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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순_타샤와의 대화, 세계의 미술관 기행]인상주의의 등장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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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의 등장까지 3
이번 회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네는 19세기 근대인의 삶을 그리고자 했던 화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당시 화단의 화풍이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전환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주변에 많은 젊은 화가들을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되며 이 화가들이 훗날 인상주의를 창시하였다. 오늘날 마네의 작품은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선 처리와 강한 필치, 풍부한 색채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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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에 제작된〈굴〉이란 작품은 마네가 그린 최초의 정물화로 알려진다. 세평에 의하면 이 작품은 마네가 약혼자 수잔 렌호프(Suzanne Leenhoff)를 위해 제작했으며, 그들의 결혼생활 동안 그녀가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전기작가 안드로프 타바랑은 어디로 이사를 하던 부엌에는 언제나 이 그림이 걸려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1883년 마네가 죽고 나자 그들의 감정적 유대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있지만 이 그림을 수잔이 계속 소유하지는 못했다. 다음 해 화가의 아틀리에에 남아있던 소장품들이 경매에 붙여졌을 때 이 작품도 팔렸다.
〈굴〉은 제작년도가 빠르지만 그때까지 그린 적이 없는 정물화라는 장르의 작품을 훌륭하게 그린 마네의 기량을 보여준다. 정물화도 그가 정통한 장르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일찍이 거장들의 회화를 칭송해마지 않았던 마네는 많은 시간을 루브르미술관에서 보냈으며, 과거의 작품들을 연구하고 열심히 모사했다. 그는 특히 네덜란드의 회화를 좋아했다. 1852년 그가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했던 기록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남아있다. 그는 여행 중에는 물론 피에르 자크 카즈, 얀 다빗손 데 헴(Jan Davidsz de Heem), 빌렘 칼프(Willem Kalf)와 같은 화가가 그린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를 파리의 미술관, 경매장, 개인수집품 등에서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구도와 간단한 모티브 때문인지 살풍경한 느낌이다. 화면을 마주보고 왼쪽에는 껍질이 까진 여섯 개의 굴이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찻잔 하나와 반으로 잘린 레몬 두 조각이 있다. 바로 앞에는 껍질이 까진 굴 한 개가 있다. 위로 향한 굴 껍질은 살이 잘 붙어 있으며, 또 한쪽은 껍질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보인다. 책상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놓인 포크는 화면 중심에 위치하여 구도 좌우의 양쪽을 시각적으로 이어준다. 색은 억제되어 있다. 화면은 절제된 색, 즉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의 갈색과 차고 어두운 회색 배경에 의해 지배된다. 화가는 거의 대부분 거무스름한 색으로 배합하고 약간의 밝은 색을 썼을 뿐이다. 접시를 장식한 코발트블루, 굴 껍질 안에 빛나는 진주색을 표현한 섬세한 붓질, 그리고 잠에서 깰 것 같은 레몬의 노란색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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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 〈물잔과 커피포트〉 |
샤르댕, 〈딸기 바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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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과 절제된 색을 사용한 기법이 17세기 네덜란드의 선구자들을 생각나게 하는〈굴〉은 18세기 프랑스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Tip 1 참조)의 영향이 뚜렷하다. 샤르댕의 작품, 특히 그의 정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1840년대에 부흥한 이래 그 후에도 쇠퇴하지 않은 명성을 자랑한다. 샤르댕의 정물화는 차분한 부엌장식과 줄어드는 것 같은 구도와는 대조적으로 생생한 표면이 특징이었다. 마네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샤르댕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화면의 모든 구성요소는 아주 작은 붓으로 재빠르게 붓질하여 가늘지만 확실하게 표현했다. 그는 특히 물체의 질감을 생생하게 그리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살이 통통한 굴에서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즙이나 울퉁불퉁한 껍질, 잔 점이 도드라질 것 같은 레몬껍질, 잘 닦인 금속제의 포크와 도자기 찻잔의 윤기. 이런 사물의 표면의 묘사에서 마네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그 후 몇 년 동안 마네는 많은 정물화를 제작했지만,〈굴〉은 여전히 화가의 가장 진지하고 매력 있는 정물화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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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찰스 스패니얼 개〉는 마네가 일련의 개를 그린 초상화 작품 가운데 한 점이다. 귀엽고 매력이 넘치는 이들 작품은 전체로 보면 거의 일관된 작풍을 보인다. 약간 작은 캔버스를 사용하고 배경 묘사는 생략되며 붓질은 빠르지만 섬세하게 그려진다.〈일본 개 쿠마〉(워싱턴갤러리 소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작품에는 개 이름이 적혀있어 아마도 개 주인에게 선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종류의 개 중에서〈킹 찰스 스패니얼 개〉는 예외적이다. 많은 작품들이 1870년대 중반에 제작된 것에 비해 이 작품은 10년 전인 1866년에 제작되었다. 마네는 다음 해 알마橋(Pont d'Alma)의 대형천막에서 개최되었던 개인전에 이 작품을 출품했지만, 그때는〈스패니얼 개〉라는 총칭적인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은 마네가 평생 동안 전시한 작품 중에 유일한 개의 초상화이다.
마네가 이 작품에 그린 것은 비단처럼 매끄러운 긴 털과 늘어뜨린 귀로 알 수 있듯이 킹 찰스 스패니얼 개다. 이 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는 영국 왕 찰스2세의 이름을 딴 이 작은 스패니얼 개는 16세기 이후 영국 귀족계급의 계속적인 애정의 대상이었다. 귀엽고 재롱을 잘 떠는 이 개는 수렵을 위한 같은 품종의 큰 개와 대조적으로, 어디에나 데려갈 수 있는 개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애완견으로서도 유명하다.
마네는〈킹 찰스 스패니얼 개〉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전역의 귀족들이 기른 애완동물의 초상화 전통을 의식적으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모델이 된 개는 금테로 테를 두른 벨벳 천으로 만든 쿠션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소도구를 보면 개를 키우는 사람의 부(富)를 짐작할 수 있다. 개는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며, 차분한 모습이 마치 군주와 같다.
머리 부분은 매우 신중하게 위치하고 있으며 가는 층에도 불구하고 가는 붓으로 주도면밀하게 겹쳐 칠해져있다. 개의 털은 자유로운 양식으로 그렸으며, 윤기 나는 귀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길게 쓸어내린 것처럼 그렸고, 부드럽게 감겨있는 털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재빠르고 미끄러운 필치를 사용했다. 반대로 배경은 얇게 칠해 거의 반투명에 가깝다. 배경을 간결하게 처리하고 어둡고 희미한 색조를 섞어 칠한 탓에 배경이 뒤쪽으로 물러나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로 인해 개의 물리적인 존재감은 한층 더 강화된다.
마네 자신도 이 품종의 개를 좋아했을 것이다. 몇 년 후〈철도〉를 그렸을 때, 마네는 우아한 옷을 입은 부인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는 킹 찰스 스패니얼 개를 함께 그려 넣었는데, 이것은 이 개가 애완견으로서 전통적으로 해온 역할에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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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는 매년 사순절 기간 동안 파리의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되는 악명 높은 가면무도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1873년의「피가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상상해보라. 오페라극장은 지붕이 있는 곳까지 사람들로 꽉 차있고, 특등석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파리의 쇼걸이 맡겨진
일을 하고 있다.
필시 마네는 한 번쯤 가면무도회에 가서 이 작품의 토대가 된 스케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은 스케치를 토대로 아틀리에에서 몇 달 넘게 걸려 완성되었다. 모델은 마네의 친구들이었는데 그림에서 미술비평가 테오도르 두레(Theodore Duret), 작곡가 에마뉴엘 샤브리에(Alexis Emmanuel Chabrier), 미술품수집가 알베르 엑트, 화가 에밀 교댕 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네는 축제 중 떠들썩한 연회에 와서 분별없이 떠들어대는 군중들 속에 자신을 그려 넣었다. 화면을 마주보고 오른쪽 끝, 관자 쪽을 응시하는 갈색 수염의 남성으로 그려진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주위의 경솔한 상황에 동조하기보다 잔뜩 비아냥거리고 있는 방관자의 모습이다. 게다가 바로 눈앞 바닥에는 그의 이름이 적힌 댄스 카드가 떨어져있어, 이 카드가 틀에 박히지 않은 멋진 서명 역할을 한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걸친 파리의 고급매춘부 여성들과 멋진 옷차림을 한 상류계급 남성과의 만남은 노골적이며 성적 분위기를 띤다. 가면무도회가 무대인데 남성들은 모두 가면을 쓰지 않았으며, 변장한 사람도 단 한 명, 화면 왼쪽 끝에 등장하는 현란한 실크 의상을 입은 도화사 역의 남성뿐이다. 대신에 마네가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것은 약간 어두워 보이는 검은색 이브닝의 성장을 하고 실크 모자를 쓴 남성과 선명한 색으로 조합된 스타킹과 화려한 구두, 그 외의 다양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서있는 인상적인 광경이다.
남성들과는 대조적으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여성이 가면을 썼지만, 이것은 예의를 가장하려는 행동일 뿐이다. 다만 한 여성, 화면 중앙의 왼쪽에 서있는 군인용 바지를 입은 소녀가 얼굴을 내놓고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과 어깨가 삐져나올 것 같은 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당혹해하기는커녕 한 남성과 시시덕거리고 있다. 미소를 지으며 남성을 쳐다보는 그녀의 한 손은 남성의 가슴에 얹혀있다. 장갑을 낀 남성의 손은 한 손으로 살짝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데 품 안으로 그녀를 끌어당길 것 같다. 바로 옆 마루에는 이 모임의 단골인 이 젊은 여성이 내던진 검은 색 비단으로 만든 가면이 떨어져있다. 가면을 줍는 그녀는 옷의 일부와 더불어 신중함도 내던져버린 것이다.
그러나〈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는 대담한 시각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마네가 작품의 무대로 고른 것은 춤추는 여자들로 가득한 넓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넘쳐나 몸이 서로 닿을 수밖에 없는 로비였다. 이 선택은 직감적이지만 사실은 적확했다는 것이 나중에 판명된다. 마네는 이 공간의 건축적 요소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캔버스를 옆으로 자르는 발코니 석이 구도를 둘로 나누고, 계단 위의 소란스러움과 계단 아래의 군중을 분리하는 수평선을 만들었다. 화면 끝의 인물들은 갑자기 툭 잘려있다. 또 한 가지 놀랄만한 것은 발코니 난간에 늘어뜨려진 두 여성의 다리이다.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배치하여 정리된 동시대 화가들의 구도와는 대조적으로, 마네의 작품은 구도와 회화 구조에 관해 확립된 관습을 뒤집었으며, 액자 가장자리라는 제약과 동시에 회화의 테두리를 저 멀리 내던져버렸다. 마네가 1874년 파리의 살롱 전에 출품했을 때 심사원들이 이 작품을 낙선시킨 것은 물의를 빚는 주제였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런 회화의 본질과 관련된 대담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 글쓴이 : 남정순
-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미술사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Cultureline』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