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산중에서 잃어버린 민속을 만나다
- 남효선
산중에서 잃어버린 민속을 만나다
소길들이기 관행....기계농에 밀려 전승 단절
울진 말래마을 영규할배의‘소 길들이기’
생후 20개월이 적기…농사일 앞서 치루는 '통과의례'
동해연안 울진 갯마을과 봉화, 영주 등 영남내륙을 잇는 유일한 해산물 유통로인 ‘십이령바지게길’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 잡은 마을이 울진 북면 두천리(斗川里)입니다. 이곳 울진사람들은 두천리를 ‘원당 말래’라 부릅니다. 푸른 동해바다에서 40리가량 떨어진 산중마을이지요. 말래마을은 5~60여 년 전까지 동해연안은 물론 영남내륙에서 꽤나 유명세를 타던 마을이었습니다.
산중마을 중에서도 유독 말래마을이 이름난 까닭은 바로 ‘십이령바지게길’ 초입에 자리 잡은 ‘주막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울진 흥부(현, 북면 부구리) 염전둑에서 생산한 질 좋은 ‘전오염(煎熬鹽; 간수를 가마에 끓여 얻는 자염)’을 봉화, 영주 등의 영남내륙으로 유통시킨 ‘선질꾼(혹은 바지게꾼)’들이 2백리 십이령길을 넘나들 때 반드시 묵어가던 곳이 말래마을이었습니다. 1960년 중반까지 이곳 말래마을은 60여 호의 규모를 자랑하는, 산중마을치고는 매우 큰 마을이었습니다.
질 좋은 울진 산전오염과, 고포미역과, 간고등어는 이곳 말래마을에서 선질꾼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 뒤, 봉화 소천장으로, 춘양장으로 유통되었습니다. 당시 이들 선질꾼의 애환과 이들이 일궈놓은 민속문화는 십이령으로 오르는 초입에 자리한 ‘내성행상불망비’를 통해 가늠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옛길’이 각광받으면서 2백리 십이령길 또한 동해연안의 명품 길로 거듭났습니다.
우수가 지난 지 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산중 길에는 채 녹지 못한 눈이 군데군데 얼어붙어있습니다. 경칩을 지나 춘분을 넘기면 산간농촌마을은 분주해집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소는 전통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력이자 재화였습니다. 소 가 없이는 어떠한 농사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만큼 요긴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농가에서는 소 외양간을 집 안에 들여, 주로 부엌 곁에 만들고 함께 생활했습니다. 소를 가족처럼 애지중지한 셈입니다.
곡우가 지나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소는 사람들만큼이나 분주해집니다.
전통사회에서 소가 우리 인간을 대신하는 대표적인 농사일은 ‘쟁기질’과 ‘써레질’, ‘뻔지질’ 따위입니다. 또 대량의 물건을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동력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소 길들이기’는 한 해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마무리해 놓아야 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소 길들이기는 ‘송아지를 일 소’로 만드는 농경기술이자 우리의 선인들이 쌓아 온 소중한 민속 문화인 셈입니다.
▲ 소를 길들이는 두천마을의 영규할아버지
보통 송아지가 태어나서 10~12개월가량이 지나면 ‘코뚜레’를 끼웁니다. 코뚜레는 예부터 ‘소 생일’이라고 여기는 오월 단오 무렵이나 겨울철에 뚫으면 좋다고 하여 이 시기에 많이 뚫었습니다. 코뚜레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서 뾰족하게 만든 뒤 코의 얇은 부분을 찔러 뚫었습니다. 송아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앞에서 단단히 붙잡고 코를 찌른 뒤, 사람의 오줌을 한 바가지를 찌른 부위에 붓습니다. 출혈을 줄이고 소독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로 코뚜레는 ‘다래넝쿨’이나 ‘노고지리나무’를 불에 구워서 만들었습니다.
소 길들이기는 생후 20개월 무렵부터…3~4일간 걸려
코뚜레는‘소 생일'로 여기는 오월 단오 무렵 수행
코뚜레를 뚫은 직후, 송아지에게는 산에서 해 온 ‘산꼴(참풀)’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그리고 첫 송아지를 밸 무렵인 생후 20개월쯤에 ‘소 길들이기’에 나섭니다. 제대로 소를 길들이지 않으면 쟁기질을 할 때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에 소 길들이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암소가 수소보다 길들이는 데 공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수소는 암소보다 미련하기 때문에 무거운 쟁기를 메고도 앞으로 잘 나아가지만, 암소는 촐랑거리는 성질이 많아 앞으로 나가지 않고 뺑뺑이만 도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 생후 20개월쯤에 시작되는 ‘소 길들이기’ 장면
소 길들이기에는 무거운 통나무나 돌이 사용됩니다. 쟁기질을 하기 전에 무거운 통나무나 돌을 매달아 앞으로 나가고, 멈추고, 뒤로 도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두 사람이서 소 길들이기를 할 때는, 소에 쟁기를 매단 뒤 한 사람은 뒤에 서서 쟁기를 잡고 또 한사람은 앞에 서서 코뚜레와 고삐를 잡고 소를 이끕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개 3~4일간 반복합니다. 이쯤이면 소가 제법 익숙한 걸음걸이로 쟁기를 끌 수 있게 됩니다. 또 이쯤이면 ‘이랴 이랴’, ‘워 워’하는 소리와 ‘고삐 태질’만으로도 소를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랴 이랴’는 소를 앞으로 가게 할 때나 방향을 돌릴 때 쓰는 신호이며, ‘워 워’는 소를 멈추게 할 때 하는 신호입니다. 소를 왼쪽으로 가도록 할 때는 고삐를 소뿔의 왼쪽으로 놓고 당기거나 오른쪽 옆구리를 세게 때리며, 오른 쪽으로 가도록 할 때는 고삐를 소뿔의 오른 쪽에 놓고 당깁니다.
소 길들이기에는 상당히 숙련된 솜씨가 필요합니다. 소 길들이기 도중에 소가 드러눕는 경우도 왕왕 일어납니다. 한 번 드러누운 소는 계속 드러눕기 때문에 소 길들이기 도중에 소가 드러누우면 소의 머리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세심하게 다독거려주어야 합니다. ‘홍두께 세 찰(차례) 다 맞는 소도 있나?’라는 향언은 이러한 소 길들이기의 어려움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농부들은 ‘좋은 일 소’로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때문에 농부들은 소시장에서 잘 관찰하여 소를 구입합니다. 좋은 소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일 잘하는 소는 다리의 뼈대가 굵고, 허벅지가 통통하며 다리가 깁니다. 다리가 굵고 길어야 보폭이 넓어 쟁기질하는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뿔의 형태로 좋은 소를 구별하기도 합니다. 소뿔은 생긴 모양에 따라 ‘천지각’, ‘횃대뿔’, ‘옥뿔’, ‘잿뿔’ 따위로 나눕니다. 천지각은 한 뿔은 하늘로 향하고 또 한 뿔은 땅을 향한 모양입니다. 횃대뿔은 장대뿔이라고도 부르며, 뿔이 양 옆으로 뻗어있습니다. 옥뿔은 뿔이 앞으로 뻗어 있는 것이며, 잿뿔은 뒤로 넘어진 뿔입니다. 이 중에서 보기 좋은 소는 ‘옥뿔’을 가진 소이며, 일 잘하는 소는 ‘잿뿔’ 소를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1960년대 좋은 소 한 마리는 토질이 좋은 논 한마지기(150평) 가격이었습니다. 농업이 쇠퇴하고 성능 좋은 농기계에 밀려 이제는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린 소중한 민속 문화를 산중 길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울진 두천 말래마을에서 찍었습니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