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11인이 있다!
- 쑤세미(sodoors@nate.com)
초대받지 않은 자를 탑승한 우주선
11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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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인이 있다!/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지음/ 서현아 옮김/ 세미콜론 /2010 |
일본 만화 <11인이 있다>에 붙는 수식어는 여러 개다. ‘SF 만화의 클래식’, ‘일본인이 뽑은 걸작 만화 50선’, ‘불멸의 고전, 불후의 명작’, ‘제21회 쇼각칸 만화상 수상작품’ 등등이다. 쇼각칸은 코단샤, 슈에이샤와 함께 일본 3대 메이저 만화출판사로, 이후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타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 오바타 타케시의 <고스트 바둑왕> 등 쟁쟁한 작품들이 이 쇼각칸 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화천국 일본에서도 전설로 추앙받는 하기오 모토의 <11인이 있다>는 1975년에 《소녀 코믹》에 연재한 SF 만화다. 그는 1990년대 들어서 10년 가까이 그려낸 장편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를 선보이는데, 동성애 코드가 깔려 일명 ‘야오이’만화로 장르가 구분되어도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와 잔혹한 ‘서정성’으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1인이 있다>는 순정만화의 장르를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등장하는 SF만화 뿐 아니라 전 장르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대안이 없는 한정된 공간(우주선만큼 좋은 게 있을까?)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간의 갈등은 독자를 몰입할 수밖에 없게 한다. 더군다나 말풍선 안에 등장하는 짧은 대사 속에 인물의 캐릭터를 녹여내는 비범함이란! 각 행성에서 온 11인의 캐릭터는 ‘서사’가 빚을 수 있는 모든 인물을 응축해 녹여낸 것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해낸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한정된 공간에서 범인을 색출해내는 것처럼 이야기의 밀도와 재미가 높아지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소년탐정 김전일>이 “이건 밀실사건이군.”하는 똑같은 멘트를 해도 충분히 들어줄 용의가 있는 것이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환호하는 것도 영화 내내 보여주었던 밀폐된 공간의 ‘바보’가 ‘천재’로 변모하는 모습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반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인물과 사건에 집중했다고 느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올 때의 신선함이 전해주는 매력은 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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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양식이 있듯 SF만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11인이 있다!> |
나는 옛날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도, 애초에 있었던 인원보다 1명이 더 많다던가 하는 내용이 제일 섬뜩하다. 가령,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럼 네 옆에 걘 누구야?”한다던가, 친구 네 명이서 산행을 하다 산장에 묵었는데 각자 모서리에 앉아 한명씩 옆모서리 친구에게로 다가가 귓속말을 걸었다. 그런데 모두들 다 그 귓속말을 들었다는 설정은 얼마나 오싹한가.
<11인이 있다>의 이야기의 시작 또한 이렇다. 우주공존시대, 은하계의 선망을 받는 우주대학 시험을 놓고 각양각색의 인류가 도전을 하는 일명 우주판 ‘수능시험’이 열리고 있었다. 2년 반마다 한번 열리는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양한 행성의 사람들이 모이고 그중에는 직관력이 뛰어난 타다, 양성인간 프롤, 왕위를 계승받은 마야왕, 그 이웃 별의 소르담4세, 사이보그 간가, 변두리 별에서 온 누움, 세구르계 회백색 별에서 온 바위인간 글렌 글로프 등 각자의 목적으로 지원한 수험생이 한 조를 이루게 된다. 이들은 마지막 실기테스트에서 10인 한조를 이뤄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우주선 화이트호에서 53일간 살아남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화이트홀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경악하고 만다. 화이트홀에 모인 사람은 10인이 아닌 11인이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소개를 하고 직관력이 뛰어난 타다가 한 명 한 명 둘러보지만 모두들 수험생이며 무단 탑승자가 아님을 주장한다. 표류 중인 우주선의 선내 활동 시의 협조성을 알아보는 시험으로 한 명이라도 낙오자가 발생할 경우 10명 전원 불합격이라는 통보에 수험생들은 좌절하고, 비상사태 발생 시에만 누르라는 비상용 버튼은 이미 시작부터 비상사태 발생이라는 무거운 숙제 속에 멤버들은 53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영민한 타다가 직관에 의존해 여러 일들을 해결하자 그런 타다가 혹 11번째의 불청객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고 화이트홀에는 11인의 반목과 경계, 평화와 싸움과 화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우주선 안에도 인종, 계급이 존재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크고 작은 싸움은 지속적으로 일어나 11인은 위기에 빠진다. 그들이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과정과 11번째 멤버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이야기의 긴장감에서 한시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11인이 있다>는 1986년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11인의 우주용사>라는 제목을 달고 1991년 KBS에 방영되기도 했다. 고전이 국어사전에 있는 뜻 그대로 왜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뜻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 나오는 작품처럼 세련된 맛은 없어도 독자에게 철학적 사유까지 이끌어내는 이 아기자기한 그림체를 지닌 만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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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콤비 프롤과 타다 |
특히 직관력은 뛰어나지만 생각과 고민이 많은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 타다와, 양성인간으로 성인이 되면 자신의 성별을 고를 수 있는 가장 입체적이고 역동적이며 사랑스런 캐릭터 프롤의 이야기가 이 SF 스릴러가 왜 순정만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포함되지 말았어야 할 1인은 과연 누구지?’라는 의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마지막에는 그 질문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폐쇄된 공간에서 다양한 인종이 겪게 되는 갈등과 반목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공존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고 이 묵직한 주제는 바로 11인의 캐릭터로 형상화 되니까.
11인이 있다!/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지음/ 서현아 옮김/ 세미콜론 /2010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