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해문_아시아의 아이들 놀이를 찾아서]세상의 아이들 ‘다섯 알’로 놀다
• 편해문 2013-02-05

백석의 시 ‘여우난골族’을 소리 내 즐겨 읽는다. 여우난골족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 아이들끼리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아름답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아이들 놀이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도무지 놀지 못하고 지내는 오늘 대한민국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 10년 정도 아시아 아이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바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으뜸이다.

 

…….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

 

여러 놀이가 나온다. 쥐잡이, 숨굴막질, 꼬리잡이,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 조아질, 쌈방이, 바리깨돌림, 호박떼기, 제비손이구손이, 아룻목싸움, 자리싸움 모두 12가지 놀이가 나온다. 이 많은 놀이를 하루 저녁에 친척 아이들이 모여 놀았다. 서울말로 숨굴막질은 숨바꼭질, 조아질은 공기놀이, 쌈방이는 주사위놀이, 바리깨돌림은 종지 돌리기, 호박떼기는 호박따기, 제비손이구손이는 이거리 저거리 갓거리 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놀이를 졸릴 때까지 하면서 놀았을까?  먼저 이 집에는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다. 그리고 아이들 방도 따로 없다. 그런데 이 집에는 있는 것도 많다. 먼저 또래가 있고 놀 곳이 있고 아이들 스스로 놀 수 있는 놀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 시간이 있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族’은 우리에게 아이들이 노는 데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아시아의 아이들 놀이를 찾아서’ 첫 번째 이야기는 ‘공기놀이’로 시작한다. 먼저, 인도 아이들은 어떻게 공기놀이를 하는지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을 함께 보자.

 

 

▲ 2005 인도

 

돌멩이가 우리보다 좀 크다. 그리고 울퉁불퉁했다. 곱게 다듬어진 돌보다 경우의 수가 많아 더 재미나게 놀 수 있다. 더 오래된 기록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19세기 초 이규경이 쓴 五洲衍文長箋散稿에 공기놀이에 관한 글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이 둥근 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이것을 ‘공기(拱棋)’라고 한다. 둥근 돌을 공중에 던져 손바닥으로 받고 이미 받은 것을 솥발형태로 만드는 것을 ‘솥발공기(鼎足供基)’라고 한다.

 

여기서 솥발공기라는 것은 ‘솥 걸기’(안동), ‘봉 걸기’(상주)라는 솜씨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봉’은 봉우리를 말한다. 공기놀이하는 모습은 비슷해도 이름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데 그동안 곳곳을 다니며 알아낸 것을 정리하면, 경북은 짜개나 자새쫓기, 의성 탐리에서는 남다르게 빤돌이라고 했다. 경남도 좀 다른데 부산은 살구, 마산은 꼼받기, 합천은 깔래, 청도는 찰개, 산청은 짜개받기, 양산은 살구받기, 영일은 짜구 또는 봉구, 전남 벌교는 독밷기, 순천은 독잡기, 전북 남원?임실은 공구밷기, 독밷기, 독줏어먹기, 김제는 독줍기, 고창은 독짓기, 부안은 독살이, 군산 옥구 대야는 알독치기라는 말을 썼다. 특히 경북에서는 공기를 ‘자새’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는데 19세기 김준근이 그린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에 엽전을 베개에 올려놓고 여자아이들 셋이서 놀이를 하는 그림이 있는데 제목이 「게집아희자셰뛰는모양」이다. 엽전이 돌로 바뀐다면 틀림없는 공기놀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준근, 기산풍속도첩, 19세기

 

다섯 알을 가지고 노는 공기와 달리 공기알 수십 알을 펼쳐놓고 하는 ‘많은 공기’는 도팍따먹기, 콩줏어먹기라고 했다. 논산에서는 많은공기를 ‘꿩알’이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은 네팔에서 많은공기를 하는 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 2005 네팔(많은 공기)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공기놀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키르키스스탄에서는 셈하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차크막다시’ 와 다섯 개의 돌이란 뜻의 ‘베쉬다시-Besh tash', 일본은 ‘췌링구’라는 플라스틱 고리 다섯 알을 가지고 공기를 했다는데 모습은 우리 경북지역에서 할머니들이 어려서 했던 ‘까불이’와 같았다. 이 까불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공기’ 와 ‘천재공기’다. 안동에서는 이 공기를 ‘문디자새’라고 하고 제주에서는 ‘서울공기’라고 했다. ‘일본공기’라는 말은 동해안 가까이 있는 울진 강릉 쪽에서 많이 들었다. ‘천재’와 ‘문디’가 견주어져 재미있다. 하는 방법은 한 알을 던져 받으면서 한 알을 집고(손에 두 알), 두 알을 던져 받으면서 한 알을 집고(손에 세 알), 세 알을 던져 받으면서 한 알을 집고(손에 네 알), 네 알을 던져 받으면서 한 알을 집고(손에 다섯 알), 이렇게 네 알까지 한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일본 할머니는 어려서 오테다마(お手玉)라는 콩주머니 놀이(일본 이름은 ‘오자미’)를 노래를 부르며 했다고 한다. 크기가 공기알보다는 크고 곡물을 집어넣어 했다고 한다. 저글링에 가까운 놀이이다. 이 놀이를 우리 할머니들도 많이 알고 계셨는데 두 알이나 세 알을 잇달아 두 손으로 던지고 받고 돌리면서 일본노래까지 부르는 분도 계셨다. 중국은 ‘石子’, 태국은 돌을 잡는다는 뜻을 가진 ‘Mark-Keb' , 방글라데시는 다섯 개의 돌이라는 뜻을 가진 ‘five guti'’라고 했는데, 좀 다른 것은 한 손만 쓰지 않고 두 손으로 올리고 받는다는 것이고, 눈에 띄는 것은 우리처럼 공기알을 손바닥 안으로 쓸어 넣는 ‘알품기‘가 있었다.

 

▲ 2005 네팔(알품기)

 

이란에서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쌩크’라고 부르는데 알까기와 마지막 남은 돌을 손안에 집어넣는 것이 우리 알품기와 같았다. 스무 살 정도 먹은 인도 델리에 산다는 여자도 공기놀이를 안다고 했다. 자기 사는 곳에서는 돌이라는 뜻의 ‘긴따’라고 부른단다. 잡은 것을 왼손에 옮겨놓고 했다. 채기(꺾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우리와 같은 채기는 드물고 손을 뒤집어 받는 채기밖에 못 했다. 흔히 하는 우리나라 꺾기를 보여줬더니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미국 친구들은 공기를 잘 몰랐다. 다만 ‘잭스’(Jacks)라는 것은 알았다. 잭스는 ‘던지는 돌'이라는 뜻의 ‘chackstones'에서 유래했는데 우리 공기와는 조금 다르다. 공깃돌 크기만 하게 삐죽삐죽한 것들을 엇갈리게 이어 붙인 것과 작은 공 하나를 함께 가지고 논다. 위로 던진 공이 땅에 두 번 튀기 전에 잭을 집고 공을 받는 놀이이다. 우리 공기처럼 판이 올라갈 때마다 집는 잭의 개수가 하나씩 올라간다. 공기놀이에서 보면 좀 단순한 놀이이다.

미국 한인촌에 산다는 50대 아주머니가 일러주시기를 섬머스쿨에 우리나라 공기와 고무줄이 큰 유행이라고 하셨다. 미국 아이들은 모르는 공기놀이를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서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가게에 있는데 미국 여자아이가 들어오더니 “Do you have Gonggi?”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뉴질랜드에는 공기놀이와 비슷한 놀이로 ‘Knucklebone’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뉴질랜드가 고향이라는 할머니와 Jash(남, 25)에 따르면 너클본은 양의 발목이나 등뼈로 만든다고 한다. 이것은 몽골에 ‘샤가이’와 같은 것으로 몽골 사람에게 물었더니 몽골에서도 양이나 염소의 뼈를 가지고 논다고 했다. 몽골에 가서 보니 가축을 방목하는 곳에서는 공기놀이를 뼈로 하는 곳이 흔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물 뼈로 점을 치던 것이 놀이로 바뀌어 공기놀이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Melissa Martin(여, 33)이 보여준 너클본 솜씨 가운데 우리의 ‘알품기’ 와 같은 것이 있었다. 잭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한 것이고 너클본은 영국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도 했다. 왜 ‘너클본’인가 하면 ‘알품기’같은 것을 할 때 손안으로 공기를 집어넣는데 그 손뼈가 너클(Knuckle)이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아주 유명한 그림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 브뤼겔이 1560년에 그린, 『어린이 놀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 왼쪽 아래 구석을 보면 공기놀이를 동물 뼈로 하는 모습이 보인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잘라내 크게 보면 이렇다. 

 

▲ 피터 브뤼겔(네덜란드), 『어린이 놀이』, 1560

▲ 피터 브뤼겔(네덜란드), 『어린이 놀이』, 1560, 일부 확대

우리나라 공기놀이도 돌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서해 도서 지역같이 바다가 가까운 곳은 고동껍질, 소라껍데기, 꼬막 따위를 가지고 했다. 콩을 가지고도 했다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살구씨 같은 열매의 씨나 논흙을 동그랗게 만들어 하루 말려서 하기도 했다. 안동에서는 공기놀이를 자새 또는 짜개라고 하는데 윷을 가지고 공기놀이처럼 하는 ‘짜개윷’이라는 놀이도 있다. ‘짜개’는 콩, 팥 등을 둘로 짜갠 한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짐작이지만 ‘짜개’가 자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다섯 알’을 가지도 논다는 공통점이다.

 

▲ 차례대로 중국, 한국, 미국, 인도의 공기

 

지금까지 아시아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공기놀이를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공기놀이가 세계 보편적인 놀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고, 까불이, 알품기, 알까기가 고루 퍼져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손과 발을 써서 마음과 바깥세계를 잇는다. 아이들의 손과 발은 세계와 만나는 창이다. 이런 까닭으로 손을 쓰는 놀이는 아이들의 마음과 정신, 육체와 세계를 일깨우는데 참 중요하다. 공기놀이의 놀잇감은 퍽 단순하다. 그렇지만 놀잇감은 단순할수록 좋다. 아이들이 채울 부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돌 다섯 개만 있으면 충분하다. 단순한 놀잇감이지만 이 공깃돌을 가지고 하는 손놀이는 몸과 마음과 바깥과 동무를 하나로 이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면서 정교하고 섬세하게 미세한 근육을 쓸 수 있게 되며 고도로 집중된 몰입과 끈기를 자연스럽게 기른다. 이렇게 공기놀이에 몰입하다보면 공기놀이의 재미를 넘어 평화로움과 만난다. 마치 공기놀이에 빠져든 아이들을 보면 깊은 명상을 하는 듯이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불어 아이들은 자기가 골라서 가지고 놀았던 공깃돌에 애착을 느낀다. 다음날 쓰려고 흙 속에 곱게 파묻어 놓기도 한다. 이런 놀이를 하면서 생긴 놀잇감에 대한 애착은 다른 일을 할 때 이어진다. 공기놀이는 교구놀이나 가베처럼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단순한 공깃돌 다섯 알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놀이이다. 시켜서 하지 않고 스스로 하지만 게임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이다. 공기놀이를 하면서 아이들끼리 어울려 노는 모습은 비싸고 복잡한 장난감을 가지고 홀로 노는 모습보다 그래서 아름답다. 끝으로 네 살 먹은 딸과 아내와 함께 두 해 전 이란에 가서 담은 아이들의 공기놀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2011 이란

글쓴이 : 편해문

어린이책 작가, 창작과비평사 ‘좋은 어린이책’ 대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위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전문위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편집위원. 쓴 책으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산나물아 어딨노』가 있고, 전래동요를 음반과 함께 펴낸 『께롱께롱 놀이노래』,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 가자 감나무 』가 있다. 아시아 아이들을 담은 사진집『소꿉』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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