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박장영_종가이야기]청계종택(靑溪宗宅)
- 박장영(jangypark@korea.kr)
▲ 청계종택 전경
1. 종택이 있는 곳
청계종택은 안동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영덕 방면으로 12km 정도 가면 왼편에 고가들이 즐비한 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이 마을에 있다. 이곳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인데 의성김씨 집성촌으로 의성김씨 중시조의 대․소 종택이 모여 있다.
2. 종택의 규모
보물 제450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계종택은 청계 김진 선생의 부친인 예범 공이 16세기 초에 건립하였으나 1587(선조 20)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학봉 김성일 공이 1588년에 재건하였다. 학봉 공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의 재상집을 보고 지었다는 설이 있는데 집의 평면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이 종택은 대지가 1200여 평이고, 건평이 140여 평이며 총 55칸 규모의 집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 평면도
청계종택은 '一'형 사랑채와 'ㅁ'자형 안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巳'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일반적인 ㅁ자형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 잡고 커다란 대청이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 보다 오히려 더 깊숙이 별채처럼 외진 곳에 배치하여 방문객이 행랑채 대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 밖에 종택에는 사당과 문헌실이 있다. 사당은 본채의 북쪽 뒷편 산언덕에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이고 겹처마이다. 문헌실은 사랑채 왼편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의성김씨 문중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하여 근래에 건립한 것이다.
3. 청계 김진(靑溪 金璡, 1500∼1580)
선생은 의성인으로 자는 영중(瑩仲)이고 호는 청계이다. 선생은 의성김씨 안동 입향조인 거두(居斗) 공의 6대 손이고, 증 승지 예범(禮範) 공의 아들이며, 의성김씨가 내앞에 입향한 이후 오늘날의 명문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의 중흥조이다.
선생은 1525(중종 20)년에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성품이 엄정하고 벼슬에 뜻이 없었다. 부암서당과 임천서당을 열어 문중 제자들의 교육에 치력하였다. 아들 셋이 문과, 둘이 초시에 합격하여 내앞의 문호를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은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증직되었고, 묘소는 임하현 동쪽 경출산에 있다. 장사 때 아들인 학봉 공이 쓴 지석을 묻었고, 우복 선생이 지은 묘갈명을 손자인 운천 공이 1620(광해군 12)년에 세웠다. 뒤에 사빈서원에 제향되었고, 남긴 글은 연방세고에 전한다.
4. 비보림(裨補林)
백운정과 개호송 숲 일원은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 건너편의 백운정 등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半邊川)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자아내는 경승지이다.
개호송(開湖松) 숲은 통례 만근(通禮公 萬謹) 공이 조선 성종 무렵에 내앞마을 앞 수구(水口)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했으나, 선조 38년(1605년) 대홍수 때 유실되었고, 운천 김용 공의 발의로 다시 조성한 숲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전한다.
이 숲은 내앞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이며, 완만한 모래사장에 달빛이 비추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혹은 소가 누워 풀을 되새김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5. 전하는 이야기
1) 육부자 등과지처(六夫子 登科之處)
조선조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봉화의 닭실, 경주의 양동, 안동 하회와 더불어 내앞을 삼남의 4대 길지의 하나로 꼽았다. 청계종택은 풍수가들이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 즉 밝은 달빛 아래에 펼친 비단형의 명당으로 이런 터에는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후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곳에 터를 잡은 중시조 청계 선생과 다섯 아들이 각각 대소과에 급제하니 육부자 등과지처(登科之處)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육부자는 아버지인 청계 김진(靑溪 金璡) 선생을 비롯하여, 아들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 등이다.
2) 산방
대종가 내에서도 안채의 북서쪽 끝 방이 지기(地氣)가 뭉쳐 있는 최고의 터라고 하는데 이방에서 학봉 공 등의 많은 인물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방을 산방이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는데 출가한 딸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 집의 지기가 흘러나간다 하여 출산을 금했다고 한다.
3) 후손 배려
중시조 청계 선생은 이곳에 터를 잡아 살면서 후손에게 아래와 같은 조건이 되면 이 터전의 정기가 다 했으니 이사를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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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청계종택 마루에서 담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갓이 보이면(혹은 말 발꿉 소리가 들리면) 땅의 지기가 다된 것이므로, 영덕 창수의 나라골(창수면 인량리)로 이사를 가라고 일러 주었다. 나). 그리고 영덕 나라골에서 살다가 9개 문중(현재 8개 문중이 살고 있음)이 모여지면 그곳의 지기도 다 했으므로 다시 강원도 명주 금광평으로 이사를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강원도 명주 금광평(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에 땅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
4) 자녀 교육에 각별했던 청계 선생
학봉 공의 부친인 청계 선생은 자녀들의 학문 장려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다고 한다. 의성 김씨 집안에는 시조인 김석(金錫) 공이 아버지 경순왕으로부터 받은 고적(古笛)과 문장검(文章劍) 등 보물이 대대로 전해 내려 왔다. 청계 선생은 이 보물들을 장학기금 용도인 문장답(文章畓)과 함께 가장 학문을 열심히 닦는 자녀에게 전하겠다고 했는데 이 모두가 둘째 아들 귀봉 공의 집에 전해 왔으나, 보물들은 6·25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유실되었다 한다.
고적과 문장검은 귀봉 공의 증손자인 경와(敬窩) 공이 쓰던 연하침(煙霞枕) 및 매죽연(梅竹硯)과 함께 의성김씨 집안의 4보(四寶)로 받들어져 왔다. 연하침은 경와 공이 금강산 만폭동에 들어갔다가 구해 온 것으로, 화석이 된 향나무 목침이다. 습기가 차면 향기와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목침으로, 백운정에서 줄곧 사용해 왔다고 한다.
청계 선생은 일찍 사마시에 급제했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오직 부모 봉양과 자손 교육을 통해 영광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그 결실로 6부자가 사림(士林)의 존숭을 받게 된 것이다.
5) 금오랑(金吾郞)의 세 번 걸음
조선조 장안에서 한때 한 마을에 금오랑(의금부의 금부도사)이 세 번 파견된 것은 조성왕조의 개국 이래 안동의 내앞이 처음 있는 일이라 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 금오랑이 파견된 것은 1694(숙종 24)년에 김진 선생의 현손인 김방걸 공이 당시의 비정을 직소하였을 때이고, 두 번째는 1707(숙종 33)년에 6대손 김세흠 공이 이잠(李潛)의 장폐(杖斃)가 억울하다고 하여 그 부당성을 탄핵하였을 때이고, 세 번째는 1737(영조 13)년에 6대손 김성탁(金聖鐸) 공이 그의 스승 이현일(李玄逸) 공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을 때였다.
이렇게 금오랑을 보낸 것은 고관대작이 내앞에 살기 때문에 보낸 것은 아니고, 더욱이 내앞 김씨문중의 반역죄를 다스리려고 보낸 것도 아니었다. 이는 국왕이 사림의 정당한 항의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어느 한 번이라도 사당(私黨)의 옹호나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고, 대의와 명분에 근거한 떳떳한 선비다운 기품의 발로였기에 국왕도 그 진상을 직접 알아보지 않을 수 없어서 보낸 것이다. 내앞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이렇게 불의를 굽힐 줄 모르는 꼿꼿한 선비들이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글쓴이 : 박장영
- 현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전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콘텐츠연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