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죽변항 퉁수국처럼 속 시원한 세상 됐으면..."
- 남효선
"죽변항 퉁수국처럼 속 시원한 세상 됐으면..."
12월 끝자락의 울진 죽변항 풍경
◆ 생선손질 할미의 손끝이 여는 희망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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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퉁수지리탕 한 그릇이면 속이 환해지니더. 새해는 퉁수지리탕처럼 속이 시원해지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니더." |
죽변항에서 "생선손질 최고의 명수"로 이름난 옥련할머니의 계사년 뱀띠해의 소망은 "가진 사람만 맨날 잘사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도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 매서운 겨울바람이 기세를 잠시 누그러뜨린 16일, 경북 울진 죽변항 위판장에서 옥련할머니가 ‘퉁수’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김옥련(78, 죽변면 죽변5리)할머니는 스물다섯 나던 해에 죽변으로 시집와서 50년이 넘도록 죽변항을 지키며, 죽변항으로 오르는 싱싱한 생선을 손질해 온, 죽변항 최고의 "생선 배따기의 명수"로 이름 난 어부다.
죽변항으로 오르는 생선 중 옥련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생선이 없을 정도로 옥련 할머니는 평생을 생선을 다듬으며 살아왔다.
옥련 할머니의 손끝에 잡힌 생선은 금세 먹음직스런 반찬거리로 탈바꿈한다.
맹독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잘 만지지 못하는 복어도 할머니 손끝에서는 그저 여느 생선과 다름없는 맛있는 국거리감에 지나지 않는다.
옥련 할머니가 하루 종일 생선을 다듬는 곳은 죽변항과 이마를 맞댄 죽변수협 위판장 안이다.
죽변항 위판장은 옥련 할머니의 평생 일터인 셈이다.
▲ 23일 한 무리의 어장 배가 죽변항 위판장에 퉁수와 복어를 한 아름씩 풀어 놓고 가자 생선 손질하는
아낙과 할머니들이 빈 드럼통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입찰이 끝난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할머니는 매서운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불어오는 겨울이나,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가을 봄 내내 이곳을 지키며 육남매를 키워냈다.
옥련할머니가 평생 세상과 맞서 살아온 무기는 "남 해꼬지 안하고 지 힘으로 벌어먹고 사는 순한 마음씨"와 "칠십 평생 묻은 손때로 반들거리는 손칼" 하나이다.
자그마한 손칼 하나로 이 태 전 치룬 막내 혼사를 끝으로 육남매를 모두 출가시켰다. 육남매를 키워 얻은 손자손녀들이 모두 열 한 남매이다.
옥련할머니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한 해에 두 번 있는 방학이다. 눈망울 또렷또렷한 손자들이 앞 다투어 할미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옥련 할머니가 앳된 처녀 적부터 거친 죽변항에서 손칼로 생선을 다듬은 것은 아니다.
거친 바다와는 영판 상관이 없던 농촌마을인 북면 흥부 땅에서 죽변으로 시집을 온 뒤, 연년생으로 아이 여섯을 낳던 해에, 바다로 나간 지아비가 영 돌아오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옥련할머니는 핏덩이 막내를 업고, 귓불을 에는 바닷바람에 맞서 생선을 다듬었다.
할머니의 하루 벌이는, 많을 때는 10만원을 벌 때도 있지만 대부분 5만원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나간 가을에는 벌이가 영 시원찮았다.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오징어 철에 도무지 오징어가 잡히질 않아 애를 많이 태웠다.
◆ 퉁수는 ‘못생겼지만 맛은 최고’인 죽변항의 명물
▲ 모습이 "못생겨" 울진지방에서는 "퉁수"로, 강원도와 전라도 지방에서는 "삼식이", "멍텅구리"로 부르는 "쏨뱅이목"의 삼세기.
삼세기는 최근 겨울철 최고의 매운탕감으로 각광받으면서 "없어서 못 팔" 어종으로 대접받는, 죽변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퉁수는 얼굴이 울퉁불퉁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쏨뱅이목"으로 "삼세기"이다.
미끈하게 잘 생긴 대구나 방어, 황열기(붉은 우럭)와는 달리 퉁수는 이름만큼이나 생김새 또한 못났다.
때문에 가격 또한 대구나 황열기에 비해 턱없이 싼 편이다.
그러나 옥련 할머니는 죽변항에 잡히는 고기 중에서 퉁수를 제일로 맘에 들어 한다.
"꽉 맥힌 속을 단숨에 확 뚫어주기" 때문이다.
▲ 겨울철, 죽변항 위판장의 생선 손질 작업 모습.
최근에는 해장국으로 각광받고 있는 퉁수와 복어, 대구가 위판장을 가득채울 만큼 대풍을 이룬다.
할머니는 육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우며 "속이 콱콱 맥히고 천불이 날 때" 마다 퉁수국을 끓여 속을 풀었다고 한다.
무를 얇게 썰어 냄비에 앉히고 내장을 발려 낸 퉁수를 뭉텅 도막내어 넣은 뒤, 파와 다진 마늘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끓여 단숨에 훌훌 마시면 금세 답답하던 속이 시원해진다며 환하게 웃는다.
옥련 할머니는 이 태 전에 치른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집으로 불러 "퉁수 지리탕" 한 그릇씩 대접했단다.
자식에게 끓여 먹이듯 갖은 양념을 넣어 정성껏 대접했다고 한다.
옥련 할머니가 퉁수지리탕을 끓여 먹인 것은, "속 시원한 퉁수지리탕 먹고 속이 확 뚫리는 정치 좀 해달라."는 바람에서다.
어느덧 2012년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가 꼬리를 감추고 계사년 뱀띠의 붉은 해가 죽변항을 박차고 떠올랐다.
새해를 맞은 옥련 할머니의 바램은 소박하다.
"그저 실업자 없이 일할 곳을 많이 만들어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게" 할머니의 꿈이다.
또 하나 있다. 이 태 전에 결혼시킨 막내아들이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서민주택 정책만이라도 제대로 펼쳐주었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다.
할머니의 평생 일터인 죽변항에 겨울 낙조가 내려앉는다. 황홀한 붉은 빛이다.
▲ 울진 죽변항의 "생선 손질 명수"로 이름난 옥련할머니가 잽싼 손길로 "퉁수"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옥련할머니의 생선 다듬는 솜씨는 젊은 아낙들이 흉내도 못 낼 만큼 날래며 정확하기로 이름 높다.
옥련 할머니의 손칼 놀림이 다시 분주해졌다.
낙조가 걷히기 전에 주문받은 퉁수 손질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옥련할머니의 곁에는 여전히 화톳불이 발간빛을 내며 겨울바람을 쫒고 있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