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컬처라인_마을이 있는 풍경]갖은 끼들의 난장, 여기는 청송장난끼공화국
- 이희수
갖은 끼들의 난장, 여기는 청송장난끼공화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꿈에서 토끼를 쫓아가다 우연히 토끼굴에 빠지게 된다. 토끼굴이나 토끼는 그런 연유에 따라, 일상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어떤 곳으로 가는 길, 그 길로 인도하는 누군가로 상징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짐으로써 토끼굴은 여러 세계를 잇는 특별한 구멍이 되었다.
아마도 상징적인 측면에서, 래빗홀이 평행우주라 부르는 수많은, 또 다른 세계를 잇게 해주는 특별한 곳으로 비유된 것이 아닌가 싶다. 평행우주의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나는 한 사람이지만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각 선택을 하는 내가 각기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택한 경우의 수에 맞춰 존재 가능할 수 있는 세계가 또한 존재한다니, 맞춤형 상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평행우주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상상이 되면 안 된다.
여차저차 서론이 길었다.
상상이란 남에게 보여주거나 남을 설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발칙하다. 그리고 자유롭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래빗홀이 수많은 세계를 잇는 구멍인 것처럼 상상도 사람들의 경계를 짓지 않고 이어주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또 다른 세계를 뜻한다면...... .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늘상 그것 역시도 상상만 할 뿐이지, 어떤 결과를 바라는 일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생각하던 이러한 ‘상상의 현실화’를 재미나게 실현해 놓은 곳이 있다. 바로 청송의 장난끼 공화국이 그 곳이다.
갖은 끼들의 난장, 여기는 장난끼 공화국
안동에서 진보방면을 택한다면 살짝 돌아가는 길이 되겠지만 운전은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다. 대신 35번 국도의 안동에서 길안면을 통과하는 길을 택한다면 멀미는 좀 하겠지만 감히 구름과 시선을 마주할 수도 있는,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은 모를 것 같다. 길안면에서 청송으로 들어서는 지방도는 914번이다. 이 길은 낙동정맥의 근사한 기운을 비록 다리가 아닌 바퀴로 느끼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안동과 청송의 미묘한 경계를 잇는 산새를 내려다보며 또는 올려다보며 갈 수 있는 길이다. 대단한 높이는 아니지만 이쪽 마루턱에서 저쪽 마루턱과 시선을 나란히 둔다는 것은 건물들 속에서 분지처럼 살고 있는 지친 이들에게 잠시의 신선한 일이 될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안동이나 청송에 몇몇 분교가 남아 있지만 실상 폐교된 분교가 더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폐교들이 각 지역마다의 특징을 살려 단순한 구경이 아닌 체험과 머무름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관광개발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또한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되었다.
산새를 타고 흘러흘러 가다보면 청송읍이 한 눈에 내려 보이는 길목에서 눈에 띄는 건물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장난끼 공화국 중앙청사, 달빛예술학교다. 단층의 폐교를 2층으로 리모델링해 올리고 공간마다, 벽마다 갖은 끼들을 부려놓았기에 멀리서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장난 좀 치면 어때서?!
친한 사이에서 장난을 툭 던져도 기분 나쁘지 않고 웃고 넘길 수 있는 것은 장난쯤이야 쳐도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난을 치고도 미안하기는커녕 ‘장난도 못 치냐’ 로 대꾸한다. 아마도 장난끼 공화국에서의 ‘나’ 는 조금 이런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장난끼 공화국 안의 모든 것들은 청송의 살아있는 예술적 자산들이다. 때문에 그 끼를 예술로서 승화한다는 것은 장난끼 공화국의 설립 취지이기도 하다. 나아가 장난끼 공화국은 관광지와 특산품을 융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실현함은 물론, 관광라인 개발을 위한 거점이 될 것이다.
이렇듯 장난끼 공화국이 지니고 있는, 그리고 완수해야할 많은 성과적 역할이 있겠지만 사실 그러한 성과는 즐기는 이들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저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장난끼 공화국을 ‘장난끼 공화국’ 이라 여기고 ‘잠깐 장난 좀 치다 갈까’ 라는 상상의 여지를 너그럽게 풀어만 준다면, 장난끼 공화국에서의 하루가 분명 남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상상나라 연합 속 장난끼 공화국
장난끼 공화국의 탄생 배경은 어찌 보면 서글플 수도 있겠다. 주민 평균 연령이 70대 라는 월외리는 이제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찾는 이 조차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현실을 고민하던 한동수 군수는 청송을 알릴만한 다양한 문화자원이 풍부한 것에 착안하여, 단순한 지역관광이 아닌 좀 더 색다르고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를 찾던 중, 강우현 남이섬 대표와의 만남을 통해 장난끼 공화국의 초석이 된 상상나라연합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청송 곳곳의, 인간이 가진 그리고 자연이 가진 기(氣)를 청송만의 기질로 버무려 누구나 놀다갈 수 있는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청송의 장난끼 공화국이다.
2012년 9월 서울프레스센터에서 9개의 자치단체와 남이섬은 상상나라라는 연합국을 결성하고 이어 청송은 가장 먼저 장난끼 공화국으로서 선포식을 가졌다.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공화국 건설은 1995년 폐교된 월외초등학교를 매입해 청사를 건립하게 되었다. 장난끼 공화국이니 만큼, 가능한 많은 끼쟁이들의 손으로 탄생된 장난끼 공화국은 청송의 유명 옹기, 짚공예 등을 전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단순한 체험과 전시는 아니다. 청송의 끼를 오롯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달빛이 휘감는, 달빛예술학교
달빛을 가장 가까이서 머금을 수 있는 월외리의 기운이 녹아든 구, 월외초등학교 운동장에 달빛예술학교를 들어서는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죽 따라 들어가면 장난끼 공화국을 상징하는 알 조형물을 맞이할 수 있는데 도자기 그릇과 타일을 조각 내 다양한 모양으로 재탄생시켜 놓은 것이다. 부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자기 그릇을 사용해 그릇의 밑면에 그 출신인,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까지도 리얼하게 드러나는 이 조형물이야 말로 장난스러운 끼를 절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장난끼 공화국의 가장 큰 모토는 재미난 청송이 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역주민과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그들의 존재를 이 곳 공화국에 고스란히 묻어놓았다는 것이다. 청사 앞에는 일부러 마루를 깔지 않은 대청이 있는 데 그 곳에 다름 아닌 월외리 주민들의 이름이 한 글자, 한 글자가 정성스럽게 적혀있다. 처음엔 누구의 이름인고? 했는데, 장난끼 공화국의 중앙청사를 건립하기 까지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에 대한 배려로 마련된 곳이라 한다. 또한 이곳의 주인이 다름 아닌 월외리 주민들이라는 메시지를 오롯이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월외초등학교 졸업생도 함께 참여하는 전시실, 공예실
달빛예술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전시실을 마주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은 청송은 물론 월외리와 직접 관련이 되어 있는 옹기와 짚공예의 다양한 전시품을 접할 수 있는데, 모든 작품들이 마을 주민들의 손을 거친 것이라 한다.
전시공간을 나서면 이내 공예실이 나오는 데, 공예실은 짚을 이용한 짚공예와 그 밖의 생활 공예품들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실이다. 이곳은 주민들이 상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인데, 농번기를 고려한 평상시에는 서울 등 관련 공예작가들을 초청해 강연도 하고 배움의 기회를 나눌 예정이라 한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교류는 물론 배움과 성장까지도 내다보고 있는 장난끼 난장캠프, 장난끼 작품공모 등 다양한 프로그램 또한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색적인 것은 공예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모두 월외리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 하니, 진정 달빛예술학교로서의 취지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 여겼다.
각각의 전시공간과 공예실은 수십 년 간 고스란히 때가 묻은 칠판은 물론, 구조를 최대한 예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장난끼 공화국 속,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또 다른 래빗홀로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특히나 분교의 작고 아담한 건물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체험이 되겠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들의 향수를 충분히 아우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특히 월외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학교 건물을 지을 때 학교 앞 흙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공부를 했다는 5회 졸업생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장난끼 공화국 중앙청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비단 이 할아버지 뿐 아니라 사실 월외리에 사는 주민 모두는 월외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월외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세월이 흘러 같은 학교에 달빛예술인으로서 입학을 새롭게 한 셈이니 주민들에게 장난끼 공화국은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장난의 여백, 끼를 버무린 난장으로..
지역민과 관광객이 따로 나뉘지 않고 함께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빛예술학교의 많은 공간들은 기대되는 부분이 크다. 이런 면에서 지역 예술의 한계나 막힌 점들을 풀어보고자 또는 다른 지역작가들과의 활발한 교류와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달빛예술학교 2층의 공간은 외부작가들의 유입을 위한 레지던스 공간으로 꾸몄다. 물론 그들의 작업환경을 보다 개선해 나가야할 부분도 없잖아 있겠지만 그것은 앞으로 장난끼 공화국을 더 성장가능토록 하는 남은 과제가 아닐는지 싶다. 숙제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숙제를 잘 해낸다면 언젠가 우등상도 타고 이쁨 받는 일만 남지 않겠는가 싶다.
한편, 어떤 이들이 아직은 미숙한, 처리해야할 ‘숙제’로 보는 부분이 사실은 장난끼 공화국의 의도된 구멍이라면 어떨까? 조금은 이해가 안 될 법도 하지만 이 부분 만큼은 장난끼 공화국에 들어섬과 동시에 우리가 지녀야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레지던스 공간이 있는 청사 2층 옥외난간은 다소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아이 키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난간 높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난끼 공화국이 가드나 담장을 설치하는 식의 방법을 그 곳에 적용한다면 더 이상 장난끼 공화국은 장난끼 공화국일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더 ‘장난칠 일’을 만들기 위해 남겨놓은 공간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의 기대와 상상을 자극하는 장난의 여백이 있는 공간, 아마도 장난끼 공화국이 우리에게 이끄는 래빗홀이 아닐까 싶다.
장난끼를 통해 예술의 난장을 펼쳐도 아무도 혼내지 않는, 장난끼 공화국이 이제 막 개장 소식을 알렸다.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아직은 장난칠 공간도 많을 것이다. 장난끼 공화국 행 티켓을 얻기 위해 잠시 이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그 티켓은 일등석 티켓이 될 것이다.
삶에서의 래빗홀을 찾고 싶다면 지금 바로, 상상나라 연합국행 티켓을 끊도록!
- 글쓴이 : 컬처라인
-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