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대숲 설렁이는 죽변항에 오르다”
- 남효선
“대숲 설렁이는 죽변항에 오르다”
어민 스스로 가꾸는 생태어로 현장, 죽변항
죽변항서 자연생태를 되돌아보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도 한 달 남짓 남겨놓은 채 한 해의 끝으로 내닫는다.
수년 전부터 ‘삼한사온’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겨울은 유래 없는 ‘추위와 폭설’을 기록하면서 인간의 약탈에 저만큼 비켜서 있던 자연생태계가 마침내 엘니뇨와 지구온난화라는 가공할 무기를 들고 전 지구적 종말을 예고하듯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른바 ‘자연의 약탈자’인 인류의 오만에 자연생태계의 보복이 현실화 되고 있는 셈이다.
개발지상주의와 자본지상주의가 최고의 가치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차제에 여전히 그물을 가려 넣고, 그물코의 크기를 늘려가며 생태계의 질서를 자신의 삶처럼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푸른 동해를 가꾸며 죽변항에 삶의 닻을 푼 죽변 어민들이다.
동해연안 울진지역 해촌은 ‘정월 보름’과 ‘이월 영등’ 세시를 기점으로 한 해 살림살이 준비로 부산해진다. 특히 ‘바람의 신’을 기리는 이월 영등은 ‘어민들의 최고의 축제이자 생업(바다일)현장으로 뛰어드는’ 경계점이다. ‘영등할마이’로 부르는 영등신은 ‘바람의 신’이자 ‘미역짬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어민들에게는 매우 각별한 존재이다.
한 해의 끝자락이자 본격적인 울진대게잡이 철인 12월, 섣달을 앞두고 ‘울진대게의 본향’인죽변항은 푸른 바다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는 어부들의 손놀림으로 분주하다. 대게잡이철을 앞두고 그물을 손질하는 등 눈코뜰새 없다.
뭍을 떠나 세 시간가량 바다를 저어 다다르는 곳이 울진대게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진 ‘왕돌짬’ 능선. 왕돌짬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낙동정맥의 끄트머리가 머무는 곳으로 천혜의 어족 서식지로 이름 높은 곳이다. 어부들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줄인 셈이다.
왕돌짬은 울진과 강원도 삼척과의 경계지점인 고포에서 발원하여 멀리 영덕, 감포 연안에까지 남북으로 형성된 대륙붕의 다른 이름이다. 왕돌짬은 수심이 얕은 곳은 3∼4m에서 깊은 곳은 150m에 달한다.
‘짬’은 바다가 베푼 생명의 텃밭이자 신성공간
어민 스스로 그물 가려 넣고, 그물코 늘리며 생태어업 실천
울진사람들은 예부터 뭍의 산맥이 바다로 내달아 해저에 형성된 바위군락을 ‘짬’ 이라 부르며, 이의 관리와 보전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 왔다.
특히 연안어장에 형성된 짬은 ‘돌미역(자연산 미역)’의 보고로 이름 높으며, 뭍에서 3~40마일 떨어진 왕돌짬은 울진대게의 생산지로서 울진 어민들에게 문전옥답과도 같은 소중한 생존텃밭으로 자리 잡아 왔다. 때문에 울진의 어부들은 자신들의 생존의 텃밭인 ‘짬’을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 해마다 협업노동으로 ‘짬닦기(기세닦기)’를 생업의례로 정착시켜 왔다. 또 미역포자가 돋을 무렵인 동짓달 무렵에는 ‘짬고사’를 지내며, 이곳을 신성공간으로 전승시켜 왔다.
또 몇 해 전부터는 이처럼 소중한 대게 서식지인 왕돌짬을 보전·관리하기 위해 어민들은 물론 대구지방검찰청영덕지청에서 ‘대게 백서’를 발간, 왕돌짬 가꾸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대게잡이 1달 미루고, 그물코도 235m/m 이상으로 늘리고
어민 스스로 대게포획 기간 제도화 정부에 건의
특히 대게자원을 보호하려는 울진 어민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지난 2002년부터 울진 어민들은 스스로 울진대게 관광상품화를 위해 법률상 첫 조업이 허용되는 11월 한 달간 대게를 잡지 않기로 하는 놀랄만한 자제력을 발휘했다. 또 기존의 180m/m 이상의 그물코를 235m/m 이상으로 확대 규격화할 것을 정부 측에 요구하면서 어민들 스스로가 어로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어민들은 또 내친 김에 대게포획 관련 법률이 개정되길 촉구하고 있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인 포획기간을 매년 1월부터 6월 말까지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어민들 스스로가 현재의 무분별한 포획어로가 소멸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삶 또한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연의 경고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수산관련 정부부처에서는 이 같은 어민들의 요구와 관련, ‘대게 생태 연구를 위한 용역’을 맡긴 상태이다. 곧 대게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어민들의 요구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대게는 법률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어종이다. 일명 ‘빵게’로 불리는 대게암컷은 연중 포획이 금지되어 있으며 포획하거나 유통 시에는 사법처리를 받는 등 엄하게 보호되고 있는 보호어종이다. 대게수컷 또한 6월부터 10월 말까지는 포획이 금지돼 있다. 또 수컷이라고 마구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체장이 9㎝ 이상이어야 포획이 가능하다. 산란기간 동안 포획금지기간을 설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게의 으뜸, 박달게의 현장
반자본적 협업노동 관행의 현장...생태민속의 보고
‘죽전’과 ‘등대’와 ‘해안굴곡’과 ‘눈부시도록 검푸른 바닷빛, 파도’
그리고 ‘드라마세트장’으로 이름 난 죽변항의 배후지 ‘대가실’ 전경
“울진대게 먹으러 죽변항 간다.”
울진의 새벽은 죽변항으로부터 열린다. 반도가 동강나기 전 죽변항은 동해의 최북단 서수라를 잇는 거점항이자, 우리 국토의 최동단 울릉도와 독도를 아우르는 거점항 구실을 도맡아 왔다. 때문에 울진에는 이와 관련한 문헌기록과 구전을 비롯한 문화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생태친화적 생활습속과 사회자치관행이 아직도 민중의 숨결 속에 켜켜히 쌓여 있는 민속문화의 보고이다.
또 죽변항은 건강한 노동이 검푸른 바다처럼 넘실대는 곳이다. 거대 자본에 매몰되지 않은, 삶의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협업과 교환의 노동이 펼쳐지는 곳이다. 대표적인 협업노동관행이 1종공동어장에서 이뤄지는 미역채취관행이다. 현재도 미역채취는 각 어촌계원들의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로 이뤄지고 있다.
‘박달’의 삶을 좆는 사람들...반도 역사의 원형 오롯이 남아
죽변항 어판장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울진대게’
울진사람들은 예부터 울진대게 중 "더 크고 더 잘생기고 더 단단한" 게를 ‘박달게’라 불렀으며 그 가격 또한 최고로 쳤다.
‘박달’의 어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예컨대 환웅이 태백의 산자락에서 조선반도의 생명을 연 이래 박달의 뜻은 ‘새로움’, ‘크다’, ‘강함’, ‘밝다’의 뜻으로 풀이되어 왔다.
바로 우리 겨레의 시원인 태백의 신단수 ‘박달’의 현장, 그리고 신라 천년 고도 경주의 옛 이름인 ‘새벌’에서도 그 맥은 이어져 동해의 절경 죽변항의 이름 없는 뱃사람에게까지 각인돼, 오늘날까지도 ‘박달’의 물줄기는 오롯이 살아 전승되어 온 셈이다.
때문에 우리는 ‘박달게’의 현장 죽변항에서, 삶처럼 질긴 역사와의 팽팽한 인연을 다시 만나는 게 아닐까.
울진군은 지난 2011년, 울진대게를 서울 6·3빌딩 아쿠아센터로 시집보냈다. 울진대게의 브랜드화를 위해 6·3빌딩에 상시 전시한다. 서울 도심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한 셈이다.
죽변항과 후포항을 중심으로 대게잡이에 나서는 어선은 약 100여척에 이른다. 대개 3∼10톤 내외의 연안 자망어선이며,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조업한다.
새벽 3시 경 출항해 그물을 당겨 항구로 되돌아오면 대략 9시 경. 이때쯤이면 죽변항의 수협공판장은 싱싱한 대게를 먼저 구하기 위해 수협 경매인을 사이에 두고 상인들 간에 한바탕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경매는 ‘후다’로 부르는 휴대용 목재 가격표시판에 예정가를 적어 제시하는 방식이며, 최고가경락제다. 법률이 정한 포획 최저 길이인 9㎝급이 경락가 1만 원 선에 거래된다. 박달게는 경락가가 5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죽변항은 생태어로 민속의 보고이자 울진 고대사의 시원
죽변 대가실은 외세충돌의 역사적 현장...竹箭(죽전;대화살) 군락지 현존
죽변항을 에돌아 감싸고 있는 죽변곳 일대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패총무지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삼국시대 당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죽변성 유적과 당시 사용했던 ‘죽전(竹箭; 대화살촉을 만든 시누대의 일종) 숲’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진은 대가실 죽전숲길.
죽변항의 옛 이름은 ‘죽진(竹津)’이며 낙동정맥이 만든 동해안 천혜의 항구이다.
죽변항을 에돌아 감싸고 있는 죽변곳 일대에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패총무지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삼국시대 당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죽변성 유적과 당시 사용했던 ‘죽전(竹箭; 대화살촉을 만든 시누대의 일종) 숲’이 해풍을 머리에 이고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최근 울진군은 죽전 군락지를 ‘대숲길’로 조성했다. 해안절벽을 끼고 조성된 하늘을 덮은 대숲길에 들어서면 세상은 고요하고 오로지 절벽을 부딪는 푸른 파도소리뿐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죽전이 울진지방의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어, 이의 군락지인 ‘대가실(죽변항 북동쪽 나들목)’은 국가적 요충지이자 외세 충돌의 역사적 현장인 셈이다.
또 이곳에는 멀리 강릉지방과 봉화, 영주 등 영남의 내륙을 연결하던 봉수대가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죽변항의 인근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유적지는 "죽변 봉평리 신라 고비"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비 중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석비이다. 학계에서는 지금도 봉평신라비의 완전한 성격을 구명하지 못하고 있다. 음각된 문자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한 까닭이다.
최근 울진군은 국비를 지원받아 한국 고대사의 현장인 죽변 봉평리에 ‘봉평신라비 전시관’을 마련했다. 특히 야외 전시관에는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고비석을 원형에 가깝게 제작, 전시하여 ‘고 비석 산 교육장’으로 거듭났다.
죽변항이 주목받는 까닭은 비단 이것에 머물지 않는다.
죽변항이 동해안 제일의 항구로 각광받는 까닭은 대게와 방어와 오징어와 대구와 미역과 고등어와 꽁치 등 동해안 어종의 ‘종 다양성’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생태박물관임과 동시에 전통문화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민속의 보고라는 점이다. 여기에 동해안 인류의 시원지라는 역사성이 한데 어우러져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죽변항은 지난 2002년 해양수산부로부터 "어항수질개선 대상 어항"으로 선정되어 동·남방파제 연장신설을 비롯 물양장 정비, 수제선 정비 등 동해안 제일의 어항으로 위용을 갖춘데 이어 최근 ‘죽변 미항가꾸기’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면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절벽을 어루는 푸른 파도 소리따라
물가자미 뭉턱 썰어 한 입 물고 대숲길을 걸어보라“
죽변 등대로 오른 길
최근 새벽녘이나 아침 무렵이면 죽변항에는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그 역동감을 더해준다. 싱싱한 죽변 산 생선을 속지 않고(?) 값싸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오징어배(이까배)가 들어오면 어판장의 강아지도 지전을 물고 다닐 정도로 흥청거렸다.”는 죽변항의 명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물 때 좋은 오징어와 싱싱한 물가자미를 뭉텅 썰어 초고추장 바른 자연산 미역에 싸 한 입에 넣고, 청동기시대 옛 패총무지를 밟으며 남한에서 최고로 높은 등대에 올라 왜구를 향해 날아가던 시누대를 실겅이는 바람소리를 듣는 일이란.
가히 죽변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삶의 희열이자 소중한 자연의 질서를 재확인하는 성찰일 터이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