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상진_이야기가 있는 예천문화 탐방]예천의 종가 이야기 1
- 김상진(cultureline@naver.com)
예천(醴泉)의 종가(宗家) 이야기 1
김상진
종가의 제례 모습 © 김상진
❙ 들어가는 말
예천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세를 보인다. 여기에 소백준령에서 발원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예천군을 관통하며 남서류하는 내성천으로 모여들어 낙동강으로 합류하면서 예천 자연 환경의 큰 틀을 이룬다.
예천군은 신라 때 수주촌(水酒村)이라 불렀는데 수변주천촌(水邊酒泉村)이라 하여 물가에 있는 물맛 좋은 샘이 있는 고장이란 뜻이며 현재의 예천(醴泉)이란 지명은『예기』에 나오는 천강감로(天降甘露) 지출예천(地出醴泉)에서 비롯된 말로 가장 달(甘味) 때 빚은 술맛으로 단술 같은 샘이 솟는 고을이란 의미의 지명이다.
예천은 유교를 숭상하고 유학이 크게 성행하면서도 독창적인 성리학 이론이나 독자적인 학파 형성이 없다고 하지만, 가학으로 인한 충효와 의례에 대한 실천지향적인 삶이 강한 특징으로 가전(家傳)되어 마을마다 효행의 선비들이 많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충의 열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유교적 정체성이 생활문화전반에 깊이 스며있어 그 어느 지역보다 종가문화가 잘 전승된 곳이기도 하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 © 김상진
❙ 종가의 보편적 의미
우선 예천지역의 종가를 살펴보기 전에 종가(宗家)의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종가의 종(宗)은 사전적 의미로 조상신을 모시는 집, 다시 말해 사당(祠堂)을 뜻한다. 그래서 종은 조상을 뜻하거나 조상을 모시는 족장(族長)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종가는 사당이 있는 집을 말한다고 한다.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기초학문연구단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북지역에는 2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종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예천지역에는 종택이 13곳이나 되며 이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불천위 종택은 별동 종택, 약포 종택, 초간종택이 있다.
이들 종가는 종손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생활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집단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종가에서는‘봉제사 접빈객’이라는 본분을 다하며 조상제사를 지내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가이 맞이하면서 오랜 전통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지역은 생활문화사적 측면에서 산업화, 근대화의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전통적인 생활문화도 비교적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가를 중심으로 가문의 부와 명예, 그리고 각종 행사가 집중되었다. 따라서 종가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문화가 유지되고 발달되었으며 주변 마을의 의·식·주 및 가정의례의 모범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예천지역의 종가문화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생활양식으로 고착화된 혼례문화와 제례문화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 양식은 종손과 종부를 중심으로 대를 이어 전승되면서 문중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종가가 위치했던 지역이나 마을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하는 문화적 선도자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종가를 이루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종부(宗婦)이다.
종부는 종가 주손의 부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이전엔 총부(冢婦)라 불렀다. 일반적으로 종가의 주손과 결혼한 후 선대 종손인 시아버지의 3년상을 치르고 길제(吉祭)를 거쳐야 정식으로 종부의 지위를 얻는다. 유학의 예서인 예기(禮記)와 의례(儀禮)에 따르면 종부는 집안 맏며느리이면서 가사를 통솔하고 책임지는 존재로서 종법에 의해 그 지위를 보장받았다.
예천권씨 종가별당 © 김상진
❙ 예천지역의 종가
그러면 이번호에서는 예천지역의 두 종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십승지에 터를 잡은 예천권씨 종가는 종택이 중요민속자료 제201호, 별당이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문면 금당실 마을 서편 죽림리에 자리잡은 초간종택과 별당은 단아하고 청아한 자태로 지어졌다. 초간 종택은 예천권씨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이 선조 22년(1589)에 지은 건물로 안채의 오른쪽 앞에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풍수적 자연환경에 있어서 가옥은 안산을 중요시 여긴다. 예천권씨 종택 앞은 너른 논밭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안산이 약한 아쉬움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안산을 대신하는 연못을 만들었고 그 옆에 울릉도에서 가져왔다는 300년 묵은 향나무가 지기(地氣)를 받쳐주고 있어 풍수공간에 대한 미학적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권영기 종손은 풍수에 관심이 많아 빼어난 지맥을 찾아 두루 다님은 물론이고 훗날 당신이 영면(永眠)할 명당 터를 염두에 두고 늘 살핀다고 귀띔해 주었다.
초간종택과 대동운부군옥 책판 고본 © 김상진
초간종택 왼편에는 백승각(百承閣)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권문해가 지은 대동운부군옥 책판이 보관되어 있다. 권문해 선생은 23세 때 퇴계 이황의 제자로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며 특히 역학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대동운부군옥(보물 제878호)은 단군시대로부터 인문·지리·역사·문학·예술·철학 등을 총망라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가히 기념비적이면서 예천권씨 종가를 명문가로 자리매김한 백미라 할 수 있다.
현재 종택에는 초간 13대 권영기(78) 종손과 이재명(77) 종부가 살고 있는데 언제 방문하더라도 살갑게 맞이해 주는 인심이 고맙기만 하다. 다만 필자가 안타까운 것은 종손의 건강이 걱정스럽고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지키느라 평생 마음 편히 여행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넋두리가, 마음을 짠하게 한다.
춘우재 종택 © 김상진
다음은 금당실 마을을 지나 동쪽으로 이어진 구릉 넘어 자리한 작은 맛질의 춘우재 고택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동권씨 춘우재(春雨齋) 종가는 예천군 용문면 작은 맛질에 세거했던 춘우재 권진(權晉:1568~1620)선생을 모시는 명문가이다. 선생은 중종과 명종 때 충신으로 활동했던 야옹(野翁) 권의(權檥)와 충재 권벌(權橃)의 후예이다. 춘우재는 1600년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권진(1568~1620)이 지은 가옥인데 권진은 제곡리 입향조인 권의의 손자로, 집의 이름은 그의 호에서 따왔다.
안동권씨 춘우재종가 역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는데 주요인물을 간단히 요약해 보고자 한다.
먼저 야옹(野翁) 권의로 자는 백구(伯懼)이며 권사빈의 맏아들로 권벌의 형이고, 정암 조광조의 제자이다. 150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의흥 현감을 역임하면서 업적을 남겼다.
스승 조광조와 더불어 향약 시행에 대하여 깊이 상의하였고, 의흥 현감 때는 향약을 군민에게 권장하여 태평세월을 누렸다 한다. 묘소는 예천 하리면 부초리 함포산(咸浦山)에 있고, 그 아래 함포재사(咸浦齋舍)와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유고인 『야옹선생유고(野翁先生遺稿)』는 『화산세고(花山世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야옹정 © 김상진
권의에게는 아들 7형제가 있었는데, 둘째 권심언이 작은맛질을 세거지로 삼았다. 따라서 작은맛질 안동권씨는 차남 권심언의 후손들이다. 권심언은 1566년 부친 권의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야옹정(野翁亭)을 세워 후학 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는데, 야옹정은 1987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되었고, 올해 2016년 9월 9일자로 보물 제1917호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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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쿠켄에 실린 사진 _춘우재 주손과 종부 © 김상진
현재 춘우재에는 안동권씨 참봉공 13대, 권창용(71) 주손과 조동임(68)종부가 함께 살고 있다.
평소 주손의 성격이 호탕하고 장부의 기개가 느껴지는데, 종부 역시 ‘봉제사 접빈객’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손은 특별히 5대에 걸쳐 문집이 발간된 가문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큰 긍지를 가지고 있다. 권 주손은 한평생 동안 내 몸처럼 지키고 보관해온 조상의 손 때 묻은 문화재 5400여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 이는 평소 호방한 인품과 나눔의 실천미학을 행하려 노력하는 종손의 책임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맺는 말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제사와 재산을 적장자 중심으로 승계하면서 ‘종가’라는 말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예천지역의 몇몇 종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예천에는 이 밖에도 훌륭한 종가들이 많이 있지만 나머지 종가의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려 한다. 복잡한 산업사회의 뒤편에서 아직도 훌륭한 조상의 유업을 지키며 종가가 존립하는 것은 지역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나눔과 배려를 당연시 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하여 자식들에게 교육한 것이 그 원천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가을 날, 춘우재 종부의 점심 접빈
- 글쓴이 : 김상진
- 현. 예천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