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풍산의 노부부
• 강병두 2009-09-21

오래 전에 만들어졌지만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유적을 찾아 사진을 찍기 위해, 풍산에서 가까운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고 다니던 중, 한 여름의 뜨거운 땡볕 아래 밭에서 파를 심던 노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어르신 안녕하시지예?’
‘어디 누~집 아고?’
‘어르신 아이라예! 지나던 길에 두 분 모습이 하도 좋아 보여서요!’
대구 사투리 안동 사투리가 마구 섞여서 나온다.
‘조키는 뭐가 존노?’
두 사람이 아근바근 앉아 있는 모습이 영 어색하여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하니 마지못해 나란히 앉아보지만 할매의 표정과는 달리 어르신은 영 떨떠름한 표정이다. 

‘다 늙으이 사진은 찍어 뭐하노?...존 거 쌔삐랬는데’
‘언지요!...할매요 인자 이런 모습이 다 사라지고 업은께 젊은 내라도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가놀라 안캅니까.’
‘남가가 뭐하노, 공부하나?’
‘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자식들은 모두 도회지에 나가고 생일이나 명절날이 되어야 가끔 내려온다고 하시며 쓸쓸이 돌아서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니 대구에 있는 노모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주 오면 조을낀데....’
잠깐 침묵이 흘렀다.
‘자! 인자 다시 일해야제...’
라고 할매는 일어서서 일하는데 할배는 굼뜬 걸음으로 엉거주춤하더니 밭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일하는 할매 편을 들어 한 마디 거들어보지만 공연한 짓을 했나보다.
‘어르신은 좀 안도와 주시니껴?’

할매가 내게 타박을 놓는다.
‘뭐라카노! 그기 아이고 영감이 무릎이 안 조아가 꼼지락거리질 못하이 그냥 옆에서 눈으로 거들잔나 그것도 모르제...’
할매가 밭을 매다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나를 향해 고개만 돌려 나무라신다. 아차, 실수를 저지른 것을 알고 
‘마이 불편하신데...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어르신요!’
세상 살아가는 일의 헛헛함을 너털웃음으로 답하시는 할아버지
‘우에 병원은 가봤니껴?’
‘가보면 뭐하노 맹 똑같은 말만 하지...’
이어진 어르신의 신세 한탄이다.
‘내가 한창 때는 저 할마이 몰라라 하고 고생 마이 시켰는데 이제 할마이 없인 내 혼자서는 못산다. 우야노 이래라도 도우며 살아야제’
계면쩍은 웃음 속에 방탕했던 젊은 시절에 할머니 속을 썩여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 : 강병두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