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참풀’ 베기
- 남효선
‘참풀’ 베기
참풀나무 잎으로 거름 넣어야 풍년,
소만 무렵 마을단위 협업으로 ‘풀베기’
70년대 후반까지 열린 풀베기대회는 유기농법의 정수
곡우와 소만이 드는 4월은 한해 농사준비로 농촌마을이 부산해진다. 지력을 높이려고 ‘영풀(참풀나무 잎) 넣기’를 하고, 논물가두기를 하며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 ‘논둑 바르기’를 한다. 또 모내기를 하기위해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는 ‘써레질’도 이때 한다. 한해 농사를 망치지 않으려면 오랜 농사 경험으로 체득한 기술을 활용하여 절기에 맞게 순서대로 일해야 한다. 제때 논에 거름을 넣지 못하거나 써레질을 못하면 한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고 마을공동체 단위로 품앗이로써 농사를 짓던 그 시절에는 절기에 따라 농사력(農事曆)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모자리 하는 모습
“참풀을 비료로 쓰는 것은 전통적 유기농법, 80년대 이후에는 화학비료에 밀려나”
소만 무렵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논에 쓸 거름을 하기위해 산으로 ‘참풀’을 베러 간다. 논 거름으로 사용하는 참나무의 풀은 풀이 여리고 부드러운 소만 무렵에 벤 풀을 써야 좋은 거름이 된다. 특히 논에 거름으로 넣는 풀을 ‘참풀’이라고 하여 참나무의 연한 잎사귀를 뜯어 만들었다. 1960~70년대 비료가 귀하던 시절에는 거름으로 쓸 참풀을 베어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참풀을 함부로 베어올 수 없었다. 마을 단위로 풀을 벨 수 있는 구역이 정해져 있는데다가 개인의 욕심으로 풀을 먼저 베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다툼과 갈등이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참풀이 다 자라기 전에 풀을 먼저 베어버리면 안된다. 거름은 그해 마을 농사의 작황과 직결되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풀베기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을 단위로 참풀을 베러가기 전에 마을어른들이 모여 논의한 후 “풀 베러가는 날”을 잡았다. 마을어른들의 영(令)이 떨어진 후에야 참풀을 베었던 것이다. 이렇게 풀을 베러가는 것을 “영풀 벤다”고 했다. 울진 북면 덕구리 사람들은 모내기를 하기 사흘 전후에 ‘매봉산’과 ‘장재산’ 또는 마을 뒷산에서 참풀을 베었다.
|
그 때는 화학비료가 없어 매봉산이나 덕구온천이 있는 산 부근, 장재산 부근으로 풀을 베러 갔지. 소만에 풀을 베야 숙성이 빨리 되어 농사에 좋거든. 똑같은 풀이라도 소만을 넘기면 풀 이 억세져. 그러면 거름 숙성이 늦어지지. 풀 좋은데 가서 참풀만 뜯어. 참풀은 참나무 이파리야. 그래 참풀을 뜯어 와서 덤풀을 만들어. 덤풀은 바짝 말린 풀이지(민남기, 70, 덕구1리) |
풀을 채취하는 양은 농사를 짓는 집의 농사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민남기씨의 경우, 논 마지기수가 많아 하루에 지게로 세 짐씩 일주일 정도는 참나무 풀을 뜯어야 거름으로 충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다. 풀을 베면 그날 집으로 져 날라 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2~3일쯤 풀을 벤 곳에 펼쳐 묵혀 두었다가 말린 다음에 집으로 가져왔다. 이렇게 묵혀 말린 풀을 ‘덤풀’이라고 했다. 논에 줄 거름은 덤풀에 분뇨나 오물을 섞어 만들었다. 농가에서는 대부분 소를 한두 마리씩은 키우고 있었으므로 외양간에 덤풀을 넣어 거름으로 만들었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분뇨나 오물을 퍼부어 거름으로 만들었다가 논에 깔았다.
북면 두천리 사람들도 마을 어른의 “영이 내려야” 참 풀을 벨 수 있었다. 두천리 사람들은 주로 ‘국짓골’이나 ‘우종골’, ‘큰골’로 가서 참 풀을 베어왔다. 집집마다 장정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혹은 집안끼리 어울려 참 풀을 베었다. 참 풀은 떡갈나무 잎사귀를 최고로 쳤는데, 굴참나무가 우거진 곳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선호했으므로 풀베기 경쟁이 치열했다. 굴참나무 잎사귀 다음으로 ‘싱글나무’와 ‘소실나무’ 잎사귀도 참 풀로 즐겨 뜯었다.
참 풀을 벨 때는 두 세 집이 어울려 품앗이로 베기도 했는데, 두 집이 품앗이로 벨 경우, 한 집 당 풀 베는데 이삼일 정도는 걸리므로 두 집 모두 넉넉하게 참 풀을 장만하려면 보통 일주일가량 걸렸다. 품앗이로 참 풀을 벨 때는 농사규모가 비슷한 집끼리 어울려 했다. 풀베기를 하는 소만에 면사무소가 주관하는 마을 대항 ‘참 풀베기 대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1972년도에서 1978년도까지 울진군 북면사무소에서는 면민들을 대상으로 ‘참 풀베기 대회’를 열었다. 풀베기 대회가 열리면 북면에 속하는 각 마을에서 ‘풀을 가장 잘 베는’ 장정 다섯 명씩을 뽑아 대회에 내보냈다.
|
72년도부터 78년도까지 참 풀베기 대회를 했어. 우수마을은 표창을 했고. 그 때는 북면의 스 물다섯 개 마을이 다 참여했지. 주로 풀이 많은 금성리나 두천리로 가서 대회를 했지. 마을에 서 다섯 명씩 선수가 나와 풀을 베었는데, 쌓아 놓으면 풀 더미가 학교만 했어. 풀베기 대회 에서 1등을 하면 그날 베어온 참 풀을 그 마을에 다 주었지.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 풀로 공 동퇴비장을 만들어 논에 거름으로 넣었지. 풀베기 대회를 할 때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응원도 가고. 면사무소에서 점심도 준비해주곤 했지.(민남기, 70) |
풀베기 대회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어울려 술판을 벌여 풍물을 울리며 그날의 고된 노동을 달랬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까지 전승되어 온 ‘영풀베기’ 관행은 1980년대 농촌에 화학비료가 보편화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참 풀베기는 마을공동체 단위로 이뤄진 협업노동 관행이자 유기농 생태농법의 정수였다.
▲ 써레질하는 모습
“써레질은 우리나라 지질 특성을 고려한 탁월한 생태농법”
곡우 무렵에 ‘논물 못자리’를 한다. 안방 아랫목에서 볍씨를 침종시켜 싹을 틔워 못자리를 하면 볍씨 뿌리가 훨씬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조선 초기부터 ‘이앙법’을 개발했다. 곡우 무렵에 못자리를 하는 것은 이때의 논물 온도가 모가 생장하는데 가장 적당하기 때문이다. 못자리를 하기 전에는 논물을 가두고 논둑을 바른다.
논물가두기와 논둑 바르기는 정월 보름이나 이월 찰밥을 먹고 난 후부터 시작한다. 논둑 바르기는 병충해를 예방하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며, 특히 가둬놓은 논물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정착시킨 생태농업이다. 또 논흙으로 발라놓은 논둑은 매우 단단하게 굳어 여름철의 집중호우에 논둑이 붕괴하는 것을 막아준다. 최근에는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논둑 바르기 대신에 ‘시트’로 논둑을 덮는 방식도 도입됐다. 기술적 진화라고 하기엔 왠지 씁쓸한 풍경이다.
▲ 논둑을 바르는 아낙
논둑 바르기가 끝나면 “써레질‘을 한다. 논둑 바르기가 끝나면 논에 물을 가두고 써레질에 들어간다. 써레질은 모심기하기 전 한달 전쯤에 ‘아이 갈이(초벌갈이)’를 하고, 모심기하기 며칠 전에 ‘두벌갈이’를 한다. 써레질을 할 때는 물을 ‘세 치(10Cm)’ 정도 가둬놓는다. 써레질은 ‘장써레질’과 ‘곱써레질’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장써레질은 논의 길이가 긴 쪽으로 써레질을 하여 흙덩이를 깨어 넣는 방식이며, 곱써레질은 길이가 짧은 쪽으로 써레질을 하여 흙을 고르는 작업이다. 먼저 장써레질을 하고 난 뒤 곱써레질로 흙을 고르게 편다. 써레질이 다 끝나면 흙을 고르는데 쓰는 농기구인 ‘번지’로 논바닥을 다시 고르게 편다.
써레질은 주로 가축의 힘을 이용했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하루 품삯을 주고 소를 빌려 논 갈기와 써레질을 했다. 1970년대 무렵, 소 한 마리와 장정 1명이 논 한마지기 규모의 써레질을 하는데 하루 종일 걸렸다고 한다. 써레질을 마친 후에는 며칠 동안 논을 말려 굳힌다. 이렇게 논을 굳힌 후 모심기를 하면 모 포기의 뿌리가 잘 내려 모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지리학자들은 우리 조상들이 전승해온 써레질에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지리학자들은 “우리나라 토양은 대부분 화강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써레질은 ‘퇴적분급(퇴적물이 무거운 입자별로 퇴적되는 현상)’을 활용한 고도의 기술”이라고 평가한다. 우리 조상들은 논갈이와 써레질을 통해 논물을 가두어 써레질을 한 뒤 흙의 성분들이 분리되어 가라앉기를 기다려 논바닥의 윗부분이 미세한 점토로 형성된 후에야 모심기를 하는, 탁월한 생태농법을 실천해온 것이다. 이렇게 논바닥의 표면이 점토질로 형성되면 보습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물에 녹아 있는 각종 영양분을 장시간 보유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80년대 초, 도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농촌인구가 도시로 많이 유입되면서 전통방식에 의한 농경 기술은 점차 쇠퇴하고 이른바, 기계화 영농이 점차 확산되었다. 특히 영농기술의 보급으로 인해 마을 공동체 단위의 협업노동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수백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전통적인 농업기술은 이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는 가축의 힘을 이용한 농사법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본격적인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요즈음, 옛날에는 흔히 볼 수 있던 ‘소 길들이기’ 관행도 이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민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