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임은혜_연극으로 만나는 세상]죽음과 함께 노니는 패러독스
- 임은혜
죽음과 함께 노니는 패러독스
저승 가는 길목에서 웃고 울고 춤추다
꼬부랑 할머니가 봇짐을 메고 장터로 간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연로하신, 90세를 넘기신 할머니는 장날이 되면 무슨 의례에 참여라도 하듯이 손수 키운 채소들을 단정하게 묶어서 등에 짊어지고 지팡이를 벗 삼아 장터로 향하신다. “자식들이 돈 벌어서 집도 지어주고 용돈도 두둑하게 보내주는데 뭣이 모자라서 저렇게 지독하게도 벌라고 하는지 몰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만 나는 할머니가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죽는 날까지,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삶의 방식, 몸에 밴 삶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계신 것이다.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지혜롭게 땡볕을 피해 잡초를 뽑는다. 이윽고 가을이 오면 열매를 거두고 갈무리를 하며, 겨울에는 바느질을 하며 사시다가 어느 날 문득 오랜 잠에 빠져들 날이 올 거다. 죽음도 마치 5일장처럼 찾아오고, 할머니는 장터에 가듯 단정하게 차려입고 저승으로 가시지 않을까.
마당굿 ‘할미풀이’는 땅에 뿌리를 두고 땅에 기대 사는 할미들, 이 땅에 살며 울고 웃고 아파했던 할미들에게서 나온 이야기이다. ‘할미풀이’에 나오는 할미 역시 텃밭을 일구며 산다. 한국전쟁 직후 남편을 먼저 저승으로 보낸 할미는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어느 날, 노래를 흥얼거리며 감자를 삶고 있는데 상여꾼들이 할미를 상여에 태운다. 할미 앞에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할미는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미의 혼은 상여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상여꾼들은 망자를 데려가기 위해 할미를 달래기 시작한다. 땅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할미에게 상여꾼의 우두머리인 상두가 묻는다.
“못가겠어? 그럼 쉬었다 갈까?”
할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상여꾼들은 물러서서 할미를 지켜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 전 비나이다...’ 상두의 노래가 시작되고 할미는 새색시였던 한국전쟁 직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전쟁 통에 헤어졌던 남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 마당굿 ‘할미풀이’에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할미를 달래고 있는 상두
‘할미풀이’는 할미가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할미의 삶을 더듬어보고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는 과정으로 구성된 마당굿이다. 상여는 연극을 이끌어가는 중심매개체이다. 상여로 시작해서 상여로 끝나고 상여 안에서 혼백이 몸부림치고 그곳에서 극이 전개된다. 극의 마지막도 상여에서 벌어지는 인형극으로 처리되었다. 먼저 저승으로 간 남편이 반야용선을 타고 할미를 마중 나온다. 아내와 남편이 상봉한다. 둘이는 부둥켜안는다. 둘은 배에 올라탄다. 꽃비가 내린다. 아내와 남편이 축복 속에서 저승을 향해 간다. 이 역할을 조그만 손 인형들이 해낸다. 상여를 무대 삼아 연출된 인형극, 이것은 인형극이 고대 장례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연극인류학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다.
마당굿 ‘할미풀이’는 우리 시대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삶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인생의 여정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당연한 현실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 미지의 세계가 두려울지라도 죽음의 실체를 받아들여야만 인간은 성숙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몸부림친다. 대표적인 현상이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맞지 않는 것이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조용히 임종을 지켜보던 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병원이나 특정 요양시설에 들어간다. 3년 상은 3일로 줄어들고, 상가는 장례식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가에는 상중(喪中)이라는 등이 있었다.
이젠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죽은 사람들은 획일화되고 규격화되어 저승으로 보내어진다. 장례식장에 가서 부의금을 내고 절을 하고 약간의 음식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죽은 자를 회상하거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장례식장은 산 자들의 삶을 지속하는 자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찾아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의료기술에 의지한다. 의료진들과 과학자들은 신의 섭리인 생명을 인간의 기술로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이들은 불치병의 환자가 고통 속일지언정 단 한 달이라도 생명을 연장한다면 대단한 진보요 성공이라고 떠들어댄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풍토 속에서 죽음은 비루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던가? 마당굿 ‘할미풀이’는 우리가 잡고 있는 삶의 줄 끝자락에는 죽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할미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고(고는 매듭 또는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뜻한다. 고풀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자유로이 풀어주는 의식을 말한다)를 푸는 장면이 그렇다. 할미가 자신의 ‘업’을 상징하는 12개의 고를 하나씩 풀 때마다 할미의 꼬부랑 허리는 조금씩 펴진다. 이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할미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활짝 웃기도 한다. 애교도 부리고 춤도 추면서 저승에 있는 남편을 만날 희망에 가슴 벅차한다. 할미가 자신의 고를 다 풀어내자 삶과 죽음을 잇고 잇는 줄은 곧 놀잇감이 된다. 할미는 저승의 입구에서 줄넘기를 하며 논다. 지독히 외롭고 가난했던 삶에서 벗어나 운명의 씨실과 날줄을 가볍게 넘고 뛰어오른다.
인간이 죽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로 껴안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공동체의 ‘제의(祭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사로잡는 원시적인 공포로부터 신화와 제의는 발생했고 그것은 공동체의 결속력으로 유지되어 왔다. 고대의 인류는 스스로의 나약함과 한계성을 인정하고 우주와 자연 앞에 겸허히 머리 숙였다. 파종과 수확의 시기마다 땅과 하늘에 바치는 제의, 생로병사를 아우르는 제의를 통해 만물의 영원성을 갈망했다. 만물이 살아있고, 인간 또한 그것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선조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동체의 제의라는 집단의식으로 극복해왔던 것이다.
‘할미풀이’는 연극의 제의적 성격을 되찾으려는 시도이다. 연극의 제의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되찾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 앞에 겸허한 인간,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 죽음을 용감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 희로애락이 있고, 동고동락하는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 제의연극인 것이다. 이러한 제의연극으로서의 ‘할미풀이’에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네의 다양한 민속이 반영되어 있다. 빈 상여 놀이, 상여소리, 휘겡이춤, 하회별신굿 탈놀이, 동해안 별신굿 음악 등, 민속과 제의를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이 어느덧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창작 경향이 된 것 같다.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온 인간의 죽음과 재탄생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공동체에서 꽃피웠던 제의는 연극의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책 제목에서 따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미래로부터 온 민속과 제의는 우리의 연극 안에 낯설지 않게 스며든다.
너무도 낙천적인 장례문화
장례의 구조를 보면 먼저 주검이 있다. 주검은 대부분 산에 묻혀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일상적 삶의 세계도, 초월적 저승세계도 아닌 공간에 유폐되는 것이 주검이다. 다음은 혼백이 있다. 혼백은 초월적인 세계에서 저승의 삶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다. 그리고 상주가 있다. 상주는 현실세계에서 이승의 삶을 계속해야하는 존재이다. ‘할미풀이’는 이러한 장례식의 구조를 연극에 적용한다. 등장인물은 혼백으로 분장하고, 관객은 상주나 문상객이 되며 공연장은 공연장인 동시에 상갓집이 된다. 리차드 셰크너가 말했듯이, 연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관객들이 함께 살아갈 하나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환경연극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더불어 극적 상황을 풀어가는 공동체로 만난다.
▲ 마당굿 ‘할미풀이’의 빈 상여놀이
상여꾼들이 상여소리를 부르며 상갓집으로 들어온다. 가상제가 관객의 머리에 굴건을 씌운다. 연극을 보러왔던 관객 중 한 사람이 상주가 되고, 상여꾼들은 그에게 생짜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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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제 : 이보게 상주 양반, 죽을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밥 좀 먹고 하시더. 배고파서 모할씨더. 상주양반도 먹어야 살 거 아이라. 상 치를라꼬 굶는 척 하면서 몰래 몰래 맹 다 먹었지? 나도 밥 좀 먹자.(다른 관객에게 가서) 이보게 상주 양반 이번에 상 치른다고 돈 얼매 썻노, 집에 어른이 입을 거 안 입고 먹을 거 안 먹고 악착같이 모아 놨디마는 상주 당신이 다 쓰는고만. 이게 다 당신 얼굴 낼라꼬 하는 거 아이라.
-창작 마당극 ‘할미 풀이’ 중에서 |
빈 상여 놀이를 하면서 관객들은 모두 함께 웃는다. 안동이라는 양반 동네에서 관객들이 손뼉을 치며 웃는다. 첫 공연을 하기 전까지 우리는 긴장했었다. 누군가 호통을 치지는 않을까? 엄숙해야 할 장례문화를 왜곡시켰다고 하지나 않을까?
‘할미풀이’는 엄숙하게 거행되어야할 장례문화가 가진 문제점을 제기한다. 현실 속의 상갓집은 침울하고 슬프지만 비현실적 공간인 연극 속의 상갓집에서 웃고 떠드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상갓집에서 웃고 웃기는, 낙천적인 장례식이 결코 연극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민속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예로 ‘산다위’라는 남도의 장례민속이 있다. 여기서는 상징적 윤간이 행해진다. 이는 떠나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대체하는 생명을 생산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장례식이 한 개인의 통과의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의식으로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마당굿 ‘할미풀이’ 또한 ‘산다위’에서 보이는 성과 죽음의 결합을 시도했다. 할미가 저승으로 가는 길에 다시 경험했던 성적 황홀감과 감격스런 분만의 순간을 보여준다. 전쟁 직후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의 자위행위,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성적 관계를 넌지시 드러내기도 한다.
성은 생명을 잉태하지만 죽음은 상실이다. 동시에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성적 결핍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성적 행위를 묘사하는 장례민속은 도덕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성행위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성적 결핍을 채우고 성의 상실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죽음이란 절망의 순간을 삶의 신명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매장의식의 춤이 성행위로 발전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쟁 춤을 매장의식의 춤으로 추는데, 이 춤은 죽은 이의 생식력과 호전적인 속성을 표현하는 의례이자 행위이다. 죽음에 맞설 생명의 강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 삼초랭이 거리굿-거리의 떠돌이이자 생식력을 상징하는 초랭이들
▲ 마당굿 ‘할미풀이’의 출산 장면
죽음과 성의 결합은 종족을 보존하려는 모든 생명이 가진 본성이다. 고목나무가 죽기 직전에 무수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사람도 죽음에 임박하면 자연스럽게 성적 욕구가 증가된다고 한다. 임종 순간 남성의 발기현상은 후손을 남기려는 본능적 현상이라고 한다. 산모는 죽었지만 임신한 자궁이 활동하여 태아가 순조롭게 출산된 보고도 있다.
죽음의 현장에서 성을 노래했던 산다위, 다시래기, 달구소리 등의 우리네 민속은 죽음을 넘어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고자 했던 공동체의 지혜와 낙천성이 넘쳐흐르는 삶의 문화이다. 임재해 교수의 말처럼, 한층 자유롭고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했던 생명의 문화인 것이다.
‘상여를 놀린다’는 말이 있다. 상여를 탄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다. 장례식 전 날,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짊어지고 미리 연습했다는 ‘빈 상여놀이’ 는 죽은 이가 아니라 산 사람들을 상여에 태웠다. 예로부터 빈 상여를 타면 액을 물리치고 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노인들이 서로 타려고 했단다. 죽음으로 가는 가마를 타는데 생의 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다니, 상여를 놀린다니, 죽은 이를 매장하는 데 성행위라니, 이 모두가 패러독스다. ‘할미풀이’도 ‘죽음과 논다’라던 선조들의 낙관성을 반영하여 패러독스의 재미를 펼친다.
“무쇠 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긴 쉽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모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가운 태양, 뜨거운 달, 소란한 침묵, 살아있는 죽음 등. 패러독스의 어법은 음식을 입속까지 떠 넣어주고 소화를 도와주는 친절한 어법이 아니다. 패러독스는 경계를 허무는 열림의 세계이다. 패러독스가 없는 예술은 계몽이나 선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패러독스의 연극은 참여자가 필요하다. 편히 앉아 엿보기를 즐기는 관음증 환자 같은 관객이 아니라, 패러독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마음껏 상상하고 춤추는 관객을 만나고 싶다. 연극은 이런 만남을 통해 축제가 된다. 근대 이전, 망자를 보내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던 낙천적인 장례문화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한 패러독스로 가득 찬 그 세계와 가까워질 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 : 임은혜
- 극작가,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