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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이까 개락 급래”...오랜만에 활기 찾은 죽변항
- 남효선
“이까 개락 급래”...오랜만에 활기 찾은 죽변항
3주 전 오징어군 형성되면서 연일 만선
동해안 어업전진기지인 울진 죽변항이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울진 죽변항의 명물 오징어가 지난 추석을 전후하면서 3주째 만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부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이까 개락(오징어가 대풍을 이루던 시절, 울진지방 사람들이 오징어 대풍을 일컬던 향언, 이까는 오징어의 일본말임)’이라는 향언(鄕言, folktale)이 유행하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몇 년간에 처음으로 맞는 오징어 대풍이어서, 죽변항의 활기 띤 모습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70년대, 죽변항을 살찌운 어족은 오징어였습니다. 40년대 정어리바리와 50~60년대 명태바리에 이어 오징어바리는 ‘보리고개’로 지칭되던 70년대, 동해연안 갯마을인 울진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이자 가계를 살려 낸 효자 어족이었습니다.
▲ 오징어잡이 불빛
더구나 오징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서 생산유발 효과가 큰 어종입니다. 명태나 대구는 워낙 고급 어종에 속해 아무리 파시가 들어도 선주와 일부 어민들만 살찌우는 것이었지만, 오징어는 횟감과 건오징어, 냉동오징어 등 갈무리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먹을거리로 이용하는 어종이어서 죽변항을 끼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는 ‘서민 생존형 어족’인 셈입니다.
죽변항에 선적을 두거나, 울진 연근해 어장에서 오징어 조업을 마친 뒤, 죽변항 위판장을 이용하는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줄잡아 1일 200여 척에 이릅니다.
▲ 오징어 하선
이들 오징어채낚기 어선에는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의 선원이 조업을 담당합니다.
오징어채낚기 조업은 보통 오후 4~5시 경에 죽변항을 떠나 다음 날 새벽 5시 경에 조업을 마치고 위판을 위해 죽변항으로 오징어를 가득 싣고 들어옵니다.
“다른 고기 아무리 잡혀도 소용없어...오징어가 젤이래”
대개 오징어군이 형성되면 1달에서 40일 간 조업이 이뤄집니다. 오징어채낚기 어선 선원들이 하루에 줄잡아 1000여명이 다음 조업 때까지 죽변항을 무대로 생활하는 셈이지요. 이들이 죽변항에 유발하는 경제 파급은 1인 3만원을 기준으로 1일 3000만원에 달합니다.
오징어 파시가 형성되면 죽변항은 조업 시간인 오후 4시 무렵까지 그야말로 사람들의 발길로 흥청거립니다. 선술집은 물론, 식당, 다방도 호황을 누립니다.
▲ 오징어 널기
여기에 ‘살아있는 오징어’로 생활하는 횟집, 활어장사, ‘마른 오징어’로 살아가는 오징어 덕대장, 건어물 가게, 냉동오징어 취급상, 어름공장은 제법 규모가 큰 자영업자들을 비롯 스치로플 상자 취급상, ‘오징어 배따는’ 아낙들까지 종일 쉴 틈 없는 분주한 날을 보냅니다.
과거 70년대 오징어 파시에는 인근 농촌 마을 아낙들까지 ‘오징어 배따는’ 돈벌이에 나설 정도로 오징어는 죽변항을 지켜 온 소중한 어족입니다. “죽빈항의 개는 지전만 물고 다닌다.”는 향언에서 70년 대 당시 오징어바리의 정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정황을 가늠케 하는 일화 한 토막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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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채낚기 어선을 경영하는 노어미가 꼭두새벽부터 죽변 우체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노어미가 도회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삐뚤한 글씨로 ‘이까 개락 급래’ 여섯 글자를 적어 전보를 치고 부리나케 죽변항 판장으로 내닫습니다. ‘이까 개락 급래’ 전보를 받은 자식들은 열일 체쳐 놓고 밤새 죽변항으로 달려옵니다. 바다에서 쏟아지는 ‘노다지’인 오징어를 건사히기 위해서입니다.」 |
‘이까 개락 급래’는 ‘오징어가 갑자기 많이 잡히니 빨리 내려오라’는 뜻입니다. 당시 전보 요금은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정해지던 터라 평생 죽변항을 지키며 살아 온 노어미의 재치도 엿 보이는 일화입니다.
▲ 오징어 말리기
지난 추석 무렵부터 형성된 오징어 군으로 지금까지 죽변수협 위판장을 거친 오징어는 3,088톤에 이르며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35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2~3주간 더 오징어군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돼, 죽변항은 당분간 흥청거릴 것입니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