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박장영_종가이야기]양진당
- 박장영(cultureline@naver.com)
양진당
1. 종택이 있는 곳
이 종택은 안동시내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예천방향으로 가다가 풍산읍에서 916번 지방도로 바꾸어 가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하회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이 마을에 있다.
2. 당호의 유래
이 건물은 160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겸암 선생의 종택으로 풍산 류씨 하회마을 입향조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공이 처음 자리를 잡아 지은 것이다. 따라서 이 종택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종택이기도 하고, 풍산 류씨 대종택이기도 하다.
당호인 양진당은 겸암의 6대 손인 류영 공의 아호에서 따온 것이고, 글씨는 최동진이 썼다. 류영 공은 종택을 크게 중수하였고, 겸암정사와 능동재사를 보수하였으며, 문중 족보를 완성한 업적으로 인하여 공의 호를 따서 양진당이라 이름 하였다. 양진당 당호는 사랑채의 대청 안에 걸려 있어서 밖에서는 볼 수가 없고, 사랑채 정면에는 입암고택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겸암과 서애의 형제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 공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3. 건축물의 구조와 배치
양진당은 조선초에 축조한 건물로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 53칸이 남아 있으나 본래 99칸이었다고 전한다. 이 집은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양반집으로 ㅁ자와가인데 남자의 생활공간인 사랑채와 여자의 생활공간인 안채 및 하층민의 생활공간인 행랑채 구분이 엄격하다. 이 종택에는 사당이 2개 있는데 하나는 류중영 불천위 사당이고, 다른 하나는 류운룡 불천위 선생 사당이다.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덕이 있거나 학덕이 높은 분의 제사를 국가나 유림 등에서 영원히 지내라고 하여 받들어 모시는 제사인데 이 제사를 지내는 집안에서는 큰 자랑으로 여긴다.
평면도
연화부수형 형국을 취한 하회 마을에서 연꽃 꽃술에 해당된다는 곳에 남향 하고 있다. 좌측에는 중문칸채와 안채가 이룬 口자형 몸채가 앉아 있고, 몸채 우측 뒤편에는 몸채에 연접되어 오른쪽으로 돌출된 一자형 사랑채가 넓은 사랑마당을 앞에 두고 있다. 사랑마당 앞쪽에는 중문칸채와 이어진 一자형 행랑채가 놓여 있다.
마을길에서 바라보이는 행랑채는 정면 5칸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냈다. 이 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맞은편에 사랑채가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앉아 있다. 좌측에 넓은 6칸통 사랑대청이 놓여 있고 우측에 전후 2칸통 사랑방과 그 옆에 앞뒤로 각기 1칸씩의 작은방과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작은방 앞에는 안채와 연결되는 복도 같은 비밀스러운 통로를 마련해 두었다. 건물의 3면을 둘러싼 쪽마루가 있는데, 정면만 계자각난간을 설치했다. 대청 정면 3칸에는 4분합여닫이 문을 달고 나머지는 고격의 제비초리 맞춤을 한 가운데설주를 세운 울거미널영쌍창으로 꾸며져 있다. 청방간은 4분합들어열개 문이다. 6칸 대청에만 원주를 세우고 그 상부는 주두 위에 쌍소로첨차를 얹은 무익공계로 결구하여 5량가를 얹은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하회에서는 유일한 겹처마로 종가의 품격을 읽게 한다.
대청 중앙 뒤벽 앞에 마련된 한단 높은 들마루는 가장 웃어른이 앉는 곳이다. 口자형인 안채는 전퇴를 들인 커다란 안방과 그 옆의 안대청이 안마당 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안방과 안대청 사이의 1칸 방은 집안 행사시 음식을 준비하고 보관하는 곳으로 원래는 2칸 이였다고 한다. 좌익사는 안방 왼쪽에 세로로 길게 뻗은 부엌 및 반빗간과 고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익사는 안대청 오른쪽에 건너방과 마루방․작은방․대문간 순으로 돌출해 있다. 안방 맞은편에는 중문을 낸 중문간채가 안마당을 가로 막고 있다. 안대청에서 우익사 온돌방 앞까지와 안방 및 안대청 뒤편에는 쪽마루를 시설하고 안대청과 사랑채가 연결되는 접속부에는 조그마한 대청을 두었다. 안마당쪽 전면 네 기둥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모두 방주를 세웠다. 몸채는 5량가의 굴도리 소로 수장으로 꾸미고 양익사는 간략한 3량가로 했다. 사랑채보다 약 7m 정도 낮게 지어져 있다.
사랑채 뒤편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두 개의 사당은 각각 별도의 삼문을 낸 두 곽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당은 방주를 세우고 소로로 수장한 홑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4. 관련인물
가. 류중영(柳仲郢, 1515~1573)
선생의 자는 언우(彦遇)이고 호는 입암(立巖)이며 본관은 풍산이다. 선생은 1540(중종 35)년인 26세 때 식년문과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전적, 사헌부감찰, 평안도 감군어사, 장악원정, 사헌부장령, 사복시정, 의주목사, 형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정주목사, 청주목사, 동부승지,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명종실록에 공은 “강직하고 명철하여 번거로운 일을 능숙히 처리하는 재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명석한 사리판단과 탁월한 행정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적인 일에는 엄정하였으나 사사로운 일에는 대범하여 관리로서의 치적을 올릴 수 있었다.
나.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의 자는 응현(應見)이고 호는 겸암(謙菴)이며 본관은 풍산이다. 선생은 심학연원(心學淵源)의 적통이요, 목민관의 귀감으로 손꼽힌다. 아우인 서애와 함께 하남백숙(河南伯叔)이라 불리는 선생은 슬기롭고 총명하여 15세에 퇴계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공은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독서와 사색에 정진하였다.
선생은 부친의 뜻에 따라 34세에 음직인 전함사별좌로 벼슬을 시작하여 의금부도사, 인동현감 등을 재직했다. 임진왜란 때 풍기군수로 의주의 행재소까지 정조문안사를 파견하고, 군국편의소(軍國便宜疏)를 올리기도 했다.
이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순조 34년 문헌공(文獻公)의 시호가 내렸고 후에 문경공으로 개정되었다. 선생은 풍기의 우곡서원과 화천서원에 배향되었다.
다. 류영(柳泳, 1687~1761)
선생의 자는 덕유(德遊)이고 호는 양진당이다. 선생은 효성이 두터워 부친이 만년에 앞을 못보자 공이 여러 아우들과 함께 밤낮 곁에 모시며 몸소 온갖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은 1728년(영조 4)에 호서지방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청주 등지가 함락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의병을 규합하여 출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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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편액(입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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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정원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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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사랑채 안에서 충효당을 내다 본 모습)
5. 전하는 이야기
가. 하회마을 개기 전설
풍산류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허씨와 안씨가 살고 있었다. 하회마을에서 전하는 향언(鄕諺)에 의하면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에”라는 말이 있다. 이는 허씨가 마을을 개척했고 그 다음에 안씨가 문중을 이루고 살았으며 류씨 가문이 번성했다는 뜻이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이미 다른 씨족들이 터를 잡아 살고 있는 마을에 혼인이나 어떤 특수한 인연이 없는 상태로 입촌(入村)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풍산류씨 이기에 자연 사연이 없을 리 없다.
입향 시조인 공조전서(工曹典書) 류종혜(柳宗惠) 공은 화산(花山) 꼭대기에서 물의 흐름, 산세, 기후 등을 살펴본 결과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천년의 기지로 택해 지금의 양진당 터에다 곧바로 살집을 지었다. 그러나 기둥을 세우면 넘어지기를 수차 반복하자 자연 갈등이 생겨났다.
어느 날 전서가 곤히 자는데 산신령이 현몽하여 “그곳은 네 터가 아니다. 굳이 네 터로 만들려면 3년 동안 적선(積善)하도록 하여라.”라고 했다. 그래서 전서 공은 마을 큰 고개 밖에다 오두막을 짓고 오가는 길손에게 짚신도 삼아주고, 가난하고 굶주린 행인에게 밥도 주었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삼 년 동안 적선을 베푼 후 집을 지었다고 한다.
나. 서애대감과 치숙
임진왜란 때에 전란을 수습하고 대업을 이루어 당시 조정의 태두로서 백성들에게 숭앙받던 대정치가요 유학자이신 서애 선생은 풍천면 하회 출신이다. 위대한 정치가이며 유학의 대가였던 공이 치숙이라 불리며 주위 사람들의 놀림을 받던 숙부의 신통한 선견지명에 탄복했다는 비화가 전한다.
치숙이라 함은 그의 숙부가 술이나 좋아하고 집안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숙맥 같은 분이었으므로 집안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어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 치숙이 조카인 서애를 찾아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서자 집안 하인들도 싫어하여 모두 외면을 하며 겨우 인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치숙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냅다 지르며 술주정을 하였다. 그러다 서애가 학문을 닦는 별채에 들어서자 안색을 고치고 태도를 정중히 하여 “참으로 청명한 날씨로구나. 여가가 있으면 바둑을 한판 둬보는 것이 어떠냐?”하며 책상머리에 다가 앉았다. 서애는 깜짝 놀랐다. 숙부께서 평소에 바둑 두는 것을 본적도 없거니와 우매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숙부가 바둑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자신과 한판 겨루자고 하니 말이다. 서애 선생이 의심쩍은 듯 얼른 대답을 못하니 숙부는 “그러면 우리 집 뒷밭 2마지기를 걸어 놓고 내기를 해 보면 어떨까?” 하기에 속으로는 의아했지만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게 첫국을 두던 서애는 숙부의 신묘한 술수에 물리어 그만 반 국(半局)만에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 그 후 서애 선생은 숙부가 결코 범상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숙부가 찾아와 이르기를 “내일 저녁 무렵 한 중이 찾아와서 하룻밤 숙식을 청할 것이니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완강히 거절하여 우리 집 뒤의 모암으로 보내도록 하되 꼭 명심하여 실수함이 없도록 하여라.”고 신신당부 하며 돌아갔다.
반신반의 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저녁 황혼이 물들 시각에 과연 첫눈에도 영악해 보이는 중이 찾아왔다. “소승은 오대산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던 중이온데 금번 진리를 찾기 위하여 영남산천을 순례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일찍 선생의 덕망과 학문을 숭앙하여 좋은 말씀을 듣고자 찾아왔으니 하룻밤 유숙을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간청하였다. 서애는 “퍽 유감이나 마침 오늘은 집에 불미한 일이 있어 어렵겠습니다. 꼭 이 마을에 머물 양이면 마을 뒷산 모암에 가면 정자가 있을 터인데 그곳에서 유숙할 수 있으니 그리 가도록 하시오.” 라고 했다. 그러나 중은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은 대인을 뵙고 가르침을 받고자 함인데 부디 하룻밤의 유숙을 허락해 주십시오.”하며 땅에 엎드려 간곡히 청했다.
서애 선생은 그 간절한 모양에 일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숙부의 말이 귓전을 때려 끝내 거절하고 하인을 시켜 모암으로 안내케 했다. 이때 치숙은 술기가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중을 맞았다.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나자 곱게 단장한 여인이 맛좋은 술과 안주가 그득한 상을 들고 들어오며 정성스레 대접을 했다. 중은 그 술을 맛보고는 “이런 좋은 곡차가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치숙은 “이것이 이 여인이 순수 빚은 것인데 본래 기생출신이라 그 빚는 솜씨가 비상하지요, 싫어하지 않으시면 얼마든지 있으니 사양 마시고 맘껏 드시오.” 라며 중의 흥을 돋우었다. 하회의 맑은 물로 빚은 명주와 깨끗한 산채, 진귀한 안주에 정신없이 술을 들이키던 중은 드디어 완전히 술에 녹아떨어지게 되었다.
중이 만취되어 정신없이 자고 있을 때 바윗돌같이 무거운 것이 가슴을 눌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참지 못하여 눈을 떠보니 이것이 웬일일까? 뜻밖에 술을 대접하던 선비가 가슴을 타고 앉아 비수로 목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눈을 부릅떠 호령하며
“이놈! 너는 일본의 첩자지? 만약 속인다면 네 목숨은 남아나지 못할 것이니 바른말을 해라”고 칼을 들이대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은 애걸하며 “예, 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소승은 풍신수길의 밀정으로 장차 조선을 치는데 큰 장애물이 되는 서애 대감을 없애라는 지령을 받고 왔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그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였다.
그러자 치숙은 칼을 거두고 바로 앉아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재난은 천운이니 내 작은 인력으로 막을 길 없으나 내 고장은 목숨을 걸어 지킬 것이다. 왜구가 이 땅에 들어온다면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너는 중이라 살려 줄 테니 돌아가 조선을 함부로 침략할 나라가 아님을 알려라.”고 준엄하게 호통 쳤다.
중은 겨우 목숨을 얻어 돌아가 그 경위를 풍신수길에게 전하니 풍신수길은 크게 놀라며 부하 여러 장수들에게 “안동 일대는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명을 내려 임진왜란 때 안동은 무사했다고 한다.
다. 바둑으로 퇴치한 일본 밀정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서 조선의 천기를 살펴보니 경상도 안동 땅에 서기(瑞氣)가 뻗치자 이는 필시 큰 인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이 인물을 없애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여 겐소라는 중을 선발하여 위장 밀파한다. 바로 서애 선생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어느 날 겸암 선생이 동생인 서애 선생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제의했다. 사실 서애 선생은 바둑에 조예가 깊어 조정에까지 알려진 국수라는 대접을 받고 있던 터에 평생 바둑을 두는 것을 보지 못한 형님이 대국을 청하니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형제간에 우애가 남달랐던 터라 수(手)의 고하를 논하기보다는 형님과 대화를 하려는 내심을 가지고 허락을 했다.
돌을 가리면서 문제가 일어났다. 당연히 고수인 서애 선생이 백을 잡아야 하나 형님이 빼앗는 것이 아닌가? ‘수고자(手高者) 집백(執白)’이라 하자 겸암 선생은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안다’는 말만 했다. 바둑은 시작되어 한참 진행되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서애 선생은 궁지에 몰려 빠져나올 묘안이 없었다. 이에 겸암 선생은 웃으며 36여수를 훈수해 주었다.
대패한 서애에게 겸암은 “오늘 석양에 낯모를 중이 와서 바둑 내기를 하자고 할 것이고 숙박을 청할 걸일세. 그를 절대로 재우지 말고 내게 보내게”라고 당부를 했다.
과연 석양에 초초한 행색의 중이 당도했는데 형님의 말씀과 같았다. 바둑을 두는데 낮에 형님과 두던 그대로가 아닌가. 해서 미리 배워둔 36여수를 동원해 바둑을 승리로 한 후 오늘은 집안에 제사가 들어 외인을 재우기 어렵다. 물 건너 형님이 거처하는 정자가 있으니 그리 가서 주무시라고 했다.
밀정과 함께 자다가 겸암 선생은 한 밤중에 일본 밀정의 품을 뒤져 비수를 꺼내 목에다 대고 호통을 치니 혼비백산하여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못이기는 척하면서 제갈량의 팔진도법을 설치해 두고 모르는 체 하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밀정은 그러나 가도 가도 제자리였다. 겸암의 술책인줄 알고 오늘 이후로 절대로 망상을 하지 않기로 하고 떠나갔다. 이 밀정이 떠나기 전에 겸암 선생은 그 밀정에게 엽전 두 냥을 주면서 신이 떨어졌으니 서쪽으로 10리가면 장터가 있을 것이니 거기서 사 신으라고 했다. 그래서 가니 구담 장터가 있고 발에 꼭 특대 짚신 한 개가 있었다. 물어보니 그 값이 두 냥이었다. 이에 밀정은 하회부근에 얼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라. 여우동생을 물리친 겸암선생
서애 대감은 영의정도 지내고 출장입상(出將入相)한 사람이다. 서애 대감과 겸암 선생은 형제로 우애도 깊었다. 그런데, 서애 대감 어른이 나이 칠십에 소가(小家-재혼)하려고 청해서 소가를 했는데, 꽃 같은 젊은 부인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혼인을 하고 얼마 안 있어 꽃 같은 동생을 하나 낳았다. 이 동생도 참 잘 생겼는데 점점 장성했다. 그래도 아버지 혈육인데 우리가 저 동생을 장가보내야 되니 선을 보러 가자고 겸암 선생하고 서애 대감이 수의를 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가집으로 가니, 그 집에서는 서애 대감 명성을 듣고 자꾸 딸을 줄라 했다. 그런데 겸암 선생은 “동생, 안 되네. 사람은 배필이래야 되지, 배필이 아니면 안 되네.” 하면서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애 대감은 “가문도 좋고, 여러 가지 다 좋은데 혼인을 성사시키지요.”하면서 계속 졸라도 겸암 선생은 “안 되네. 안 되네.”했다.
서애 대감은 아무리 형이라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자기가 형보다 못하지도 않거든. 그래서 계속 불평을 하면서 서애 대감은 뒤 따르고, 겸암 선생은 앞서 가는데, 마침 어떤 촌에 오다가 소나기를 만나서 오두막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두막에 들어가 보니 웬 노인하고 처녀가 앉아서, 노인은 신을 삼고 처자는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겸암 선생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더니마는 그 심부름하는 처자를 동생의 배필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도 좋다고 했다. 이 모습을 보니 서애 대감은 성이 많이 났다. 신이나 삼고 있는 하잘 것 없는 노인하고 사돈을 맺으려고 하니 성이 안 나겠는가! 그래도 형이니까 말도 못하고 시름시름 내려왔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형제간에 우애도 끊어질 형편이었다. 서애 선생은 화가 나서 겸암 선생 방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서로 소원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겸암 선생이 서애 대감을 불러서 “동생! 동생! 여기 들어와 보아라.”고 했다. 서애 선생은 마지못해 들어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오늘이 동생 혼사 날인데 여기 있으면 제수씨가 올 것이니까 있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방에 있었는데 새벽녘이 되니까 뜰 담장 아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가, 말하자면 구미호(九尾狐)가 죽어 있었다. 이어 저번에 보았던 심부름하던 그 처녀가 들어오더니 하는 말이 “이만하면 되지요?”라고 했다.
갑자기 여우가 나타나고 또 처녀가 나타나니 서애 대감은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겸안 선생이 말하기를 “동생! 동생! 우리 예전에 아버님을 소가 들일 때 색시로 들어온 어머니가 여우였어. 아버지가 홀려서 그래 된 것일세. 그런데 아버지가 들인 색시가 여우라고 말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여우가 새끼를 낳았는데, 역시 구미호였던 것일세. 그러니 아버지 혈육을 우리 손으로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안 그런가? 그래서 남의 손을 빌려서 죽여야 되지.
나는 신을 삼는 사람이 보통 사람 아닌 줄 알았다네. 그런데 만약 재상 집 처녀를 색시로 들였으면 여우동생에게 죽었을 것일세.”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서애 대감이 형님의 안목과 예지력을 알고 탄복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 글쓴이 : 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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