우리 엄마요?”
“그럼 우리 엄마겠냐?”
“우리 엄마에 대해 아세요?”
나는 금니 곁에 앉았다.
“당당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야.”
뭐라고 더 물어보고 싶었다. 금니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아저씨 우리 엄마랑...”
“야야, 저건 뭐냐? 여기서 뭘 가르쳤나?”
“동학 배우면서, 이쪽에선 남자들이 살고, 저쪽에선 여자들이 살구요. 그랬다나 봐요.”
무엇에 취한 듯 금니는 기둥을 쓸어 보고 마루에 앉았다.
나는 슬금슬금 건물 뒤로 가야겠다고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금니가 내 팔을 당겨 곁에 앉혔다.
“저기 대나무 숲 보이냐?” 쭉 뻗은 푸른 대나무들이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흔들렸다.
“네.”
“새소리 들려?”
“네.”
“분명 조잘 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새는 한 마리도 안 보이지?”
“숲에 숨어 있겠죠.”
“잘 아는 놈이 엄마 마음을 그렇게 몰라?”
“네?”
산의 위쪽에서 단풍이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산이 더 많았다. 그 푸른 기운 사이로 누군가가 편애한 단풍이 반짝거렸다. 산자락을 털어 단풍들로 이불을 지으면 어떨까? 엄마 방에 있는 색동이불처럼 따뜻할 것 같았다.

글쓴이 : 이선아

1977년생, 숭실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글 쓰고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며, 영화관에 혼자 가는 것을 즐긴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현재 안동 MBC에서 구성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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