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학산 (금성산을 異稱)의 학(鶴)과 비봉산의 봉황(鳳凰)이 노니는 천혜(天惠)의 땅에 자리한 金城 山雲마을의 입향조 이광준(李光俊)은 4명의 아들과 12명의 손자 중 무려 5명이나 문과 대과 급제자, 4명의 무과 급제자가 배출되었기에 문, 무를 고루 갖춘 가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3대에 걸쳐 문과 급제자 5명을 배출한 명문가 반열에 자리매김을 한 학동(鶴洞). 그의 아들들 중 둘째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과 셋째 자암(紫巖) 이민환(李民寏)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의 앞서가는 현실주의자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

학동(鶴洞)의 둘째아들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은 동생 자암(紫巖)과 함께 산운마을이 영남의 명문가 반열에 오르게 한 주역이다. 1570년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특해 7~8세부터 이미 글을 지을 줄 알았고, 김성일과 정구, 장현광 등 대학자들의 문하에 아우와 함께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이후 선조 35년(1602)에는 세자 책봉을 청하는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중앙에서 활약하다가 인목왕후 폐비사건 때 이를 반대하고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인조반정 후 사헌부장령에 복직되어 다시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이해시킨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국가로부터 공을 인정받았다.

올곧은 성격으로 의리가 강하고 직언을 잘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지만 시문과 글씨에도 뛰어나 명나라의 학사들이 그를 일명 ‘조선의 이태백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라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 자그마치 남긴 시가 1,300여 수에 이르는데 그 중 이태백을 능가할 정도로 대단한 시라고 극찬하는 독서유감<讀書有感>을 옮겨본다.

이 독서유감<讀書有感>에는 ‘북학의 연원은 마땅히 유래가 있을 것이다.’에서 북학(北學)이란 단어가 눈에 띈다. 의미는 당연히 성현들의 가르침을 뜻하는데, 초점은 이후 1778년 박제가가 이 부분을 인용하여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울 것을 주장한 저서 북학의<北學議>를 지어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민성은 60세인 1627년 7월 춘산 빙계서원에서 열린 여헌의 강회에 참석하였다가 북에서 생긴 부스럼이 재발(再發)해 자리에 누운 뒤 달빛이 쏟아지는 氷月堂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후에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 되었으며, 그 상향축(常享祝) 내용에는 ‘학문은 하늘과 사람을 꿰뚫었으니 영원한 우리들의 스승이로다.’라고 쓰였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경정집>, <조천록> 등이 있는데 특히 <경정집> 20권은 주옥같은 시문들을 담고 있다.

최근 산운 생태공원 전시관 앞에 이민성(李民宬)이 지은「숙봉산동촌(宿鳳山東村)」이란 社會詩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게 석각(石刻) 해 세워 두었다. 이 시는 1986년 북한에서 펴낸바 있는 『조선문학개관』에 개재되었는데 당시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도 형제애를 나타낸 내용이라 언뜻 가족이란 단어를 연상케 해 준다.

그럼 이제 학동(鶴洞)의 셋째 아들 자암(紫巖) 이민환(李民寏), 그는 누구인가?

이민환(李民寏)은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이장(而壯), 호는 자암(紫巖),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에 급제하면서 뒤에 검열·정언·병조좌랑을 거쳐, 1603년 암행어사로 평안도에 가서 수령의 비행과 민정을 살폈으며, 1608년 영천군수로 나갔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에서 군원을 요청하자, 원수 강홍립의 막하로 출전하였으나 사르후 싸움에서 대패하여 청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17개월 동안 계속되는 청나라의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1620년에 석방되어 의주에 이르렀을 때 개인적 원한을 가진 박엽의 무고로 4년간 평안도에서 은거 생활도 했다.

이어 인조반정으로 상경하여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장현광의 종사관이 되어 참전했다. 그 후 동래부사·판결사·호조참의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다가 1645년에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문집으로 자암집《紫巖集》이 있다.

이 책은 후금과의 전쟁에서 급박한 상황에서도 생생하게 기록한 유일한 기록물 책중일록《柵中日錄》과 건주문견록《建州聞見錄》, 자암집《紫巖集》서문에 실린 문인으로서 안자의 글을 모아 기록한 박약집설《博約集說》도 실려 있어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이 명과 연합하여 후금에 대패한 ‘심하전투’

포로가 됐다 풀려난 포로 수용소 일기 : 책중일록《柵中日錄》

이민환(1573~1649)이 1619년 3월 4일에 쓴 일기 중 일부다.

광해군 11년 2월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을 때 이민환은 도원수 강홍립의 종사관에 임명되어 부원수 김경서 등과 함께 1만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평안도 창성에서 압록강을 건너 후금을 치기 위해 진군했으나 그해 3월 4일 심하(深河)의 부차(富車) 들판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당시 군원 1만 3,000명 중에 두 차례에 걸쳐 500~600명이 살육되었고, 추위와 허기로 죽은 사람이 많아 돌아간 사람은 겨우 3,000여 명이라 한다. 그해 7월에 누르하치는 철령을 함락한 뒤 수도를 허투알라에서 자편성으로 옮기고 조선군 포로도 함께 이송하였다. 강홍립과 이민환 등은 당연히 자편성(者片城)의 목책(木柵)안에 구금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었기에 일기의 제목도 책중일록《柵中日錄》이라 한 것이다.

책중일록은 이민환이 출병을 준비하던 1619년 2월 16일부터 겪은 행군 경로, 전투, 포로수용소 생활들을 적은 일기형식의 기록이다.

일기의 앞머리에는 출병의 배경이 된 후금의 무순 함락, 명의 군사 동원과 조선에 대한 징병 요청, 조선 정부의 대응책 등이 기술되어 있다. 초반부의 일기는 매일 기록했으나, 이후 장기간에 걸친 수용소 생활 중에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보통의 일기라기보다 원래의 초본을 사후에 정리하여 편집한 일종의 편년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심하 전투의 패배는 우리 해외 파병 역사에서 유례없는 참변이었다. 이러한 후금에 대한 조선의 선제공격이 결국 뒷날 두 차례 호란(정묘호란, 병자호란)의 구실이 된 원인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 되어 버렸다.

‘포로가 되어서도 적국 정보를 수집하다.’ 건주문견록<建州聞見錄>

건주문견록<建州聞見錄>은 1619년 심하전투를 전후한 시기의 조선과 후금의 군사적 동향을 비롯하여 후금 지역의 다양한 자연·인문 지리적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청나라 초기 건주 지역의 정치 군사 및 지리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비록 문신 출신이지만 전쟁터에 참전한 군인으로서 자암이 조정에 방어 정책 건의를 하였다는 점, 당시 조선의 군사적 문제와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당시 남긴 포로 관련 기록이라는 점에서 진기한 기록물이라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주관적인 견해를 드러내기보다는 중요한 일들만을 건조체로 기록했고, 포로생활 중 자신이 관찰한 후금의 전력에 대한 보고서임에 관심의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가 조정(광해군)에 건의한 상소문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축약되어 있다.

1. 산성을 수축

2. 기마병을 양성

3. 소수정예주의를 택함

4. 변방이 군사들에게 특별한 은전을 줌

5. 무기를 새롭게 개발

6. 군사훈련을 강화할 것

처음에는 1권 분량의 책으로, 필사본으로 전하다가 후에 그의 문집 『자암집(紫巖集)』이 간행되면서 제6권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책중일록의 부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책중일록이 하나의 일기체 역사서라면, 건주문견록은 일종의 지리지(地理誌)와 같다고 구분 짓는다. 적의 포로가 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책임감을 잃지 않고 적의 정보를 수집하고 아군의 대항책 마련에 몰두한 조선의 한 군인으로서 당당한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자료라 할 수 있다. 책중일록과 건주문견록은 중국 요령대학에서 출간 한 적이 있다 하니, 이는 16~ 17세기의 혼란의 격동기를 말해주듯 조선과 명, 후금 3국의 동향과 각국의 입장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안자에 관한 글을 모아 집록(輯錄)한 <박약집설(博約集說)>

자암(紫巖)이 안자(顔子)에 관한 글을 여러 책에서 뽑아 집록(輯錄)한 책이며 불분권(不分卷) 1책에 목판본이다. 권두에 1635년(인조 13) 편자가 쓴 자서(自序)가 있고, 권말에 이광정(李光庭)이 1743년(영조 19)에 쓴 발문이 있으나, 이것으로 정확한 간행연대를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일정한 편목을 정하고 있지는 않은 책이나 약 55개 구절로 되어 있으며, 서문에 의하면 ＜극기복례 克己復禮＞를 맨 앞에, ＜사대예악 四代禮樂＞을 중간에, ＜우직동도자 禹稷同道者＞를 마지막에 각각 수록, 대략적인 편차를 말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명인 ‘박약집설(博約集說)’은 ≪논어≫의 ‘박문약례(博文約禮)’에서 취한 것이며, 그에 대한 후세 학자들의 설을 모은 것이므로 집설(集說)이라 한 것이다.

논어의 자한 편에 안연(안자)이 공자의 가르침에 대하여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서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으로 나를 넓혀 주시고,( 博我以文)

예로써 나를 요약해 주셨다.(約我以禮)’ ----------- (안회의 말)

(博은 학문의 세계를 넓히는 것 約은 학문의 깊이를 의미)

안자는 후세에 성인으로까지 추앙받았으나, 일찍이 요사(夭死)하여 저술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언행과 사적이 ≪논어≫를 비롯하여 ≪역계사 易繫辭≫·≪중용≫·≪맹자≫·≪예기≫·≪가어家語≫ 등에 산견(散見)되고, 정이천(程伊川)의 ＜안자소호하학론 (顔子所好何學論)＞ 등 미약한 제가(諸家)의 글들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역사적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일어난 당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 자체가 과거의 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기록이 얼마나 정확하게 남았느냐가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산운마을의 올곧은 선비 정신과 義를 굳건하게 다지고자 노력한 삼부자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은 다시한번 금성산 자락쪽으로 고개를 한 번 더 돌리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義가 아닌가 나름 생각케 된다.

*참고 문헌 : (의성지집록, 의성문화 2016, 경북의 종가문화(의성 자암이민환 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