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만동_영화이야기]해운대
- 김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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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감독 윤제균
출연 |
16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지난 7월 22일 개봉 후, 불과 26일 만에 전국 640개 스크린에서 900만 명 돌파. 이번 주 중 1000만 돌파 예상. 영화 ｢해운대｣를 검색하면 인터넷이 보여주는 정보다.
나는 순전히 ‘메가쓰나미’라고 홍보하는 시속 800Km의 초특급 지진해일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조조 관객들은 스무 명 남짓이었는데, 여전히 그들은 뽀작뽀작 팝콘 봉지를 주무르거나, 키득키득 옆구리를 찌르며 연애를 하거나, 어쩌구저쩌구 거리낌 없이 휴대폰을 받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앞자리 등받이에 다리라도 턱 걸칠 태세였다.
영화의 스토리는 세 짝이 중심이 된다. 먼저 해운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최만식(설경구 분)과 강연희(하지원 분) 짝. 과거 먼 바다로 고기잡이 갔다가 태풍에 연희의 아버지를 잃고 돌아온 만식은 연희를 잘 부탁한다는 연희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대로 연희를 보살피다가 사랑이 싹트지만, 그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 승현(천보근 분)까지 딸린 현실은 그를 머뭇거리게 한다. 한편 연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몇 사람의 도움으로 해운대에서의 팍팍한 삶을 이어가지만, 오랫동안 만식을 짝사랑해 온 그녀로서는 그의 머뭇거림이 답답하기만 하다.
다음으로 해양 구조대원인 만식의 동생 형식(이민기 분)과 3수생 피서객 김희미(강예원 분) 짝. 형식은 우연히 바다에 빠진 희미를 인공호흡으로 구해주었다가 막무가내인 그녀의 애정공세에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 해양지질학자 김휘(박중훈 분)와 광고대행사 이벤트 담당 이사 이유진(엄정화 분) 짝. 김휘는 일본 열도 서쪽의 잦은 지진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행정 관료들은 가능성이 낮다고 무시해버린다. 지질 연구에 미친 그는 유진과 이혼한 사이인데, 헤어져 사는 동안 어느새 일곱 살이 되어버린 딸 지민(김유정 분)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 초반 전개는 세 짝의 줄기에서 하나씩 가지를 쳐나가는데, 그 가지는 바로 우리의 평범한 삶이다. 일상이란 시시콜콜 우습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며, 더러 우아하지만 사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거니와, 감독은 장기인 코미디에 신파를 섞어 관객들을 키득거리게 만든다.
그러다가, 영화 상영 시간의 반을 지나서 드디어 거대한 쓰나미가 덮친다. 한 순간 쓰나미에 휩쓸린 해운대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빛나는 과학적 진보를 자랑하지만 기실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 자연의 재난 앞에 우리 인간은 죽거나 사라지며 혹은 다치거나 살아남을 뿐이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통하여 세상에 발언하는 사람들이다. 그간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톺아보면, 할리우드식 영웅주의 서사와는 구별되는 휴머니즘 가득한 우리식의 영화, 그러면서 인연의 중요성을 짚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쓰나미’가 아니라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의 죽음과 삶인 것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실감나게 드러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쓰나미를 이용한 것이고. 그런 면에서 ｢해운대｣는 재난영화가 아니라 재난이 낀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괜찮았는데, 박중훈은 그간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우라에 갇혀 영화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듯해 안타까웠지만, 동춘 역을 맡은 김인권의 능청연기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어쨌거나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화면을 압도하는 500m 높이의 지진해일은 놀라웠다. ｢투모로우｣, ｢퍼펙트스톰｣ 등에서 보여준 대로 한스울릭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모팩 스튜디오를 비롯한 국내 CG 전문 업체가 만들었다는 씬들도 대체로 만족할 만했다. 차창에 머리를 박는 갈매기, 광안대교에 거꾸로 처박힌 컨테이너 상선, 쓰나미 후의 해운대 원경 같은 장면들 말이다. 제작비 면에서 10배 이상이 들어가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단순 비교는 사실 말이 안 되는 면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만두기로 하자.
물론 따지자면 어설픈 면이 곳곳에 있긴 하다. 거대한 자연 재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데도 어떤 공포나 긴박감도 느낄 수 없는 엑스트라들의 몸짓도 그렇거니와, 감독의 전매특허인 코미디 씬은 너무 자주 써먹어서 극의 흐름을 깰 정도로 거슬렸다. 드러내놓고 감동을 요구하는 연출은 또 어떤가. 별것 아닌 물살에 만식이 연희의 손을 놓쳐버리는 전봇대 장면도 그렇고, 떠내려 오던 간판에 맞아 만식을 구한 외삼촌(송재호 분)이 죽는 장면이라든지, 쓸데없이 헬기와 바다를 오르내리던 형식이 마지막으로 철부지 재벌 2세를 구하고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 슬픈 코미디다. 김휘가 딸 지민에게 “내가 니 아빠다!”라고 외치는 옥상 대피 장면에서는 외려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해운대｣는 재난 영화의 형식을 빌렸으므로 좀 더 긴박하고 처절하며 절실했어야 했다. 숨이 막히는 긴장감으로 참말이지 손금 위에 땀이 줄줄 흐르는 아슬아슬함이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워낙 뜬금없다보니 혼자 그냥 해보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감독은 영화 속 몇 장면들을 일부러 삽입한 것은 아닐까? 연출력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엉뚱하다 싶은 장면을 무리하게 끼워 넣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것들을 부당한 팁에 대한 비열한 요구나, 보존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에 방점을 찍는 자본주의의 동물성, 전문가의 경고에 무신경한 고급 관료의 상투성, 실제(實際)와 포상(褒賞)의 괴리, 재벌 2세의 질 낮은 향락, 앵벌이와 착취, 가족의 해체 따위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면 좀 너무 가버린 것일까?
｢해운대｣로 더 큰 발판을 마련한 윤 감독은 세계에 먹히는 영화를 만들 거라고 공언했다. 그의 다음 연출작은 ‘SF판타지’가 될 거라는데, 아무쪼록 기대가 크다.
- 글쓴이 : 김만동
-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