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원식_문경의 문화유산]연재를 시작하며
• 엄원식 2009-05-18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으며, 생김새는 물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구조, 말투, 습관 등 모든 면에서,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지역의 색깔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경도 땅의 성질, 생태와 환경,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구성원의 기질 등, 모든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정체성이라고 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인 정체성을 알고, 찾고, 가꾸면, 저마다 맡은 역할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지역의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유산! 이것이야 말로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란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지닌 사유, 행동, 생활 등 그 집단에서 습득하여 계승해 온 양식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인간만이 가꿀 수 있으며, 그리고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문화재라고 보면 정확한 해석이 될 것 같다. 문화와 문화재 그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재를 먼저 알고 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가 차곡차곡 쌓여 밝은 미래로 나아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말씀하신 <나의 소원> 가운데,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의 일부를 살펴보면,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60여 년 전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 김구선생께서 멀리, 아주 멀리 우리 민족의 앞날을 내다보며 주장하신 말씀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김구선생에게 이런 높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바로 과거와 현재 속에서 항상 내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애달픈 심정으로 사셨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지역의 정체성을 모르고 살아왔다.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갈 줄만 알았지, 어디로, 왜 달리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면 달려가는 길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울 것인가?

우리의 문화와 문화유산에 담겨있는 커다란 의미를 알고 이 땅에서 살아간다면,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앞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문경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의 수준은, 곧 우리 지역에서 살다간 선조들의 수준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살면서 교훈으로 삼을 만한 부분일 것이다. 문경의 문화유산을 살펴보며 문경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 조상의 숨결과 고마움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문화재는 나의 연인

현재 문경시의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 문화재 20점과 도 지정 문화재 48점을 합해서 모두 69점이다. 경주와 안동지역에 분포하는 문화재에 비해 수적으로 매우 적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도내에서는 중간수준이다. 물론 문화재가 많다고 해서 전통과 역사가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없지만, 문화재가 풍부한 지역이야 말로 문화적으로 우수한 곳이 될 수 있으며,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 상품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69점의 문화재 가운데 문경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정체성 있는 문화재는 무엇일까? 문경 1․ 2․ 3관문일까? 문경 토끼비리일까? 아니면 도자기 장인(匠人)이며 중요무형문화재(사기장 105호)로 지정된 김정옥 선생일까? 문경을 대표할 수 있는 정체성 있는 문화재는 문경의 모든 문화재가 이 지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경의 문화재는 결국 우리 지역에서 살다간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므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히 남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십 수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문화의 세기,“문화가 중요시 되는 시대”라고 주장해왔다. 개발이 중시되던 과거의 시대에는 누구나 잘 먹고, 잘살기를 희망하며 전력을 다했지만, 이젠 무턱대고 물질적으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보다, 보람되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우리 지역에 살고 있다면, 이젠 우리 지역의 문화재가 몇 점이 있으며,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각 문화재마다 유래와 의미는 모르더라도 명칭정도는 알아야 문화의 시대에 발맞추어 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더구나 관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노력한 결과, 우리지역의 관광지가 많이 알려져,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경을 찾아오고 있는데, 지역주민이 변하지 않고, 지역문화도 알지 못한 채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새로운 도전과 발전이 있을 수가 없다. 나를 알고, 내가 사는 지역에 관해 알고, 소중한 우리 문화에 대해 알고 설명할 수 있을 때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문경의 문화유산'이란 코너를 통해 문경에 있는 문화재의 내용과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에 관해 알아본 후, 지방이 지정한 문화재와, 비록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지역의 문화재에 관해 한 번쯤 정리하고, 우리 지역의 수준 있는 문화적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글쓴이 : 엄원식

1969년 문경에서 태어나서 점촌고등학교를 다녔다. 안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문경석탄박물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문경시청 문화예술과에서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