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정순_타샤와의 대화, 세계의 미술관 기행]인상주의의 등장까지 2
- 남정순
인상주의의 등장까지 2
인상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활동한 예술가로는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쥘 뒤프레, 샤를 프랑스와 도비니, 구스타브 쿠르베, 외젠 부댕, 에두아르 마네, 팡탱 라투르, 프레데릭 바질 등이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물질적 풍부함만을 쫓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달리 자연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 자연을 찬미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작품은 빛의 표현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인상주의(Impressionism: Tip 1 참조)의 선구가 된다. 이번 회에서는 이 예술가들 중에 구스타프 쿠르베와 외젠 부댕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쿠르베는 19세기의 프랑스 회화에서 사실주의 운동을 이끈 프랑스 화가였다. 사실주의 운동은 바르비종파와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운동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쿠르베는 19세기의 프랑스 회화사에서 그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개혁가이자 예술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외젠 부댕(Eugène Boudin)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풍경 화가였다. 부댕은 노르망디 지방의 온플레르에서 태어나서 소년시절부터 늘 바다와 하늘이 있는 풍경을 보며 자라났다. 그런 성장 배경 덕분인지 부댕은 화가가 된 후 해양화가, 하늘을 잘 그리는 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다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그리는데 탁월했는데, 대기의 흐름과 구름 사이의 빛의 반사를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았다. 요약적이고 실리적이었던 그의 파스텔화는 보들레르의 아낌 없는 찬사를 받았으며, 코로 또한 부댕의 작품을 보고 “당신은 하늘에 정통한 사람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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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모네〈인상-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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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1 인상주의(Impress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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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쿠르베의 화가로서의 아이덴티티는 그가 태어난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오르낭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는 평생 이 지방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매년 일정 기간을 오르낭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으며, 1859년에는 아예 땅을 구입하여 그곳에 아틀리에를 마련한다. 그가 이 지방과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는 그의 풍경화에 잘 드러난다. 석회암 절벽과 그 주변으로 확대되는 쥬라 산맥으로 이루어진 프랑슈=콩테지방은, 독특한 모양의 바위투성이 땅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화가의 거친 성격과 힘 있는 회화기법과 완전하게 일치했다.
1864년 여름 쿠르베는 오르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이때 일 년 동안 고향에 머물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쿠르베가 많은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인데,〈루 강의 동굴〉도 이때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오르낭의 쿠르베의 집에서 남동쪽으로 9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루(Loue) 강과 그 강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층을 그린 것이다. 쿠르베는 캔버스 전체를 거침없고 자유롭게 구사한 팔레트 나이프로 채운다. 물을 표현한 부분은 나이프를 수평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게 하며,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은 물감을 듬뿍 칠한 나이프로 간결하고 얼룩지게 칠하는 방식으로 빈틈없고 두껍게 칠한 표면을 만들어내었다, 물과 바위, 빛과 그림자의 대담한 배치, 매끄러움과 거침의 대비가 모티브의 물질성을 두드러지게 하며, 동시에 작품은 극적이면서도 공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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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루 강의 원류〉 |
쿠르베〈루 강의 동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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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장소를 그린 쿠르베의 풍경화는 9점이 알려지는데 모두 1864년경에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오르낭을 그린 풍경화들 가운데 한 작품(독일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소장)과 세부묘사를 빼고는 길이, 구도, 시점 등 모든 점이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 세부묘사란 구도의 중앙에 그려진 한 남성의 모습이다. 송어낚시를 하고 있는 이 인물은 나무 울타리 앞에서 긴 낚싯대로 만든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겨냥하고 있다. 그의 모습은 앞의 커다란 돌덩어리 같은 동굴과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루 강의 동굴〉은 이 장소를 그린 풍경화(위의 두 작품 참조)와 달리 유일하게 인물이 그려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이 작품이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들 중 마지막으로 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사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풍경화에 관한 정의와 담론으로 옮겨갔다. 쿠르베는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프랑스의 보수적인 예술계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도전을 증명한 화가였다. 그는 솔직함과 신체적 특질을 강조하는 스타일로써, 주로 농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과 시골 풍경을 그렸다. 쿠르베는 거친 테크닉을 사용하여 꾸미지 않은 날것의 주제를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또한 역사 속에서 이상화되거나 교훈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해 유지해왔던 영웅적인 스케일을 농부의 삶과 시골 경치와 바꿈으로써, 공식적인 예술계의 규준을 공공연하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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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강에 있는 동굴의 실제 모습
쿠르베는 오랫동안 자신이 사는 곳의 자연사에 흥미를 가졌는데, 특히 루 강에 있는 동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렸던 스위스 국경 근처의 산악지역의 마을, 오르망 근처는 루 강과 주위가 커다란 암석으로 되어있고, 원시적이면서 아름다운 장소가 많았다. 쿠르베는〈루 강의 동굴〉의 기하학적인 구성에서 어두운 동굴과 그 안에 고요히 흐르는 강물, 울퉁불퉁한 석회암과 동굴 밖에 쏟아지는 폭포와의 대비를 강조했다. 쿠르베는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를 제외하고는 전통을 무시한 팔레트 나이프의 테크닉을 사용하였다. 또한 물감의 불규칙적인 층을 수건으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루 강의 동굴의 질감과 닮은 거친 표면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동굴 가까이에 서있는 물리적 존재를 환기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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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부댕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노르망디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작가로서 잘 알려진다. 19세기 후반까지 트루빌 (Trouville)이나 도빌(Deauville)로 대표되는 이 도시의 화려해진 거리에 리조트 호텔과 카지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설들은 늘어나는 중산계급 고객들을 위해, 즉 여름 몇 달을 보내기 위해 바닷가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세워진 것이다.
부댕은 당시의 풍속과 유행을 따르는 인간사회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구매하려는 수요를 발견했다. “그들은 내가 그린 바닷가의 작은 부인들을 사랑한다.” 1863년 한 친구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그는, 이어서 “그곳에는 파낼 만한 가치가 무궁무진한 금맥이 묻혀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런 주제를 담은 작품이 지닌 매력을 아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노르망디 해안을 찾은 화가들 중에는 인상주의의 젊은 화가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클로드 모네는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한 부댕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겨주었던 노르망디 일대의 경치를 그려 많은 작품으로 남겼다.
1858년에 제작된〈온플레르항의 축제〉는 부댕이 노르망디의 여가 문화를 소재로 그린 최초의 작품이다. 그가 이곳에서 주목한 것은 관광시즌에 열리는 초청행사 중에 가장 인기가 있던 매년 한 번 개최되는 보트 레이스대회였다. 이와 유사한 경기는 프랑스 북부 연안의 몇 개 도시에서도 개최되었으며, 매년 수천 명이 넘는 참가자와 군중이 모이곤 했다. 1854년 9월 온플레르항에서 처음 개최된 보트 레이스대회는 얼마 되지 않아 정례 행사가 되었다.
〈온플레르항의 축제〉는 보트 레이스를 하는 대회 장면이 아니라 대회 장소인 온플레르항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은 온통 화려한 색으로 채워져 있다. 항구에 정박해있는 범선들은 선명한 색의 삼색기로 장식하고 해안을 따라 줄지어 서있다. 또한 해안에서 연결되는 작은 배에 탄 구경꾼들의 의상까지, 화면은 온갖 색으로 가득하다. 캔버스 밖에서는 보트경기가 열리고 있지만, 캔버스 안은 눈을 크게 뜨게 할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삼색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고, 물속에 있는 사람들은 헤엄쳐서 배로 이동하고 있다. 화면 오른 쪽에 있는 작은 배 두 척에는 노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 보인다.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노 저어 바다로 나가려는 것이다. 이렇게 부댕은 보트레이스 대회에 고조되는 흥분과 한껏 부푼 기대를 더운 여름날의 매력과 잘 연결시켜 인기 있는 행사의 들뜬 표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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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말까지 부댕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바닷가에 모여드는 남녀를 그리는데 싫증나있었다. 부댕은 자연을 관찰하고 농민들과 배에 짐을 싣는 장면을 그리는데 화가로서 남은 생을 바쳤다. 아버지는 선장, 어머니가 승객 담당으로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던 가정에 태어난 부댕은,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와 그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부댕이 특별한 매력을 느낀 것이 세탁부라는 직업이었다. 부댕은 일생동안 세탁부를 주제로 130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 이 작품들의 무대는 리조트가 있던 트루빌 근교의 도크 강이었다.
세탁부들을 그린 이 작품들은, 노르망디에 당시 유행을 좇아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주제인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유행하는 옷을 휘감은 여인들,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해 패치코트를 입고 양산을 든 채 오락에 빠져있는 여성의 모습은 이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등장하는 것은 육체노동에 바쁜 그 고장의 여성들이다. 부댕의 작품 〈트루빌 근교의 세탁부〉에는 혼자 빨래를 하는 여인이 물가에 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꿇어앉아있다.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린 세탁부가 윗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바위 위에 펴놓은 빨래를 돌로 두드리고 있는 장면이다. 가까이에는 파란 에이프런에 밀짚모자를 쓴 한 여성이 무릎을 감싸고 앉아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트루빌 근교의 세탁부〉는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화가의 양식적 변화도 보여준다. 1870년대 초까지 부댕의 물감을 사용하는 방식은 차츰 유려함을 더해갔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구도의 주요 요소인 빨래하는 여인과 물가를 어두운 물감을 사용하여 대략적으로 그렸다. 그런 다음 물감이 다 마르지 않았을 때 남아있는 부분을 순색을 재빨리 칠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그 후 맨 마지막에 이미 완성된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에 짙은 색의 물감을 묻힌 붓을 살짝 둘러 범선을 그려 넣었다. 이런 독창적인 기법 덕분에 화면 전체에 촘촘한 짜임새의 붓 자국이 보인다. 이로 인해 생생한 채색 효과뿐만 아니라, 금방 칠한 것 같은 신선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작품은 크기가 작은 캔버스에 그렸다는 점과 세부묘사가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야외에서 그린 작품으로 추정된다.
- 글쓴이 : 남정순
-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미술사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Cultureline』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