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봉화 춘양에서 만난 사람들
- 강병두
한 핸가 두해 전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맵짠 바람이 불던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둑새벽 길을 떠나 눈이 오는 강원도 산골 어디쯤에 있을 섶다리 풍경을 찍으려고 봉화의 춘양을 거쳐 서벽을 넘어 영월을 지나서 안동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농한기에다 추운 날씨 탓인지 거리는 한산하고 인적도 뜸했지만, 춘양을 지나다가 도시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자전거점방’에 모여 한담을 나누는 어르신네들을 만난 적이 있다. 손님은 한명인 것 같은데 터줏대감인양 자전거를 수리하는 주인에게 토를 다는 어르신네들이 예닐곱은 되어보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어르신네는 일을 막 끝냈는지 자리에 앉아있고,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만이 고친 자전거를 이리 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하도 정겹게 보여 사진을 찍을 수 없겠느냐고 하니, 처음에는 데설궂게 대꾸도 하지 않으시던 주인은 다시 부탁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진은 동작이 중요하다며 수리를 끝낸 자전거의 나사를 다시 조이는 시늉까지 하신다. 그러면서 어르신네는 설익은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잠시 여기저기 떠돌았던 적이 있었다는 말씀을 풀어놓으신다.
귀성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르신네도 즐거우셨던지 객지에서 온 손님에게 차나 한 잔 대접하겠다며 다방에 전화를 하신다. 사진도 찍고 옛날이야기도 들었으니 차는 내가 사겠다고 해보지만 손님 대접은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까치 활활 치신다. 안동에 살면서 자고로 ‘봉제사 접빈객’이 가장 큰 일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는지라 어르신의 말씀이 낯설지는 않았다. 몇 번 내우기시더니 어르신네는 내가 부득부득 차를 사겠다고 하자 ‘그래도 되겠냐며?’ 마지못해 물러서신다.
늘 거래하는 단골 다방라도 있는지 차 주문을 여러 번 재촉하는 어르신네의 모습에서 한적한 시골살이의 정취를 엿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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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방주인이 전화를 하고 있는 중에 손님은 점방 안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전거수리점이라지만 안에는 고작 쓰지도 못하는 오토바이 한 대와, 한 번이나 제대로 사용했을 법한 온갖 잡동사니가 어수선하게 널려 있어 과연 이 점방에서 자전거를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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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차는 배달되지 않고, 어르신은 이젠 아예 전화통을 붙들고 계신다. 다방에서 전화를 받으면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이다. 옆의 어르신이 답답했던지 ‘자네 번호를 잘못 누지른 거 아이가?’ 하시며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나선다. 어르신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담이 자나, 와 전화를 안 받노! 자나?’ 하며 말꼬리를 내린다.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주인은 차가 배달되길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마을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기다려도 다방 아주머니는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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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어르신네는 무료함을 달랠 셈인지 아니면 낯선 이방인에게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고치겠다며 장비를 가져와 내가 보기엔 잡을손 뜬 솜씨로 수리를 시작한다.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 서로 안부를 묻고... 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아마도 이곳이 동네사랑방인 것 같다.
이윽고 헐레벌떡 도착한 다방아줌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커피를 돌린다.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벨소리를 못 들었다며 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지만 주인어르신네 경우가 아니라며 인상을 긁고 계시고....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따뜻한 커피를 함께 나누고 후덕해 보이는 다방 아줌마의 애교 넘치는 웃음에 어르신네의 노여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자전거 점방 안에는 이내 훈훈한 정이 번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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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나오신 제일 연장자처럼 보이는 어르신은 건강에 좋지 않아 커피는 사양한다면서도 줄담배를 피워댄다. 손끝이 샛노란 어르신네의 얼굴에서 삶의 연륜이 느껴졌다. 춘양에서 우연히 촌로들을 만나 함께 보낸 시간은,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 삶의 여러 모습을 다양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 글쓴이 : 강병두
-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