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상진_이야기가 있는 예천문화 탐방]아! 그리운 맛질의 제상일월(渚上日月) 이여..
- 김상진
아! 그리운 맛질의 제상일월(渚上日月) 이여..
필자가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문화재는 그 가치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떠나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은 짚어 보고 다 같이 공감대를 형성해 보고자 함이 크다.
종이가 사라져 가고 손 글씨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정리해 본지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요즘, 수없이 많은 정보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떠내려가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존경하는 스승에게, 다정한 벗에게 편지글 한 장 남긴지가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고장에서 180여 년 전 한 선비가 시필하기 시작하여 6대에 걸쳐 117년간 쉼 없이 일기를 써서 후손에게 전한 『저상일월』과 민간 기록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더 인정받고 있는 함양박씨 미산 가문의 기록유물들을 소개하면서 그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 제상일월
우리 민족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기록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실천한 위대한 민족임이 틀림없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가문들이 천년을 넘게 혈통과 가계를 정리한 족보를 오늘날 까지 남겨 이어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 원고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필자를 찾아온 손님 한분이 있다. 『나암수록(羅巖隨錄)』의 저자인 박주대선생의 후손이라 자신을 소개한 지인은 『저상일월』과 그 일기 속에 담겨진 예천의 의병활동에 관해 많은 관심과 열정이 있었다.
초입에서 언급한 필자의 안타까움이란 것이 바로 이 지인이 갖고 있던 안타까운 마음과 일치하여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이런저런 숨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저상일월의 일제 강점기 민족독립운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해 주었다.
『1925년 10월 30일 : 밤에 김창숙이 상해임정에서 돌아와 집에서 자고 갔다. 이상룡(李相龍)의 편지글을 갖고 왔는데 200원을 기부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
▲ 김창숙 선생 |
1925년 9월 24일 상해임정에서 초대국무령으로 석주 이상룡(안동 임청각 출신, 내앞마을의 백하 김대락의 매제)선생이 취임한다. 초대 대통령으로 젊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놓았는데 이승만은 외교력을 발휘한다고 미국의 51번째 주로 들어가자는 청원운동을 폈다. 그래서 상해임정 의정원에서 이승만을 탄핵한 이후, 새로 국무령제를 도입했는데 만주에서 독립 운동하던 석주 이상룡 선생을 추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상룡 국무령측에서 군자금이 필요했기에 곧바로 심산 김창숙선생(독립운동가, 광복후에 성균관대학교를 세움)을 보내서 군자금을 모금했는데 아마 이때 방문한 것이리라(추측). 또한 미산가와 석주 이상룡선생과의 가계에 대해 이렇게 언급 하였다. 『6대일기인 '저상일월'을 쓴 가문인 미산고택에는 박주대 할배가 1913년에 돌아가시고, 아들인 문파(文坡) 박면진(朴冕鎭, 1862~1929, 유학자 자는 성극) 할배가 계셨다.
박주대 할배가 석주 이상룡선생의 처외숙부가 되신다. 백하 김대락선생의 외삼촌되시고. 석주이상룡 선생이 볼 때 박면진은 처외사촌이 되신다. 박면진 할배는 생부가 박주학(예천 을미의병부장)이고 모(母)는 검재출신 의성김씨로서 을미의병때 안동의병진에서 소모장으로 활약하시다 일본헌병과 전투 중에 순국하신 김준모선생의 누이이시다.』
%20옛날%20전경.jpg)
▲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 (맛질) 옛날 전경
여기에서 지인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산가의 존재감이나 독립운동에 동참한 공을 내세우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예천이라는 자그만 고을에 당시 독립운동의 거물이면서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추앙받는 심산 김창숙선생이 예천 미산고택을 방문하였다는 역사적 현상만 보더라도 예천이 독립의병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더 깊이 있게 추적하여 현창해야 함이 마땅한데 현실이 그렇게 마음 같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예천이 의병활동의 중요한 근거지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1895년(을미乙未, 고종高宗 32年)
11月 17日- 읍내에 들어갔더니 안동(安東) 의병이 패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참담하여 말할 수가 없다. 선론사(宣論使) 이규진(李圭鎭)이 예천읍에 당도하여 령기(令旗)를 나부끼면서 강제로 삭발하지 않겠다는 조칙(詔勅)을 포고(布告)하였다.
12月 10日- 경병(京兵,官軍) 20~30명이 적성(赤城)과 금곡(金谷)을 지나 본읍(예천읍)에 이르렀다. 그들은 사람을 안동에 보내어 이 사실을 통보하였다.
12月 11日- 안동의병대장의 관문(關文)과 소막장(召幕將)의 유문(諭文)이 돌았다. 권세연(權世淵)이 소막장(召幕將)이었다. 한편 예천에 머물고 있는 경군들은 다 머리를 깎고 왜군(倭軍)의 옷을 입었다.
12月 12日- 경군은 계속 예천읍에 머물러 있다. 안동의병과의 일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 일을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향회(鄕會)를 열려고 하는데 저 경군들 때문에 열 수가 없는 것이다.
1896年(병신丙申, 건양建陽 원년元年)
1月 13日- 문경 사람들이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붙잡아서 목을 베고 시체를 토막냈다고 한다. 지난 갑오년(1894년 동학란 때) 겨울에 김석중이 상주유격장(尙州遊擊將)으로 동학군을 토벌할 때 문경에서 행패가 심했기 때문에 민중의 울분이 쌓여 있다가 폭발한 것이라 한다. 안동의병대장이 의병을 거느리고 예천읍에 당도하였는데 읍민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한다. 다시 들리는 소문에 예안(禮安)과 영주(榮州) 두 고을의 의병들이 안동부에 들어왔는데 오히려 안동 의병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月10日- 의병 제진(諸陣)이 왔다기에 예천읍에 내려갔다. 안동, 예안, 영주, 순흥, 호좌(湖左), 관동(關東) 그리고 예천 의병진(義兵陣)이 백조(白鳥)의 피로 동맹을 맹세하고 있었다.
필자는 2월 10일 기록은 예천의 의병사적 의미로 볼 때 매우 중요한 기록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당시 영남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상주 태봉 일본 병참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서상렬 의병을 비롯한 인근의 의병들과의 연합을 시도하였다. 이때 영남 북부지역 8읍의 의병들이 2월 9일 예천에 집결하였다. 이들 8읍 의병은 2월 13일 중국 춘추시대 제(齊) 환공(桓公)이 규구(葵丘)에서 맹세한 일을 모방하여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며 동맹의 서약을 하였다. 지면이 허락되지 않아 일일이 소개 할 수는 없지만 다섯 가지를 맹세하고 맹약문을 작성하여 결의를 굳혔다고 한다(예천회맹).
또한 예천에서는 1월 5일 박주대(朴周大)가 대장에 추대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대장직을 사퇴함에 동생인 박주상(朴周庠)을 대장에 추대하였다는 역사적 사실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한국의 근대사는 물론 좁게는 지역사의 보편적 가치를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접근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2月 16日- 읍(邑)에 내려갔다. 들리는 소식에 안동, 예안, 풍기, 순흥, 봉화 및 호좌(湖左) 의진義陣이 합세하여 태봉(胎峰)의 왜병을 공격하여 거의 승리 직전에 이르렀는데 막판에 7진(陣)이 분패하고 말았다 한다.
2月 18日- 본진(本陣,예천의병)이 철평(鐵坪) 마을에 유진(留陣)하고 있다고 하며 태봉병참(胎峰兵站)에 있던 왜병이 용궁(龍宮)으로 향하여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지는 예천과 안동임이 분명하다.
2月 20日- 첫닭이 울 무렵 왜병이 안동 쪽으로 이동하였다 한다. 예천의병이 왜군을 쫓아 통양(通讓)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상부장(上副將)이 읍내에 다시 의병소를 설치하였다 한다.
1899年(기해己亥, 광무光武 3年)
4月 7日- 안동 주둔 병정(兵丁)들이 예천읍에 머물고 있는데 화적(火賊) 여러 명을 체포하였다.
1906年(병오丙午, 광무光武 10年)
1月- 대구부(大邱府)에서 예천에 훈령이 내려왔는데 창의(倡義), 즉 상소한 이유를 캐물었다는 것이다. 하회(河回)의 柳秘承(秘書監承), 구미(龜尾)의 김욱래(金郁來), 천전(川前)의 김강서(金綱瑞) 등 세 노인이 명단에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세 분은 을미사변 후에 제일 먼저 통문(通文)을 써서 각읍(各邑)의 유생들에게 궐기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바로 이 때문에 조사당하는 것이다.』
절미하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예천지역에 의병기념관은 차치하고서라도 봉기 기념비나 순국한 유공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받들어 위령탑 하나 정도는 어디엔가 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필자가 소개하고자 한 민간기록문화의 정수인 『저상일월,渚上日月』은 예천 용문면 대제리 속칭 맛질의 미산재(味山齋) 고택에서 쓰여졌다. 미산재는 문화재자료 제137호 지정되었고 함양박씨 정랑공 박종린의 후손 박세주(朴世柱,1612~1727)가 조선 효종 원년(1650)에 금당골에서 대제마을(큰 맛질)로 이주하면서 지은집으로, 그의 5대손 미산 박득영(朴得寧,1808~1886)이 순조 25년(1825)에 현재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마루 위에는 미산제(味山齋)라는 현판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방문했을 때 박득영의 호를 따서 써준 것이라 한다.
▲ 미산고택
저상일월은 미산제에서 전해오는 함양박씨(咸陽朴氏) 6대의 한문초서일기로써 박한광(朴漢光)이 시필자이며, 시필 연대는 1834년(순조 34)이다. 그 뒤 박한광의 차남 박득녕(朴得寧, 1808∼1886)이 일기를 이어 썼으며, 『나암수록(羅巖隨錄)』의 저자인 아들 박주대(朴周大, 1836∼1912)를 거쳐 손자 박면진(朴冕鎭), 증손 박희수(朴熙洙), 그리고 현손 박영래(朴榮來)가 계속 쓰다가 6·25가 발발한 1950년으로 끝나 있다.
이 밖에도 나암수록』·『당시고취(唐詩鼓吹)』·『당조책림(唐朝策林)』·『만국전도(萬國全圖)』·『통감(通鑑)』·『저상일용』등과 더불어「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咸陽朴氏 正郞公派 門中典籍)」으로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8월 1일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후손들이 경기도로 이주 정착함에 따라 경기도에서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저상일월이 예천에 보관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이 가문과 그 유물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선조의 기록문화의 위대함을 알리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귀중한 문헌의 자료들을 오늘의 우리들이 잘 받아들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제대로 활용하고자 함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예천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으면서 근대 100여 년 간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상이 잘 담겨져 있어 지역사를 연구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로 여겨진다.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긴 작품이면서 사가의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국가의 대소사까지 비중 있게 다룬 폭넓은 식견과 참여의식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부분이다. 다시 한 번 저상일월을 돌아보며 한 가문의 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밀려오는 감동에 가슴 벅참을 느낀다.
※ 제목에서 제상일월(渚上日月)이라 표기함은 ‘渚上’ 은 ‘大渚里(대제리)’ 즉 미산재가 있던 마을 이름을 의미하므로 그 속명(俗名)을 따라 불렀음을 알려둔다.
참고 자료
- 김연광.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기 한반도의 국제환경 변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박성수. <117년에 걸친 한국 근대 생활사-저상일월>. 서울: 민속원, 2003.
- 박갑로. <네이버블러그 개털기사>
- 이종범. <자료 한국근현대사 입문>. 서울: 혜안, 1995.
- 최문형.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과 한국>. 서울: 민음사, 1993.
- 매천야록 제1권. 갑오이전
- 글쓴이 : 김상진
- 현. 예천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