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안경애_영주 문화산책, 지역의 역사인물]조선중기 유의(儒醫) 이석간
- 안경애(cultureline@naver.com)
조선중기 유의(儒醫) 이석간
안경애
❙가난한 명의 이석간의 생애
선비의 고장 영주는 시가지 북쪽에 철탄산(鐵呑山)이 진산(鎭山)으로 앉아 있고 산 서쪽 끝머리에 ‘뒤새’와 ‘관사골’이라는 동네가 길을 사이로 나뉘어져 있다. 길 윗동네인 관사골은 지방철도청이 생기면서 철도가족들의 관사(官舍)가 들어서면서 붙여진 이름이고, 그 아랫동네는 조선 초기 단종 때까지 대대로 벼슬을 했던 공주 이씨 가문의 한 분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못 마땅히 여겨 이 고을에 입향(入鄕)하자마자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고 해서 두서(杜西), 두릉촌(杜陵村), 뒤새로 부르게 된 것이 마을 이름의 내력이라 하겠다.
예전 이곳 뒤새에는 이석간(李碩幹) 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곧 이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는 조선시대 군수 문재도의 효자각이 있고, 그 뒤로 이석간의 아흔 아홉 칸의 집 일부인 별채가 남아있다. 선현들이 남긴 경서(經書)를 통해 귀한 가르침을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이석간은 특히, 의학에 관심이 많아 고금동서에 전래되어 내려온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해 의서(醫書)라는 의서는 수천 독(讀)을 하여 온 나라에 유의(儒醫) · 명의(名醫) · 신의(神醫)로 소문이 나,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활인의술을 펼치다
▪ 사의경험방 10중 이석간 경험방 ▪ ▪ 사의경험방 ▪
어느 날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이석간을 찾아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라고 이석간이 부인에게 물으니, 부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가 불편한 것이 아니오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혼례를 올린 지 1년이 되는데 6개월 전부터 지아비가 몸이 오그라지듯 말라만 들어가는 괴이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라며 치마폭에서 갓난 어린아이 같은 남편을 내려놓았다. 남편이란 자의 괴이한 모습에 이석간은 소스라치듯 놀랐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남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몸은 어린애 같았지만 얼굴에 거뭇거뭇한 수염으로 보아 어른이 분명했다.
이는 이석간이 듣도 보도 못한 왜소증(矮小症) 환자였고, 그를 사이에 두고 부인과 이석간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이는 이석간이었다. “제가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해서 의서(醫書)란 의서는 다 보았지만 이 같은 환자얘기와 처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이석간이 말하자 젊은 부인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이석간은 애처로운 마음에 자신에게 한 달 말미를 주면 고치는 방법을 연구해보겠노라고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석간은 밤잠을 설쳐가며 의서란 의서를 다 뒤져 연구에 몰두했지만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어느덧 약속한 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이석간은 평소 마음이 답답할 때면 오르던 죽령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죽령고개에 앉아 좋은 처방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죽령에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에 피곤이 몰려와 저도 모르게 졸았는데 꿈인 듯 생시인 듯 서로의 등이 붙은 장정 두 사람이 나타나 “그 병은 어릴 때 젖배를 너무 곯아 얻은 병이니 천집(千家口)의 젖을 얻어 목욕시키면 나을 것이다.”라고 일러 준 뒤 사라졌다. 순간, 퍼뜩 잠에서 깬 이석간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젊은 부인에게 남편을 고칠 처방을 알았으니 환자를 데리고 즉시 자신에게 오라는 파발을 띄웠다.
부인의 남편을 고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이석간은 젊은 부인이 데리고 온 왜소증 환자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본 뒤 죽령에서 만난 등 붙은 장정이 가르쳐 준대로 부인에게 말했다.
“이 병은 어릴 때 젖배를 곯았기 때문에 생긴 병증(病症)이오. 치료 방법은 딱 하나! 첫아이를 낳은 산모(産母)의 젖을 천 집(戶)을 돌며, 서 말 세 홉을 얻어 그것을 큰 함지에 담아 남편인 왜소증환자를 모아 온 젖에 세 번 목욕시키면 한 달 내에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처방전을 내렸다. 이석간의 말을 들은 젊은 여인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 은혜는 머리카락을 베어 신을 삼아드려도 모자라나이다.”라고 말하며 이석간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젊은 부인은 그길로 돌아가, 이석간이 일러준 대로 온 동네방네 첫 아이가 태어난 집을 찾아다니며 피치 못할 사정임을 밝히고 젖동냥을 해 백일 만에 천집을 채웠다. 얻어 온 젖의 양 또한 꼭, 서 말 세 홉이었다. 이윽고 이석간은 그 젊은 부인에게서 왜소증 남편을 건네받아 젖이 가득한 통속에 담갔다 꺼내니 아침이슬에 오이가 굵어지듯, 뽀얀 술빵이 부풀어 오르듯 왜소증 환자가 그야말로 담뿍담뿍 쑥쑥 커지는 게 아닌가! 이렇게 세 번을 목욕시키니 비로소 성인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젊은 부부는 그것이 너무 고마워 이석간을 어버이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일화
이렇듯 이석간의 활인의술(活人醫術)은 조선 방방곡곡 뿐 아니라 멀리 중국, 일본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명나라로 추정) 사신이 우리나라 조정으로 찾아왔다. 그는 조선에 천하명의(天下名醫)가 영천(현재 영주)땅에 있다하니 사신과 함께 보내달라는 중국 황제의 요청을 전하기 위해 조선에 온 사람이었다. 이석간은 우리나라의 환자만으로도 눈코 뜰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명나라 요청을 받은 임금이 그에게 다녀오라는 어명을 내렸기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는 수없이 사신을 따라 압록강을 건넜고, 사신과 함께 수일에 걸쳐 중국에 당도할 수 있었다.
▪ 이석간이 명 황제로부터 받은 99칸 집의 일부 ▪
중국에 도착해 융숭한 대접을 받은 지 사흘이 지나자 중국 황제가 이석간을 불렀다. 그가 어전(御殿)에 나가니 황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그대가 사람의 병은 못 고치는 게 없는 천하명의(天下名醫)라 들었소. 이렇게 그대를 부른 것은 나의 모후가 알 수 없는 병이 들어 용하다는 의원(醫員)이란 의원은 모두 불러 진맥케 하고 백방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소. 만약 그대가 모후의 병을 고쳐준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줄 것이나 모후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황실의 기밀유지를 위해 그대의 목숨을 거둘 것이오.”
이석간은 짐작은 했으나 직접 황제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황제는 그를 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고, 이석간이 따라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호화로운 방에 얼굴이 달덩어리처럼 환한 환갑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침상에 누워있었다. 얼굴만 봐서는 전혀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손짓에 이석간은 무릎걸음으로 황태후의 침상으로 가 이불을 젖혔다. 이석간은 그 아래로 드러난 황태후의 하체를 보고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황태후의 하체가 모두 흡사 뱀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석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황태후를 면전진맥(面前診脈)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병이었다.
황태후 곁의 황제도 황태후를 살피는 이석간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의 정적을 깬 것은 황제였다. “어머님이 육년 전부터 말 한마디 못하고 이렇게 누워만 계시니 자식 된 도리로 안타까움이 너무나 크다오. 천하명의인 당신이 부디 고쳐주시오” 대국의 황제이나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은 일개 범부(凡夫)나 마찬가지였다. 그 효심에 마음이 약해진 이석간은 “육 개월만 시간을 주시면 성의를 다해 고쳐 볼 것입니다” 라고 황제와 약속을 해버렸다. 그 길로 이석간은 황제가 마련해준 호화로운 처소에서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의서를 찾아보며 연구에 몰두했지만 병증을 알아 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석간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황태후의 병증을 알아내지 못하면 이국만리(異國萬里)에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이석간에게 불현 듯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운 고향 영주에서 젊은 부인의 왜소증 남편을 치료한 과정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어느 의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병이 아니었던가! 불에 덴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석간은 의관을 정좌(靜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이석간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음일까? 고향 죽령에서 만난 등 붙은 장정이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 “나는 소백산 산신령인데 네가 평소 인명을 귀히 여기고 심성이 착했기에 내 다시 나타났다.”라고 말하더니, 황태후에 대해 입을 떼기 시작했다. “황태후는 원래 음탕한 여자였는데 선왕이 돌아가시고 오랜 독수공방(獨守空房)으로 살다보니 음욕(淫慾)을 참은 것이 병이 되어 음기(陰氣)가 몸에 쌓여 혈기를 막아 생긴 병이니라. 병소(病巢)가 모여 있는 배꼽 주변에 금침(金針)을 꽂아 두면 독기가 다 빠져 점차 회복될 것이다”라고 이석간에게 알려준 뒤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황태후의 병으로 애가 타던 이석간은 모처럼 숙면(熟眠)을 취하고 일어나 소백산 산신령이 가르쳐 준 대로 황태후의 배꼽주변 경혈(經穴)을 찾아 침(針)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한 달 만에 독기가 다 빠져나오더니 환후(患候)가 쾌차되어 자리에서 거뜬히 일어났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황제는 이석간을 불러 칭찬하기를 “과연 조선의 의선(醫仙)인 이석간이야말로 화타 · 편작을 방불케 하는 명의(名醫)로구나.” 라며, 이석간에게 무엇이든 다 들어 줄 것이니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겸손하고 청빈한 선비 이석간은 오직 무사히 고향에 돌아가는 것 외에는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 천도복숭아 쌍잔 ▪
황제는 이런 이석간을 다시 한 번 칭찬하며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소원을 말하라고 강권(强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석간은 “정 그러시다면 소생 고향에 집을 하나 지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황제는 그 즉시 영(令)을 내려 조선으로 사람과 재물을 보내 그의 고향, 영주 뒤새에다 터를 닦아 대궐 같은 아흔 아홉 칸짜리 대저택을 지어 주었다. 또, 도적이나 삼재(三災)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갈공명의 팔진도(八陳圖)에 의해 본채와 별채 여러 채를 짓고 둘레에는 땅을 파 큰 못을 만들어 배를 띄우게끔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 황제의 명으로 이석간의 고향에 집을 짓는 동안 그는 중국에 머무르며 황제의 권유로 중국의 명승지를 두루 구경했고, 그가 귀국 할 때 황제는 금은보화에 비단을 선물로 주며 송별연을 베풀어주었다. 이석간은 황제가 마시던 술과 진귀한 음식까지 맛보게 되었다. 특히, 이석간은 난생 처음 맛본 천도복숭아가 얼마나 달고 맛이 좋은지 기념으로 그 씨를 도포자락에 넣어 갖고 왔는데, 그 씨를 다듬어서 후손들의 혼례의식 때, 의례용 술잔으로 사용해왔다고 전해진다. 이 천도복숭아씨 술잔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공주이씨 가문의 종손이 세전지물(世傳之物) 가보로 보관해 왔다한다.
이석간이 중국황제로부터 받은 99칸 대저택은 구한 말, 고종 황제의 전의(典醫)로서 명성을 떨쳤던 귀운(龜雲) 서병효(徐丙孝) 소유가 된 후, 그 후손 서천수씨 소유가 돼 비지정문화재로 관리돼 오다가 소유주가 바뀌면서 노후한 저택은 헐리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명의 이석간과 99칸 대저택의 내력을 아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천만다행인 것은 증`개축은 되었지만 별체가 남아 있어 1968년 당시 영광중학교 역사교사였던 조재진씨가 대들보의 때자국을 벗겨내 상량일자를 찾아 전설같이 전해 내려오던 이 집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석간
이석간(1509 ~1574)은 허준(1539 ~1615)보다 앞선 시기를 살다간 유의(儒醫)로서 평소 퇴계 선생과 그의 문인들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송암 권호문의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을 보면 ‘1570년(선조 3년) 12월 3일 퇴계선생이 위독하게 되자 구성(龜城, 영주 중심지 산성)에서 이석간이 급히 와 생원 민응기, 판사 이연량과 퇴계 선생의 맥을 짚어본 뒤 약을 조제해 드시게 했다. 그러나 선생은 이미 천운이 다함으로 안타깝게도 효험이 없었고 주변에 사람이 70여명이나 있었지만 하늘 앞에 정성이 부족해 그달 8일 돌아가셨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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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간의 묘 (문수면 만방리) ▪
이 외에도 이석간의 행적을 기록한 문인들의 글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 ‘공주 이씨 공숙공 파보’에는 소윤` 대윤 당파싸움이 극명하던 때 윤원형으로 인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눌은 이광정선생 문집’에는 이석간의 선대(先代)와 영주에 입향(入鄕) 내력부터 두 아들의 무훈 등이 기록돼 있다. ‘병산 김난상 선생 유집’을 보면 “한양에는 침놓는 자가 많아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니 지금 그대(이석간)가 한 번 오셔서 돌봐 준다면 쓰러져 가는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오.”라는 서신(書信)이 적혀 있다.
이석간은 공주이씨 영주 입향조(入鄕祖) 이진(李畛)의 증손자로 봉화닭실마을 충재 권벌(權橃) 선생의 생질(甥姪)이기도 하다. 1534년(중종29년) 진사시에 2등 4인으로 합격했다. 그의 전기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후인들이 그의 경험방(經驗方)을 수집해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을 편집했다. 여기서 사의(四醫)는 이석간 · 채득기(蔡得沂)·박렴(朴濂)·허임(許任)을 말한다. 소고 박승임 문집, 백암 김륵 문집, 눌은 이광정 문집, 병산 김난상 문집, 송암 권호문 문집 등에 이석간의 활인행적과 두 아들의 진충보국(盡忠保國)한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 글쓴이 : 안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