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蜃気楼 ⓒ 혼다 히사시

큰 상처를 남긴 장마가 드디어 그쳤나 했더니 날씨가 무척 더워졌다. 옛날 사람들이 염제(炎帝)라고 하며 두려워했던 강렬한 태양이 여름 하늘 위에 떡 버티고 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열기로 인해 생기는 아지랑이 때문이다. 아지랑이 탓에 멀리 보이는 숲과 산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햇빛으로 인해 마치 연기가 나는 것 같다. 기온 섭씨36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뜨거운 모래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어지럼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지랑이에 흔들리는 풍경이 싫지는 않았다.

가난했던 소년시절, 포장되지 않은 농로를 맨 발로 걷고 있노라면 앞길에서 아지랑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신기루 현상이라고 했다. 걸어가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인데 아무리 걸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 발 앞으로 가면 또 한 발 멀어지는 신기루 현상을 따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참 이상했다. 그것이 ‘신기루’라는 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막에서는 신기루를 오아시스로 착각하여 쫒아가다 길을 잃고 백골이 된 여행자도 있다고 한다. 또 신기루는 바다 위에서 지각될 땐 ‘해시(海市)’라고 부른다고 한다. 수평선 위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나타나기 때문에, 선원들은 항구가 가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방향을 잘못 잡아 난파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신기루는 대기굴절로 인해 지각할 수 있는 환상으로 사람을 홀리기도 한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시를 쓰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환상 속에 살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게 하고 싶다. 거짓인가 참인가는 아무래도 좋다.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는가, 둘 중 하나다. 문학, 특히 시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치 시어로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현실을 굴절시키고, 흔들리게 하고, 독자가 믿는 환상 속에 윤리나 규범을 뛰어넘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형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몇 겹이나 되는 굴레에 속박된 존재이기 때문에, 설령 환상이든 허상이든 한 순간만이라도 거기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자유로운 존재이고 싶다. 내 시를 읽는 독자들이 한 순간이라도 그들 자신을 해방시키는 아름다운 신기루를 지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