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꽃이 지기 전 나는 봄으로 돌아갔다〈열네 살〉
- 쑤세미
꽃이 지기 전 나는 봄으로 돌아갔다 〈열네 살〉
나의 열네 살을 기억해본다. 중학생 때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내게 언니는〈사슴과 별과 고독과〉라는 노천명의 문고판 책을 선물했다. 당시에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매일 일기장 검사를 했다. 언제나 숙제와 할 일은 미뤄야 제 맛이라는 초 절정 게으름으로 일관해온 내가, 단시일 안에 밀린 일기를 쓰는 방법은 주로 산문이 아닌 운문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일기 검사라는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깐돌이’나 빨며 고무줄놀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비극조차 낭만으로 만드는 예술가들의 삶을 동경했던 나는, 열넷이라는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비밀을 파헤쳐보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48세의 인테리어업자 히로시 나카하라는 교토에 출장 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자신이 어느덧 2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었음을 깨달은 히로시, 간밤의 숙취 탓에 무거워진 머리로 도쿄의 집으로 향한다. 기차에 오른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고향 구라요시행 기차를 탄 다음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어머니의 묘소로 향하고 그곳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열네 살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1998년 봄의 히로시는 1963년 봄의 히로시가 되어버렸다.
“이건 꿈이야. 눈 뜨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히로시는, 다음 날에도 열네 살의 봄날이 계속되자 당황한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일들이 미래의 일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한 히로시답게,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해 여름 실종된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친 히로시는, 추억에 젖어 이것이 현실이라면 ,다시 한 번 열네 살로 되돌아가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가 자신의 개입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중학생의 몸으로 옛 교정에 들어선 히로시의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게 될 마사오와 대화하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지기도 하고, 만화가가 되는 하마다, 소설가가 꿈인 친구 시마다도 만난다. 그리고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지만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나가세 도모코에게, 중년 특유의 능청을 떨어 대학까지 나오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호감을 사고 그녀와 사귀기도 하면서 히로시는 점점 자신의 미래가 변할 것 같아 불안하면서도 한편 궁금해진다.
또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잠든 여동생 교코의 모습을 보며 감회에 젖는 히로시. ‘나중에 크면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법석을 떨었지. 그렇지만… 넌 스무 살에 결혼을 해. 상고를 졸업하고 돗토리의 보험회사에 근무하다가 거기서 알게 된 두 살 위의 청년을 사랑하지. 그리고 넌 구라요시를 떠난단다. 지금 너는 45세다.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돗토리에 살고 있어. 그렇게 넌 행복을 손에 넣었던 거야, 교코.’
온화한 성품의 외할머니와 성실한 아버지, 가정적인 어머니와 그다지 말썽을 피우지 않는 아들 히로시, 애교쟁이 딸 교코까지, 아버지의 실종에 대해 고민하는 히로시에게 친구 시마다는 화목한 가정을 버리고 떠날 네 아버지가 아니라고 위로한다. 아버지가 실종한 날이 다가오자 히로시는 아버지의 뒤를 밟게 되고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과거를 하나둘 알게 된다.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양복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양복조합의 모임으로 온천여행을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히로시는 실종 당일의 동선을 기억해내곤 기차역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히로시는 자신이 아버지의 ‘실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난 너희들에게 욕먹어도 할 말이 없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도 지금 나는… 어쩐지 진짜 내가 아닌 것 같다.”
히로시는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이해하게 된다. 열네 살의 히로시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삶을 마흔여덟의 히로시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지금 자신의 모습에 대입시킨다. ‘삶’이란 ‘살아가는 것’인데 중년의 히로시는 과연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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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반갑기라도 하지, 어느덧 아버지란 존재는 택배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가정이 많다. 주인공 히로시 또한 과중한 업무에 쫓겨 가족과의 대화가 없는 여느 중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독립을 원하는 큰 딸이 결혼할 남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아버지로서 히로시는 ‘의무’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기란 힘들다. 가족에게 ‘의무’만을 가진다면 자신의 삶도 ‘의무’만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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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나그네에게 -시마다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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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꿈인 시마다는 심지어 자기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은 장래 희망을 히로시가 알고 있어 무척 놀랐다. 들은 것 같다고 얼버무리는 히로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시마다. 시간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과거지만, 미래에서 온 히로시의 힌트는 시마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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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난 어떻게 된 거야? 먼 옛날에… 잊고 있었던 가슴 벅찬 행복이 여기 있다니.”
열네 살1, 2/ 다니구치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샘터 발행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