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冬至・心象 ⓒ 혼다 히사시

혹독한 한파를 몰고 온 사나운 북풍이 불고 있다. 단풍나무와 떡갈나무를 심어놓은 정원에는 시든 나뭇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그렇지만 바람이 지나는 길을 막고 서있는 나무 아래에는 바람에 날려 온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겨울 햇살이 쌓인 낙엽에 반사되어 빛난다. 낙엽의 표면에 약간의 광택이 있을 뿐인데... 그 빛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함께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춥다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멋진 광경이다.

옷을 잔뜩 끼어 입고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정원을 돌아보다가 창고 처마 아래 심어둔 수선화가 꽃을 피운 것을 알게 되었다. 꽃잎이 다섯 개인 하얀 꽃을 중심으로 암꽃술이 노란 빛을 발하고 있다. 땅 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의 그림자도 함께 엉켜있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틈엔가 내가 기르는 개, 토로가 옆에 와있다. 수선화에 코를 들이대고 향기를 맡고 있다. 토로의 나풀나풀한 털도 빛나는 듯하다.

문득 산책하고 싶어져 토로와 함께 집을 나섰다. 토로의 줄을 풀어주고 개가 나를 이끄는 대로 언덕을 내려간다. 토로는 어지간히 기뻤던지 나를 잡아끌듯이 앞서간다. 나는 넘어지지 않게 다리에 힘을 주며 토로를 따라간다. 벌써 여덟 살이 되었지만 토로가 잡아당기는 힘은 엄청 세다. 언덕을 내려가 작은 골짜기 사이에 있는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바로 얼마 전까지 푸릇푸릇하게 무성했던 길가의 잡초도 이미 다 시들었다. 논밭에는 벼를 베고 난 그루터기만이 서있을 뿐이다.

토로는 가끔 멈춰 서서는 시든 풀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린다. 그 동안 나는 찬바람을 맞으며 토로가 다시 길을 가길 기다려야한다. 아주 짧은 시간임에도 추워 견디기 힘들 정도다. 손가락이 시리다 못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은 매서운 날씨다. 토로를 빨리 걷게 하려고 줄을 세게 잡아당겨본다. 그러나 토로는 꼼짝할 생각도 하지 않고 뒷다리를 버티고는 냄새를 맡는다. ‘토로’를 큰 소리로 부르며 줄을 잡아당기자 겨우 발을 내딛는다. 물론 싫어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걸음을 멈춘다. 토로를 자꾸 멈추게 하는 무언가가 땅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대체 뭐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 동안, “봄의 구근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구근에서 싹이 나는 것을 보고 토로가 그 새싹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것은 내 환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추운 겨울에 토로가 봄을 맡고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잠시나마 추위를 잊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토로가 가자는  대로 맡겨두었다. 매서운 추위가 눈물, 콧물이 나게 하고 손끝이 얼어붙은 산책이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봄이여 오라! 어서 빨리 오라!
어느 사이 나는 동요 한 구절을 흥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