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편해문_아시아의 아이들 놀이를 찾아서]굴리고 돌리면서 크는 아이들
- 편해문(hm1969@hanmail.net)
굴리고 돌리면서 크는 아이들
88 올림픽 때 일이다. 개막식이 한참이었는데 한 꼬마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고 나와 귀여움을 받았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굴렁쇠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라는 생각에서 개막식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굴렁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놀이가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놀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굴리고 싶기 때문이다.
▲ 인도, 2007
놀이는 아이들의 심성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굴리고 싶고, 돌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땅이 있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땅을 판다. 농사꾼이 밭을 갈듯이 아이들이 땅을 판다는 것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이다. 아이들은 땅을 가는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셈이다.
아이들은 그러면 언제까지 팔까? 자기 자신이 들어가 웅크리고 있을 정도까지 판다. 그곳이 엄마의 자궁이고 집일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구르고 돌고 놀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도 뭔가를 굴리고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제 몸 전체를 돌리지 못해 안달이다. 이게 놀이의 시작이다.
▲ 인도, 2010
굴렁쇠부터 보자. 아시아와 중동을 다니며 여러 굴렁쇠를 만났다. 작은 실패에서 자전거나 큰 경운기 폐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굴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굴리며 놀았다. 대게는 어른들이 쓰고 버린 것들을 가져와 굴리며 놀았다. 이렇듯 굴리면서 아이들은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굴리면서 자기 마을과 주변을 알아간다. 돌아다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좋은 놀이다. 아이들과 함께 골목과 길을 내달리는 굴렁쇠 놀이 운동을 벌이고 싶다. 자동차 때문에 위험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당장 반대를 하실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고 싶다. ...아이들은 굴리고 싶으니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교육보다 먼저다. 세상이 도무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팽이 치는 모습 또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옛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깎고 못을 두드려 박아 만든 팽이를 썼다. 눈에 띄는 것은 다 감은 팽이줄을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보통 끈을 한번 묶어 썼는데 좀 놀아본 아이들은 병뚜껑을 뚫어 가운데로 끈을 빼 묶어 손가락 뒤로 걸어 썼다. 팽이를 세게 돌리는데 우리가 했던 것보다 더 나은 장치였다.
▲ 인도, 2005
이처럼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놀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놀이에 몰두할 수 있는 널널한 시간이다. 팽이묘기랄 수 있는 것도 보았다. 내려찍듯이 하다가 잡아당겨 자기 손바닥으로 팽이를 받아내는 솜씨였다. 우리가 어려서 했던 팽이찍기도 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박아놓은 내 팽이가 동무들이 세차게 내리꽂은 팽이에 찍혀 둘로 갈라지던 기억이 나게 하는 격렬한 팽이찍기였다.
굴렁쇠를 굴리고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을 지나 또 한곳에서는 움푹 파인 동그란 구덩이 둘레를 소리 지르며 온몸으로 뛰고 노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그란 원만 있어도 이렇게 신명 나게 놀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나게 놀았다. 원을 뛰며 돌다가 어떤 아이는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고, 또 돌다가 원 바깥마당으로 떨어지며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 품속에 원이 있음을 느꼈다. 누가 내게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꼭 이런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
▲ 인도, 2007
아이들 놀이에서 동그라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모든 놀이는 동그라미 속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줄라’라고 불리는 회전놀이기구를 만났는데 참 놀라웠다. 나무로 물레방아를 만드는 기술이 놀이기구를 만드는 데 쓰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내가 본 가장 큰 놀잇감이었다. 어른 둘이 마주 잡고 오로지 힘으로 돌리는 것이 인도의 놀잇감다웠다. 참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나중에는 하나하나 풀어 다른 마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참 볼수록 정감이 가는 놀잇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인 줄 알지만,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정말 우리나라로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이 기구는 내 마음을 끌었다.
▲ 인도, 2007
흔히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다른 것은 탄 아이들이 모두 내린 다음 기다리던 아이들이 우르르 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탄 바구니에 앉았던 아이들만 내리고 그 자리에 기다리는 아이들을 하나씩 태우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한 바구니가 비어도 탈 아이들이 다 채워지지 않으면 그대로 바구니 안에 아이들이 찰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기다리면서 이야기도 하고, 얼음과자도 먹고, 가짜 콜라도 마시면서 기다리는 게 놀이였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다림이 혹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을 서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이 우리 돈으로 100원 정도를 가지고 와서 줄을 길게 선 모습을 보면서 ‘참 아이들은 도는 것을 정말 좋아해!’ 하면서 무릎을 쳤다.
아우랑가바드에서 만난 실팽이는 줄라에 견주면 돌릴 수 있는 가장 작은 놀잇감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무명실을 구멍 두 개인 단추 구멍에 넣어 감아 돌리는 놀잇감과 같았다. 인도에서 더러 실팽이를 보았는데 여기서 만큼 재미난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한 아이가 실팽이를 씽씽 잘도 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단추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단추를 막 깨물어 먹었다. 가까이 가보니 실팽이 사탕이었다. 가지고 놀다가 먹기까지 하는 놀잇감으로 실팽이가 변신을 한 셈이었다. 재미있었다. 이 실팽이를 가까운 가게에서 하나에 1루피(30원)에 팔고 있었다. 참 인상 깊은 놀잇감이자 먹을거리였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오늘도 굴리고 돌리고 지낸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아시는가?
▲ 인도, 2010
- 글쓴이 : 편해문
- 어린이책 작가, 창작과비평사 ‘좋은 어린이책’ 대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위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전문위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편집위원. 쓴 책으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산나물아 어딨노』가 있고, 전래동요를 음반과 함께 펴낸 『께롱께롱 놀이노래』,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 가자 감나무 』가 있다. 아시아 아이들을 담은 사진집『소꿉』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