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처녀할매 순옥할미의 설맞이
- 남효선
처녀할매 순옥할미의 설맞이
“움직일 수 있어야 대목장도 보고 설 제사도 지낼텐디... ”
지난해 11월28일 경북 안동지역에서 구제역이 첫 발생한 후 해를 넘겨 현재까지 구제역으로 살 처분되어 매몰된 가축 수가 200만 마리를 넘어섰다. 18일,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으로 살 처분, 매몰된 가축은 모두 4천251농가의 210만4천448마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첫 발생지인 안동지방을 비롯하여 전국의 축산농가는 일거에 몰락했다.
구제역이 수그러들 기미 없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18일부터 뒤늦게 전국의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백신접종에 나섰다. 축산농가가 몰락한데 이어 50여년 만에 찾아 온 한파와 폭설로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서민경제도 함께 추락했다. 21세기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사회양극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의‘경제살리기’라는 당의정에 휘둘리면서 이제는 감히 입에도 올리지 못하는 금어로 추락했다.
시민사회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마련을 정치권과 정부에 촉구하면서 이를 사회문제로 부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이명박 정부의‘4대강 사업’을 위한 불도저식 개발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논리 앞에서 깃털 뽑힌 참새마냥 갈 곳을 잃은 채 몸을 떨고 있다.
순옥할머니 집은 뿌리도 못 내린 채 떠도는 한 개의 섬
울진군 북면 상당리 산간농촌 마을. 상당마을에서 중당마을로 넘어가는 길목 산 어귀에 허리를 반쯤 숙여야 집안으로 드나들 수 있는 붉은 스레트집 한 채가 마을과는 동떨어져 흡사 외로운 섬처럼 떠있다. 집 마당에는 겨울 해가 아침나절 잠깐 머물다 훌쩍 넘어간 듯 적막만 가득하다. 햇살이 계란 노른자만큼 고여 있는 처마에 웅크려 있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든다. 바깥 인기척을 들은 듯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누구 왔니껴’ 하며 문을 연다. 방안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캄캄하다.
“전기값이 아까와서 불도 안키고 늙은 할망이들과 이래 앉아 있네”
형광등 불을 켜자 예의 백발의 안노인(여노인) 두 분이 정물처럼 앉아 있다가 자리를 내주며 ‘어서 오라’고 반긴다.
“설밑에 늙은 할망구들끼리 앉아 추렴해서 망년회라도 할라하니 당최 움직일 수가 있어야 모 먹고 싶은 거도 사다먹고 할낀데.... 여 있는 세 할망구 모두 다리가 올찮애, 장에 갈 수 있어야제. 우리끼리 이래 애기해놓고 한참 웃었네. 아이고 우리 전 과장왔네. 여 아랫묵에 앉을라”
처녀로 평생 늙은 장순옥(90, 북면 상당리 162)할머니가 뼈만 앙상한 손을 내밀며 불쑥 들어선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우리 세 할망구가 이래 하루종일 얼굴 맞 대고 앉아 살아생전에 물이라도 서로 농게먹고(나눠먹고) 사세 하며 웃었제”
형광등을 켜자 노 할머니의 남루한 세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때가 자글자글 묻은 앉은뱅이 농장과 이불 두 채, 겨울 돕바 한 벌, 그리고 큼직한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빨간색으로 ‘119’라 쓰인‘복지전화기’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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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는 배가 하도 아파 면 서기가 시킨 대로 전화기에 빨간 데를 누르니까네 삐삐 소리가 나길래 겁이 나서 얼릉 전화기를 도로 놓았어. 까막눈이래 가지고 글을 읽을 줄 알아야 전화도 해볼낀데”
순옥할머니에게‘119 구급호출’장치가 달린 복지전화는‘그림 속의 떡’이다.
복지전화는 몇 해 전에 울진군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일괄 지급한‘비상용 전화’이다. 해당 읍면의 당직실로 직접 연결하여 무의탁 독거노인들이 몸이 아프거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살아온 얘기 다하면 숙영전 한 권이래”
처녀할매로 별호가 붙은‘순옥할머니’는 실제는 처녀가 아니다.
열여섯 나던 해에 시집을 갔으나 신랑이 이듬해 죽는 바람에 혼인신고도, 시집에 호적도 한 번 못 올리고 친정으로 되돌아왔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버리는 바람에 아이도 하나 낳아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순옥할머니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생하기 한 해 전에 마을 구장일을 보다가 이념의 물줄기에 휩쓸려 마흔 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인근 막금마을로 시집 간 언니는 먹고살기가 워낙 힘들어 남편을 따라 만주로 갔다. 순옥할머니는 졸지에 어머니와 단둘이 세상에 남게 됐다. 순옥할머니가 서른다섯 나던 해에 오랫동안 병으로 자리에 누워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다. 순옥할머니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셈이다.
“친정 아부지가 전쟁 나기 전에 구장일을 봤는데 그만 탈이 나부렀네. 그 때 장사를 치룰 형편이 안돼서 이웃에 도움 받고 그래서 9일장을 치랬지. 살아 온 얘기 다할라면‘숙영전’한권 다 써야 돼”
숙영전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글자 한게도 모르는데 내가 우째 읽었겠노. 우리 아배 살아있을 때 이야기로 들었지”라고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열여섯에 인근 마을로 시집을 갔으나 이듬해에 남편이 죽고 혼인신고도 못해 시집 호적부에 이름 석 자도 못 올린 채 친정으로 되돌아와 구십이 되도록 처녀로 혼자 살아 온 장순옥 할머니. 순옥할머니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나기 전 해에 동네 구장일을 보다가 이념의 물살에 휩쓸려 세상을 등졌다. 순옥할머니의 삶은 한국전쟁이 빚은 또 하나의 참담이다.
순옥할머니의 얘기처럼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는 우리 국토 곳곳에서 여전히 해원하지 못한 채 한으로 웅크리고 있다. 한국전쟁은 삭아지지 않는 한으로 가슴패기를 얽어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난으로 대물림되어 현실 속에서 육신마저도 꽁꽁 옥죄이고 있는 셈이다. 현재 순옥할머니는 국가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30여만원의 정부지원금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래도 순옥할머니는 건너 마을에 살고 있는 남옥련(91, 북면 상당리 132)할머니에 비해서는 집도 있고 고추 심을 자그마한 텃밭도 있어 나은 편이다. 옥련할머니도 순옥할머니처럼 무의탁 독거노인으로 분류된 국가기초생활수급자이다. 그러나 슬하에 둔 두 아들 중 둘째는 병으로 사망했고 맏아들은 외지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만나,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 마침 같은 마을 사람이 구입했던 터라 집을 비우지 말고 그대로 살라고 해서 살고 있다 한다.
“목심이 왜 이리 모진지 몰세. 시상에 기로운게(그리운 것) 있다면 그저 몸 안 아프고 쌀이나 많이 주면 그거 먹다가 아무도 몰래 죽는 게 원이래.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게도 사람이라고 다달이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지붕도 고쳐주고 전기불도 고쳐주니께 얼매나 좋은지”
순옥할머니와 옥련할머니의 소원은‘그저 아프지 않고 삼시 세끼 쌀밥 먹고 잠자다가 눈을 감는 것’이다.
“설이라꼬 별개있는가..... 아배한테 잔이나 한잔 올리고 날 빨리 데려가 달라고 영개하지”
설은 어떻게 쇠느냐는 질문에 두 할머니는“우리 같은 게 설은 무슨 설이래” 하며 “그래도 예전에 몸이 성할 때는 장작이나 산나물을 내다 팔아서 설 대목장에 술도 사고 고기도 사가지고 아배, 어매 제상도 차렸는데 이제는 다리가 아파 장에도 못가. 한 10년 전까지는 아버지 기일에 어매까지 함께 모셨는데.... 이제는 아배 제사날도 잊어뿌랬어”
“설이라는게 별게 있는가. 그저 해먹는 밥이나 떠 놓고 아배 어매한테 잔이나 붓고 ‘아배요 나로 빨리 데려가주소’하고 영개(빌거나 기원하는 의미의 울진 방언)나 하지”
순옥할머니는 글자를 모른다. 때문에 정부에서 만들어 준 통장을 마을 이장이나 이웃의 아낙들에게 맡겨 장거리를 시키거나 필요한 생필품을 구한다. 올 해도 설에 부모님 제사 지낼 제수고기와 떡을 사다줄 것을 이웃 아낙에게 부탁해놓았다고 한다.
“지자체 복지행정 현실과 동떨어져...”
“지자체의 사회복지 행정이 실제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사실 울진원전에서 지난 2005년부터 주변 지역의 독거노인이나 소녀가장 등 어려운 가정 80여 가구를 선정,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는 펀드로 이들을 보살피고 있는데, 여전히 행정의 기초자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나가보면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가정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른바 차 상위 계층이지요. 그러나 차 상위 계층은 그 실태조차도 제대로 파악돼 있지 않은 것이 일선 복지행정의 현 모습입니다. 일선 읍면사무소에는 3명 이상의 사회복지 요원이 배치되어 있으나 실제 사회복지 업무를 전담하는 요원은 대개 1명에 불과합니다. 다른 요원은 복지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에 매달려 있지요”
독거노인 취재요청을 받고 함께 동행한 울진원자력본부 사랑의 봉사대(대장 강덕구 울진원전본부장)의 실무 일을 맡고 있는 전진수 과장의 지적이다.
“실제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배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이웃과 이웃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셈이지요. 특히 기업의 사회 환원 중에서도 이웃을 통한 지역공동체 건설은 기업이 추구해야 할 또 다른 소중한 가치이자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특히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노인들보다는 제도적 틀에 갇혀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 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 폭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 사랑의 봉사대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 상위 계층을 광범위하게 발굴하여 자그마하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젊은이들 자주 오니께 내사 좋지만....”
“눈길이나 밤에는 오지마, 산중이래서 눈길은 위험해”
울진원전 사랑의봉사대가 펼치는 일은 다양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에게 이동식 목욕차로 목욕을 시키는 일부터 차 상위 계층이나 독거노인, 소녀가장 밑반찬 제공, 노후주택 전선 개보수, 지붕이나 화장실 수리를 비롯하여 무연고 암 투병 환자 의료비 지원에 이르기까지 손길이 미치는 일이면 전 직원이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을 쪼개 힘을 모으고 있다.
“장에 가서 먹고 싶은 닭고기를 사가지고 와 실컷 먹고 싶은데 바람맞을까봐(중풍에 걸릴까봐) 달고기도 못 먹어. 그래도 젤로 기룬 것은 사람이래. 근데 작년부터 젊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서 말동무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그러이 그게 젤로 좋아”
“늙은 할미가 타주는 커피 한 잔 먹으라”며 순옥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선다. 한사코 말려도 할머니는 “그래도 여게도 사람 사는 데라고 내 집에 온 손님인데 물이라도 내 집꺼 한 잔 대접해야 되능겨” 하며 간이 싱크대에서 커피를 타신다.
'화장실 가는게 젤루 힘이 든다'며 옥련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나선다. 화장실로 가면서 옥련할머니는 '우리 늙은이야 젊은이들 자주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집도 고쳐주고 하나까 젤루 좋지만 여기는 산중이니까 눈길이나 밤중에는 절대로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구십을 훌쩍 넘긴 온 백의 할머니 세 분이 온 종일 햇살 한 점 제대로 들지 않는 방안에서 ‘전기 값이 아까워 밤에도 불 써지(켜지) 않고 깜깜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흐릿한 텔레비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살아온 곡절과 남은 곡절을 서로 나누고 있을’순옥 할머니 집은‘마을과도 어울리지 못해 외따로 떨어져 뿌리도 못 내린 채 떠 있는 한 개의 섬’이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