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상진_이야기가 있는 예천문화 탐방]예천의 보루 금당실 이야기(2)
- 김상진(cultureline@naver.com)
예천의 보루
금당실 이야기(2)
김상진
지난번 (금당실이야기 1 바로가기) 금당실 이야기에 이어 이번엔 이곳에 터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보일 듯, 말 듯 한 마을의 속살들을 한겹 한겹 벗겨 볼까 한다. 물론 지금 언급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전설일 수도 있고,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금당실 마을에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살펴온 몇 몇 연구자 선생님들의 견해와 문헌들을 참고하였음을 밝혀 둔다. 그리고 이유인(李裕寅) 대감과 관련한 자료는 경남향토사논총Ⅶ(1998)과 김봉균 교수의『장화식 장봉환 부자의 충효의 일생』을 참고하였다.
사람이 특정 지역에 처음 뿌리를 내리고 산 연원을 알아낸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정확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금당실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은 마을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을 통하여 미루어볼 때 청동기시대가 아닌 가 추측하고 있다.
금당실은 행정구역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 속한다. 기록상으로 15세기 초 문헌(文獻)이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그의 손자 문류경(文柳磬)의 맏사위인 박종린(함양박씨 입향조)과 둘째 사위인 원주 변씨 변응녕이 각각 정착하게 된다. 박종린은 16세기 무렵 김안로가 정권을 장악한 후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할 때 처가의 터전이었던 금당실로 들어왔으며, 변응녕 역시 처향(妻鄕)과의 인연으로 금당실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이들 후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지금도 함양 박씨와 원주 변씨가 이곳의 대표적 성씨로 자리하고 있다.
▪ 추원재 ▪
▪ 반송재 고택 ▪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면 곳곳에 선조들의 얼이 배어 있는 고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과 입향조 박종린을 모신 추원재와 사당(경상북도민속자료 제82호) 그리고 조선 숙종때 도승지를 지낸 김빈을 모신 반송재고택(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62호)은 단아하고 고풍스런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채 마을을 지키고 있다.
돌담길을 따리 남동쪽으로 한참 걸어 나오다 보면 용문면사무소 오른쪽에 박종린과 더불어 입향했던 변응년을 모신 사괴당고택(경상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179호)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한말 법부대신을 지낸 이유인이 낙향해 건축한 99칸 대저택의 집터가 두 그루의 노송에 의지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 사괴당 고택 ▪
용문면 금당실을 이야기 하면서 금곡천 서편 죽림리에 자리한 초간종택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초간종택은 선인농학형(仙人弄鶴形: 신선과 학이 어울려 노는 곳)의 명당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종택자리는 만석지기 부자(富者)가 나는 용문 두인(現 예천군 용문면 두인리) 자리와 학자가 나는 지금의 자리를 놓고 비교하다가 비록 백석지기 부자는 나지 않을지언정 학문하는 자는 백대토록 계속된다는 '부불백석문한계승지지(富不百石文翰繼承之地)'로 터를 정했다고 전한다.
▪ 초간종택 ▪
이 종택은 예천권씨 초간 권문해의 조부 권오상이 1589년(선조 22년)에 지은 건물로 안채의 오른쪽 앞에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현재는 마당 왼편에 대동운부군옥 목판본을 보관한 백승각(百承閣)이 자리하고 있고 초간종택 별당을 비롯한 3점의 보물과 여러 점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어 이 초간종택만 살펴보는데도 책 한 권으로 부족할 것이다.
이쯤에서 예천이 자랑하는 보물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郡玉)과 저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 대동운부군옥 목판본 설명하는 권영기종손 ▪
권문해는 1534년(중종 29)~1591년(선조 24) 때 사람이다. 용문면 죽림리 대수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호원(灝元)이고 호는 초간(草澗)이다. 본관은 예천이며 참봉(參奉) 오상(五常)의 손자이고 참의(參議) 지(祉)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명석하였으며 성품이 어질고 청렴함을 근본으로 삼았으며 도의를 숭상하고 공과 사가 분명하였다. 1552년(명종 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당시 성리학을 중시하던 시대에 실학문을 연구해 책과 목판으로 남긴 실학자이다. 낙향하여 선조 15년(1582)에 초간정사를 지어 학문에 열중하였는데 초간정을 짓기 전부터 자신의 호를 '초간'이라고 했으며 초간이란 선계 권용이 쓴 초간정사 사적과 박손경이 쓴 중수기문에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저주서간(滁州西澗)이란 시의 ‘홀로 물가에 자라는 우거진 풀을 사랑하노니'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 초간일기 ▪
대동운부군옥은 권문해가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인 1589년(선조 22) 20권 20책으로 편찬을 완료하고, 세 벌을 정서하여 보관하였는데 2권은 소실되었으며, 권문해의 아들 권별(權鼈)이 남은 고본에 의하여 한 벌을 정서하여 정산서원(鼎山書院)에 보관하였다. 그 뒤 1798년(정조 22) 7세손 권진락(權進洛)이 정범조(丁範祖)의 서문을 받아 초판을 펴냈고, 1812년(순조 12)에 간행을 시작하여 1836년(헌종 2) 완간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내용을 살펴보면 한.중 양국의 문헌 중에서 단군시대로부터 편찬 당시까지 우리나라의 지리, 역사, 인문, 문학, 식물 ,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하여 놓았다.
책명에서 '대동(大東)'이라는 말은 '동방대국(東方大國)'이라는 뜻으로, 원래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韻府郡玉)>이 중국의 역사기록을 수록하여 엮은 것에 대하여 <대동운부군옥>은 우리나라의 운별 사전임을 밝힌 것이다.
▪ 대동운부군옥 책판 고본 ▪
체제는 음시부의 <운부군옥>과 같이 총 20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전체의 구성은 평성(平聲) 30운, 상성(上聲) 29운, 거성(去聲) 30운, 입성(入聲) 17운의 총 106운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의 구성은 제1운인 동운(東韻)에서부터 시작하여 '동(東)'의 뜻을 2행 협주로 달고, 이 '동'자를 끝 자로 한 숙어(熟語)를 나열하면서 각기 협주(夾註)와 그 협주의 출전(出典)을 밝혔다.
그 다음은 같은 방법으로 이 한자가 딸리는 지리, 인명 등의 유목을 음각(陰刻)하여 쉽게 눈에 띄도록 표시하고, 역시 2행 협주를 달았다. 매 숙어의 끝 자로 쓰인 한자의 수는 총 6,100여 자이며, 그 한자의 국어음은 약 500여 종이나 된다.
<대동운부군옥>의 성격은 23조에 걸친 <대동운부군옥범례>를 통해서 잘 살필 수 있는데,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규명할 수 있다. ① 민족자존의 입장을 고려하였고, ② 원본에 충실하고 멋대로 고치려 하지 않았으며, ③ 자료를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수집, ④ 후대의 감계(鑑戒)가 되도록 힘썼고, ⑤ 유학을 존숭하는 입장에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임진왜란 이전의 우리나라에 관한 일들을 방대하게 수집한 백과사전으로서 가치가 높으며,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서적의 일면을 참고할 수 있어 서지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또한 ≪수이전(殊異傳)≫ 일문(佚文) 가운데 일부가 수록되어 있어 설화문학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초간정사 ▪
막상 이야기를 풀어 헤쳐 보니 한정된 지면을 통하여 금당실을 모두 소개하려 했던 나의 과욕이 금세 들통 난 꼴이 되고 말았다.
금당실 입향조에 대해 제대로 운도 띄우기 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 되는 바쁜 마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또, 초간 권문해에 관한 일화와 자손이 귀했던 권문해의 외아들 권별(權鼈)의 출생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급하기로 해야 할 것 같다.
금당실 마을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유인(李裕寅)이다. 영욕의 삶을 살다간 이유인과 금당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면서 졸필을 거둘까 한다. 저자의 생각으로 이유인에 대한 첫 이야기는 학창시절, 어느 역사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대단한 권력자 한사람이 금당실에 정착하였는데 이 마을로 이주한 속사정은 알 수 없고 대궐 같은 집을 짓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한 아주 나쁜 사람으로만 전해들은 기억이 선하다.
그러던 중 2010년 예천문화원에서『예천을 빛낸 인물 편찬사업』을 진행하면서 예천출신 김봉균 교수를 통하여 아주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유인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지역에는 “금당실 가서 옷 자랑 하지 말고, 구례 가서 집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옷이란 값비싸고 좋은 옷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옷을 맵시 있게 갖추어 입기 위해서는 예를 올바르게 익혀야 하고 이를 뒷받침해 줄 재력도 든든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금당실은 넓은 들판을 기반으로 비옥한 농경지를 확보하고 수백 년에 걸쳐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해 낸 선비마을 이기도 하지만 구한말에는 이유인대감이 정착하면서 한양을 포함한 전국의 세도가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금당 맛질 반서울’ 이란 말이 돌 정도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이유인은 명성황후의 단골무당으로 신임을 받았던 진령군(眞靈君)의 치맛바람으로 벼락출세를 했던 인물이다. 진령군 이씨는 조선 후기의 무당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하고 있을 때 환궁일자를 정확하게 맞추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평소 관우(關羽)의 딸이라 자칭하고, 궁중에 출입하면서 민황후의 총애를 받아 진령군에 책봉되어 권세를 누렸다. 관우의 영을 모시겠다고 민황후를 설득하여 1885년 종로구 명륜동에 관왕묘(關王廟: 北廟)를 건립케 하여 이곳에 살면서 구관기복(求官祈福)의 무리들로부터 숭앙을 받아 한때 큰 권력을 가졌다.
이유인이 진령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 같은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다 열거 할 수 없지만 그와 같은 인연으로 1885년에 43살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3년만인 1888년에 정3품의 직위인 파주목사에 임용되었고 48세 때인 1890년에는 요직으로 널리 알려진 양주목사가 되었다. 이 일로 예천에서는 양주대감으로 통칭되어 이유인의 그 많은 벼슬 중 대표적인 벼슬로 인식되고 있다.
이유인의 다양한 행적 중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1906년 8월에 그가 살고 있던 예천 용문 금당리에 예천 최초로 근대적인사립학교인 남명(南明)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그가 교비를 모두 부담하고 군내 청년 준재를 다수 모집하여 교육하였는데, 이원긍(李源兢) 조병희(趙秉禧) 박정동(朴晶東) 기타 모모 제씨가 협찬하여 재물을 모아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학교설립취지도 내외에 반포했는데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의 의지를 담고 있다. 밖으로는 교명처럼 영남의 땅을 문명의 고장으로 만들겠다는 남명 곧 교남일성 점진문명(嶠南一省 漸臻文明)을 표방하고 있었다.
▪ 사괴당 고택과 이유인 대감의 99칸 집 옛터의 노송 ▪
예천의 보루(堡壘) 금당실
마을 곳곳에 서려있는 금당실의 보루는 비단 풍경만이 아닐 것이다. 금당실 사람들은 나라가 어지럽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홀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치기도 하였다.
《정감록(鄭鑑錄)》에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된 금당실이 담고 있는 보루의 진정한 의미는 진취적인 세계를 향한 인재의 출현이 아니었을까.
근 현대를 통틀어 수많은 인재가 배출된 이곳에 지금도 진행 중인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마을 돌담길을 굽이 돌 듯, 금당실의 또 다른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다.
- 글쓴이 : 김상진
- 현. 예천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