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척 금 대(斥金臺)
- 김범선(cultureline@naver.com)
척금대 (斥金臺)
김범선
“형, 조심해래이.” 동생 만수가 말을 하자
“오야, 니도 조심해라” 하고 형인 대수가 주의를 주었다.
영양읍내 장에 다녀오는 형제는 서로 조심하라며 척금대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해발 350m 주치재에서 척금대(斥金臺)로 내려가는 산길은 가파르고 위험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는 사람이 있었다. 영양읍은 4,9일 장날로 오늘이 삼월 초아흐레, 형제는 이른 아침에 소나무 장작을 한 짐씩 지고 곡강(曲江) 봇살을 건너, 읍내 장터에 가서 팔았다.
지금은 31번 지방도로에서 일월면 곡강리로 가는 곡강교가 놓여있지만 옛날에는 영양면 주치재에서 척금대 산길을 내려가서 반변천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곡강리로 갈수 있었다. 일월면 곡강리는 일월산에 흘러 내려온 물이 마을을 U자형으로 감싸고 굽이 쳐 돌아서 가는 곳이었다. 곡강리 맞은편에 현무암으로 깎아지른 높은 절벽 아래 시퍼런 강물이 흐르는 곳이 척금대이다. 곡강은 행주형(行舟形)지형으로 배가 물에 떠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곡강리에는 우물이 없었다. 행주형(行舟形) 지형에는 우물을 뚫으면 배가 가라 앉아 동네가 망한다며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강물을 길러다 식수로 사용했다. 아침이면 동네 아낙네들이 강가로 나와 세수도 하고 옹자배기에 강물을 하나 가득 떠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갔다.
형제는 강가에 도착하자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를 치켜들고 벌컥벌컥 강물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엉덩이를 치켜들고 강물을 마시던 대수가 갑자기
“만수야, 저기 뭐로?” 하고 말했다. 물을 마시던 동생 만수가
“머 말이고?” 하고 형에게 물었다.
“야야, 저기 빤짝 빤짝 그는 기 뭐로?”
“난 안 보인다마는, 형은 뭘 보고 그노?” 동생 만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니 눈에는 저기 빤짝 빤짝 그는 돌이 안보이나?”
대수는 동생에게 세차게 흘러가는 여울물 속에 황금빛으로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는 돌 하나를 가리켰다.
“형, 진짜로 저게 뭐로?”
동생 만수가 강물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른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를 주어 들고 나왔다 그 돌은 넘어 가는 저녁 햇빛에 눈이 부신 황금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고야, 이거 금덩어리 아이라!”
가난한 형제는 놀라서 동시에 소리쳤다.
형 대수는 재작년에 무창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었다. 동생 만수는 작년 봄에 문암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형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품을 팔거나 장작을 패서 지게에 지고 읍내 장날에 가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제는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 했다.
형제는 주먹만 한 금덩이를 보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형 대수가 금덩어리를 동생에게 쑥 내밀며
“만수야, 니가 가지고 있어래이.” 하고 말했다.
“아이다. 형이 가지고 있어.” 하고 동생 만수가 한사코 형이 보관하고 있으라며 거절을 했다.
평소 앞, 뒷집에 살고 있는 형제는 우애가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형은 하나 뿐인 동생을 자기 몸 생각하듯 했고 동생은 형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내 놓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날 밤, 형은 품속에 몰래 숨겨온 황금 덩어리를 꺼내 호롱불에 비춰 보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동생에게 금덩어리 반쪽을 갈라 주려고 하니 아까운 생각이 든 것이다. 아침에 장작 한 짐을 지고 영양 장에 갈 때 혼자서 갔더라면 이 금덩어리는 자기 혼자 차지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괜히 동생과 같이 장에 가서 금덩어리 반을 나눠 줘야 하지 않는가? 형은 밤새도록 금덩어리 반쪽이 아까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동생 만수도 마찬가지였다. 만수는 자신이 발견한 금덩어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만수는 동이 훤하게 뜨는 새벽이 되자 형의 집으로 찾아 갔다.
그런데 형이 먼저 싸리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가? 만수는 말없이 형의 뒤를 따라갔다. 형은 징검다리 하구의 척금대에서 가장 높은 절벽 맞은 편 강가에 섰다. 그곳의 물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바닥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이었다. 두 형제는 나란히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침 강가에 섰다. 절벽위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솔개란 놈이 '꾸룩꾸룩' 하며 형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이 옆에 서있는 동생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동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형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형이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금덩이를 꺼내 동생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동생은 금덩어리 받기를 거절했다.
금덩이를 손에 쥐고 있던 형은 갑자기 강물이 가장 깊은 곳에 휙 던져 버렸다. 주먹만 한 금덩어리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물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형제는 금덩어리가 두 사람의 소중한 우애를 갈라놓는다는 것을 깨닫고 금덩어리를 가장 깊은 강물 속에 던져 버린 것이다. 형제는 그제야 웃음을 띠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곡강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버릴 척(斥), 쇠금(金), 정자대(臺) 척금대(斥金臺)라고 부르며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곳으로 불렀다.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간에도 재산 때문에 싸우며 다투는 작금의 세태에 달이 뜨면 해는 자리를 비켜주지만 척금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인간의 도리를 보여주고 있다.
척금대(斥金臺)- 경북 영양군 일월면 곡강리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