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봉황이 깃든 하늘 아래 첫 마을 "봉서"
- 정창식(cultureline@naver.com)
정창식
봉서마을 소나무 © 정창식
봉서(鳳棲)는 봉황이 사는 마을을 의미한다. 그 아래에는 봉정(鳳亭)이라는 이름의 마을도 있다. 그곳에도 봉황은 잠시 머문다. 그래서 마을의 풍광, 특히 소나무와 바위의 경관이 뛰어나다. 보호수로 지정된 백여 년 된 소나무가 옛 정자 병암정(屛巖亭)의 예스러움을 돋우어 주고 붉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한여름 푸르름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솔숲의 고아함은 마을의 역사와 풍광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문경시내에서 십여 분 거리의 지척이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먼 이역(異域)이 된다.
봉서는 깊은 산골 마을이다. 그러나 단순한 산골이 아니다. 해발 300여 미터의 산정(山頂)에 위치하여 오랜 전설과 역사 그리고 옛 유적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다. 그래서 봉서마을은 넝쿨 속에 숨겨진 보물 같은 마을이다.
❙ 월방산 - 꽃 같은 달이 뜨는 탑 마을
.jpg)
봉서2리 마을, 소나무와 삼층탑 © 정창식
봉서마을은 산정(山頂) 부근에 위치해 있다. 재에 올라서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높은 곳에 이렇게 마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의외이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잿봉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은 소나무들에 둘러싸여있고 해발 360여 미터 높이의 월방산(月芳山)이 그 뒤를 받쳐주고 있다.
마을 전경 뒤로 월방산이 보인다 © 정창식
이 산은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산이었다. 옛적에는 이 산(山)을 경계로 주변 큰 마을의 이름이 정해졌다. 남쪽인 불암, 추암, 추산, 진정, 반곡 등의 마을을 산남면이라 하고, 동쪽인 현리와 부암, 형천 등의 마을을 산동면이라고 지었다. 서쪽에 해당하는 호계면의 일부를 산서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산의 북쪽을 산북면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스스로 월방산은 넓은 품안에 사람들을 거두어 들였다. 바로 봉서마을이다. 산 윗마을을 웃봉서, 잿봉서라 하고 중턱에 있는 아랫마을은 아랫봉서, 구(舊)봉서로 불렀다. 또한, 잿봉서 아래 마을을 봉정(鳳亭)이라고 지었다. 산의 서남쪽 아랫마을은 반곡이라 한다.
“이처럼 바위 위에 탑을 세운 곳은 드물다고 해요.”
마을이장 일을 오십여 년 하였다는 임정길 전 이장의 말이다. 그는 그 공로로 몇 년 전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곳에는 높이 4.5미터의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봉서리 삼층석탑이다. 발견 당시 몇 개의 옥개석(屋蓋石)과 몸돌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커다란 자연 암반 위에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삼층석탑, 파란하늘과 늘 함께 있다 © 정창식
봉서리 삼층석탑 © 정창식
높은 지대에 터를 잡고 다시 암반석 위에 탑을 세웠다. 그래서 탑을 쳐다보면 푸른 하늘이 배경이 된다.
자세히 보면, 바위 네 귀퉁이에 탑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전각(殿閣) 기둥 받침으로 보이는 구멍진 홈이 있고, 바위 한쪽 면에 절단하려 했던 흔적이 있다.
이곳에 서면, 천여 년 전 으스름한 저녁 무렵 저 탑 아래에서 꽃 같은 달을 무심히 보았을 어느 동자승(童子僧)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봄날 동자승은, 꽃가루 같은 무수한 별 가운데 유독 밝은 달을 화사한 봄꽃처럼 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 달을 보고 월방(月芳)이라는 지금의 산이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저 아래 반곡마을에는 거대한 바위 암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고 봉정마을에는 관세음보살입상과 약사여래좌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천년의 탑, 봉서리 삼층석탑이 우뚝하다. 그래서 이탑은 저들 협시불(挾侍佛)과 이 지역 부처의 총칭이며 이곳 사람들의 기도가 된다.
❙소나무의 맑은 기운이 만 명을 살리고
“이 마을은 오래 전에 예천 임씨들이 들어와 살았어요.”
마을에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예천 임씨들로 씨족을 형성하고 있다. 옛 부터 절 주변에는 마을, 즉 사하촌(寺下村)이 있어 왔다.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도시에 절을 짓는 도시형 사찰이 주를 이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은 산으로 들어갔다. 우리 지역의 산북면 웅창마을의 도천사지와 내화리 삼층석탑이 있는 화장사지도 이와 같다. 절이 깊은 산으로 들어간 것은 의상대사가 지은 부석사 이후라고 한다. 그래서 탑의 역사만큼 마을의 내력도 오래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마을 솔숲 오래된 소나무 군락은 봉황이 머물기에 충분하다 © 정창식
마을의 기세를 보충하기 위한 송림은 기암괴석들과 함께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봉황이 머물기에 충분한 경관이다. 안동김씨 부훤당 김해의 후손 김병현이 지은 병암정 앞에는 큰 소나무와 백일홍 나무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보호수인 소나무는 병암정에 큰 그늘을 만들어 무성하기만 하다. 그러나 사람의 정자는 쇠락하여 무너지고 있다.
“6.25 전쟁 첫해 여름, 한 달 동안 이곳에 만여 명의 사람들이 피난 왔어요.”
소나무들의 맑고 밝은 기운 때문일까. 6.25 전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 곳곳이 사람들로 가득하여 마실 물과 음식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마을은 그런 사실 조차 모르는 채,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있다. 한때에는 사십여 세대 삼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친구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퇴락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 박사하고 교수가 몇이나 있는데요.”
작은 산골마을임에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 곳 못지않다. 그래서 고향 밖에 있어도 마을 일에 늘 관심이 많고 합심하는 마음이 크다. 어쩌면 쇠락하였지만 천여 년을 이어온 봉서마을의 저력인지 모르겠다.
❙옛 것의 가치를 알고 새롭게 눈을 뜨는 마을
마을에는 십여 가구 정도가 있다.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다. 최근에는 고요를 좋아하고 운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더러 찾고 있다. 한적한 낮에는 자전거 라이딩의 종착지가 되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어지는 고요에 묻히고 만다.
마을 흙담이 있는 곳은 대부분, 오래된 흙집들이다 © 정창식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토담은 나그네들에게 향수가 되고 마을 입구에 있는 ‘범바위와 개바위’는 통일신라시대 있었던 절의 흥망성쇠를 말해주는 전설의 실체이다. 또한 마을 진입도로 중턱에서 보이는 영강(潁江)과 시가지의 전경은 훌륭한 볼거리가 된다. 뿐만이 아니다. 이곳의 너럭바위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그렇지만 마을의 주변 환경은 열악하다. 마을에 이르는 도로는 포장 확장이 되지 않았고 수도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놀러온 손자들이 씻을 물이 없어 애를 먹었어요.”
이 마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의 경험이지만 이제는 절실히 변화를 바라고 있다. 다행히 문경시에서도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위한 자리를 찾고 있다. 그래서 도로도 마을까지 확장될 예정이고 수도시설도 곧 갖출 계획에 있다. 늦었지만 옛 것의 가치를 알고 새롭게 바라보려는 여러 눈들이 이곳으로 모여지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다. 곧 병암정 앞의 배롱나무도 꽃을 붉게 피울 것이다.
소나무 사이로 밝아오는 새해가 희망으로 가득하다 ©정창식
- 글쓴이 : 정창식
-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