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컬처라인_마을이 있는 풍경]제주도에서 봉화 창마로 시집 온 소나무
- 류명화(cultureline@naver.com)
제주도에서 봉화 창마로 시집 온 소나무
류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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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어느 휴일 오후였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너무도 많이 닮은 할아버지 한 분을 오전리약수터에서 만났다. 놀랄 만큼 닮았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던 등산객이 할아버지께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 이 주변에 좋은 볼거리가 뭐 없을까요?”하고 묻자 할아버지는 등산객 의도와 상관없이 한 참을 생각하시다가 “내 사는 아랫동네 창마라고 있는데 거 가믄 기와집도 많고 제주도에서 시집 온 소나무도 많지”하며 손을 들어 그곳을 가리킨다. |
그러더니 곧장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자신을 그 마을 가기 전 너다리(板橋-판교)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할아버지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제주도에서 시집 온 소나무이야기를 핑계 삼아 두 사람의 대화를 틈타 자청하여 할아버지를 모셔드리고 나니 정말 제주소나무 이야기가 궁금해 졌다.
어쩌다 그 먼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시집을 오게 됐는지 한두 그루도 아닌 숲을 이룰 만큼 많은 소나무들이 내륙의 오지 창마까지 온 사연이 궁금해져 그날 이후 몇 차례 더 이곳을 찾아 왔었다. 마을 어른들과 지역 향토사학자들께 여쭤도 보고 자료검색도 해서 그간의 이야기를 간추려 창마 한옥마을과 제주소나무 숲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록이라 불린 마을
먼저 창마를 소개하자면 봉화읍내에서 915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마을로 ‘오록’이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은 아름다운 한옥 마을로 풍산김씨가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기 전까지는 의령 여 씨와 여안 김 씨가 살았다고 한다.
1696년 입향 시조인 노봉(蘆峰) 김정(金政 : 1670~1737)선생이 이곳 풍수에 반해 터를 잡은 뒤 그의 후손들이 살게 되면서부터 풍산(豊山) 김 씨 집성촌이 되었다. 김정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달(士達)이며 호는 노봉(蘆峯)이다. 그는 1670년(현종 11) 7월 18일 영주군(당시 영천군) 학사정사(鶴沙情舍)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9세가 되던 1708년(숙종 34) 문과에 갑과(甲科)의 제3인으로 급제하여 관례에 따라 내첨시직장(內瞻侍直長)으로 최초의 관직 생활에 발을 내딛었다. 그 후 그는 서빙고 별제와 사헌부 감찰도 경성판관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7월 모친(봉화 금씨)의 연세가 칠순에 임박하여 사직서를 올리고 낙향해 어머니를 모시고 입향해 10여 년간 이곳 창마에서 지냈다고 한다.
6.25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100여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약 4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개 150년 이상 된 고택에서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은 본디 오록(梧麓)이라 불리다가 수곡량이 많았던 이 마을에 큰 창고가 생기면서부터 창마(倉村)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봉화군 전체 벼 수확의 1/3이 이곳 물야면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굳이 풍수를 논하지 않아도 살기 좋은 마을임에 틀림이 없다.
마을로 접어들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조그마한 초등학교. 이 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 숲’으로 지정된 물야초등학교로 아담한 규모와 달리 전통과 역사를 말해주 듯 아름드리나무들과 잘 조성된 교정이 인상 깊다. 학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울울창창 큰 소나무들이 마을길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이 바로 제주도에서 시집 온 제주소나무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경상북도 그것도 심심산중에 위치한 이곳에 ‘생뚱맞게 웬 제주도 소나무래?’ 할 수도 있다. 항해술도 발달하지 않은 그 옛날 어떠한 연유로 제주 소나무가 이곳 창마 어귀에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루게 됐는지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1696년 노봉(蘆峯) 김정선생이 이 마을에 입향할 당시 풍수로 좌청룡의 맥이 약한 기를 보완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소나무 씨앗을 가져와 직접 비보림(裨補林)으로 심었다고 한다.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김정 선생이 아닌 다른 누군가(제주도민들)가 김정선생 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보자면 후자의 이야기에 귀가 쏠린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선생은 제주도와 인연이 있는데, 그 시작은 그가 제주목사로 임명받으면서부터일 것이다. 선생 나이 65세에 제주목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러나, 선생이 재임 중에 직접 솔씨를 가져와 직접 심었다는 이야기는 좀 미심쩍다. 왜냐하면, 당시 제주와 봉화를 오가자면 엄청난 시일이 걸렸을 테고 재임 중 몇 달씩 임지를 떠날 수는 없었으니, 미루어 짐작건대 제주소나무를 선생보다는 가족이나 주변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심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1735년 선생은 65세의 나이에 마지막 공직인 제주목사로 임명 받게 된다. 현지에 도착해보니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제주도민을 측은히 여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선생은 ‘삼천서당’을 창건하고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했으며 때로는 직접 강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녹봉을 털어 항구를 증축하고 방파제를 쌓을 때는 백성들과 함께 직접 돌을 등짐으로 지어 나르며, 우리나라 최초의 축항공사인 ‘화북포’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선생은 1737년 과로로 부임지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선생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제주도민들은 아비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으며 부고를 전해들은 임금은 특별히 삼도감사에게 명해 장사 행렬을 호송케 하여 고향인 창마에서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이 때 운상을 따라 조문 온 제주도민이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주 솔씨를 가지고 와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민들은 학문발전에 기여한 공과 공직자로서 본분을 다했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화북포에 ‘목사김공정봉공비’를 세웠고 지금도 제주도 화북동 화북포구에 가면 이 비를 볼 수 있다 하니 애민정신을 일관되게 실천한 선생은 공직자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 얼마 전, 이 마을 풍산김씨 입향 30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제주도 부지사가 직접 참석해 축하해주고 이곳 제주소나무 숲을 둘러보고 갔다 하니, 제주도민을 아끼고 사랑했던 제주목사 김정 선생과 그를 추모하는 제주도민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품은 제주소나무숲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기러기솟대가 아닌 용솟대가 줄을 서 있어 여느 마을과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는 과거시험 합격자가 생기면 용을 만들어 솟대에 달아 세우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유난히 과거합격자가 많았던 곳이라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용솟대가 마을 앞을 장식하고 있지 않았을까싶다.
구수골로부터 흐르는 개울을 따라 황금 들판이 펼쳐지고 마을 뒷산인 노봉산 줄기가 결 곱게 뻗어 내린 끝자락 양지터에 나지막한 돌담과 기와집들이 어우러져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잘 정비된 고택마을은 이 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지만 창마처럼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단일 성씨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집과 집을 아우르는 수로가 흐르는 돌담마을
집과 집을 아우르며 흐르는 수로와 아담한 고샅길은 철저하게 계획된 터에 집을 앉힌 것처럼 어디하나 흠잡을 것 없이 정갈하다.
동글동글하게 쌓은 돌담과 골목마다 낸 수로에는 맑은 물이 집집을 지나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흘러든다.
오래 전부터 오록리(창마)는 ‘봉황이 알을 품는 마을’로 장풍득수(藏風得水), 산포수회(山抱水回)의 명지여서 큰 인물과 장군이 나는 길지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풍산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 소·대과에 51명, 음보, 수직, 중직에 60명 등 총 111명이 관직에 올랐으며 해방 이후에는 육군 대장과 공군 소장, 공군 준장 등 한 마을에 여러 명의 장군이 배출됐으니 가히 터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한석봉의 친필이 숨 쉬는 노봉정사
큰 기와집을 지나고 아름다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담장 안으로 아담하고 소박하나 기품 있는 노봉정사를 마주치게 된다.
노봉정사는 이 마을 입향 시조인 노봉 김정이 학사 김응조의 고덕을 영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관직을 두고 향리에 돌아와 지방사림의 명현들과 시사공론을 하며 시영을 즐기고 후학을 기르면서 학업을 정진하던 곳이다. 이 마을에는 노봉정사 외에도 화수정사와 장암정이 있는데 세 곳 모두가 풍광이 우수한 산이나 강변이 아닌 마을 안에 자리 잡은 것이 특징이다.
노봉정사 뒤로는 사당이 있고 좌측으로 안채가 있어 조상을 모시는 일과 생활공간 그리고 공부하는 정사를 가깝게 두어, 오고 감이 편리하게 설계 되어있다.
노봉정사의 현판은 한석봉의 친필이라니 이 또한 눈여겨봐진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방형의 토석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장암정이란 정자가 있어 살그머니 사주문으로 들어섰다. 날아오를 듯 곡선을 자랑하는 팔작지붕 처마와 마당을 가득 채운 연못은 더 없이 간결하고 고아하다. 만축정(晩築亭)으로 불리는 장암정은 장암(藏庵) 김창조(金昌祖)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24년(경종 4)에 풍산김씨 문중에서 건립하였으며, 지방 유생들과 사림이 모여 시론을 강론하며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좌편으로는 온돌방 두 칸, 오른편으로는 대청마루 한 칸으로 지어졌으며, 특이한 것은 중간 방은 한자정도 물려, 들여 지은 것이 특이하다. 왜 이렇게 지었는지 몹시 궁금하나 이유를 말해줄 사람이 없는지라 궁금함이 발동해 살그머니 마루위로 올라 가 보았다.
‘아~ 이럴 수가!’ 감탄과 함께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황홀한 순간’ 이다. 마루에 올라 우연히 바라다본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다.
뉘엿뉘엿 해지는 고향의 가을, 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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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넘어야 했던 소백산(죽령)이 붉은 해를 막 삼키려하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소백산 풍경도 볼 수 있고 문수산으로 뜨는 달구경도 할 수 있는 장암정은 창마의 또 다른 백미로 기억 될 것 같다.
이렇게 나무랄 데 없는 마을에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것 같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나니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오르고 안개가 살짝 드리워 마을 풍경이 늦가을 정취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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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인의 정서에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우리들 마음속에 그리던 고향 같은 풍경과 이 마을의 비보림(裨補林)이 되려고 제주에서 시집 온 소나무 숲을 한 바퀴 둘러 보고나니 먹어도 채울 수 없었던 허허함이 달래지고, 마음은 이내 충만해 진다.
이 외에도 이름 예쁜 화수정사(花樹精舍)와 김정선생이 운영했던 ‘오계구곡’, 그리고 8형제가 모두 사마시에 합격해 풍산김씨가 영남에서 뿐만 아닌 전국에서 명문가로 손꼽히게 했던 ‘팔련오계’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앎이 부족하니 좀 더 배우고 익혀 다음 기회에 전하기로 하고 여기서 마무리할까 한다.
- 글쓴이 : 컬처라인
-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