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동_영화이야기]워낭소리
• 김만동 2009-04-05

우리 영화판이 ｢워낭소리｣로 시끄럽다. ｢워낭소리｣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IFF메세나상을 받았고,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으며, 2009년 미국 선댄스영화제 월드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진출해 있다. 수상뿐만이 아니다. 관객 동원 3만이면 대성공이라는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가 어느새 200만을 넘어섰으니 어찌 시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개봉 당시 7개 상영관에서 출발해 100개 남짓한 스크린에서 거둔 성과라기엔 가히 경이적이다. 2000개가 넘는다는 상업영화 상영관 스크린 수를 고려해 보면 정말 그렇다.

봉화 골짜기 어느 경치 좋은 마을에 80노부부가 산다. 다리마저 불편한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샘을 낼 정도로 소를 끔찍하게 여기며 그 소와 함께 농사를 짓는데, 소에게 해가 될까봐 농약도 치지 않는다. 40여 년을 할아버지와 공생하던 늙은 소가 마침내 죽게 되자 노부부가 소를 장사지내고 절에서 천도재를 올린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워낭을 들고 빈 밭가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 이게 이 영화의 성긴 줄거리다.

나도 이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저 깔끔한 극영화 한 편을 본 정도였으니까. 블록버스터가 판치는 이쪽에서 분명히 대수롭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내서 꼭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지 않았으니까. 여건이 여러 모로 나아져서 독립영화가 많이 상영되면 될수록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상업영화가 지겨워진 관객들에게 신선한 상상력을 깃발처럼 펄럭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를 건드리는 잔잔한 감동은 분명히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돌아가신 조상님, 친척들이 사시던 시골 마을, 이웃들의 남루한 일상이 머릿속에서 화면과 함께 돌아갔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이미 한 세대 전에 사라진 풍경들이 현재형으로 화면 속에 펼쳐지는 동안 3, 40년 전 과거의 기억들이 샤워처럼 온몸을 적셨다. 뙈기마다 작물을 심고 그 속에 묻혀 살던 사람들, 골골이 울어주던 산새들과 비탈마다 피고 지던 풀꽃들, 자그럽던 매미 울음소리며, 치직거리던 라디오 소리, 눈이 새구럽던 햇살과 더러 씩씩하던 빗줄기, 꽃잎 흩날리며 이마 닦아주던 바람과 까무룩 등성이를 넘어가던 노을, 숨 막히던 달빛과 징그럽던 개구리 울음소리, 가까운 경치마저 자욱이 지우던 안개 따위 말이다. 게다가 더렁더렁 울리던 워낭소리까지.

그렇지만, 영화를 빠져나와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다 그만큼 아름답고, 어느 노인 어느 소라도 그 시절에는 다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금수강산 어느 곳인들 오래 공들여 찍어서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시간과 공간과 정열이, 빛과 소리와 디지털이 어우러지면 이런 화면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과거, 그립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 때를 한 세대가 지나서야 기록해 놓았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노인과 소와 감독의 묵묵한 교감에 바치는 더할 수 없는 경의는 차치하자.

덧붙여 딴지를 걸어 본다. 첫 장면을 빼버리면 영화는 많이 허전하다. 소가 죽었으니 더 이상 찍을 것도 없다. 내가 감독이라도 매듭을 지을 무엇인가를 찾았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키네마드라마다. 이 영화가 가지는 뚜렷한 서사도 그렇거니와 첫 장면인 청량사에서의 천도기도는 뒷이야기와 연결되어 너무도 정교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조했던 존 그리어슨 식의 ‘창조적 해석’이라고 그냥 넘어갈까?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늙은 소와 농사일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의 끈끈한 유대는 또 너무 일방적이다. 소를 아끼는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소사랑은 지극히 할아버지 중심이다. 소가 먹을까봐 작물에 농약도 치지 않고, 소에게 먹일 꼴을 베기 위해 그 몸으로 숱한 불편을 감내하지만 기실, 그건 소를 위한다기보다는 소의 노동력을 위한 것일 뿐이다.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우시장으로 소를 팔러 갔을 때를 되새겨 보자. 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소는 팔려갔을 것이고, 이 영화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에 활기를 주는 유일한 캐릭터가 있다. 끝까지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영화 속으로 들어가 섞이지 못한 할머니 말이다. 할머니의 애교 섞인 푸념은 자주 숙연한 관객들을 키득거리게 만드는데, 그러나 그 투정을 듣다보면 어느새 할머니의 삶이, 경상도 사내와 혼인하여 노동 속에서 일생을 보낸 그녀의 삶이 눈에 선하다. 영화 속에는 소가 끄는 리어카를 함께 타고 가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지청구가 심해지자 단호히 ‘내리’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이지 기막힌 봉건 독재다. 소와 할아버지의 공생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자연히 할머니는 밖으로 밀려났을 테지만, 그러므로 언제나 남성들에게 밑지며 살아온 여성들의 신산스러운 삶이 오히려 도드라진다. 우리는 꼭 카메라로 찍어 화면에 영사해주는 것만을 보지는 않는 것 아닌가.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잘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관객들이여 제발 철 좀 들자. 영화는 정말이지 영화일 뿐이다. 영화로만 봐 주자. 그처럼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 정도로 잘 보았으면 가슴에 품고 때때로 가만가만 꺼내 위안 삼으면 안 될까? 꼭 거기를 찾아가 봐야 하고, 기어이 그분들을 만나봐야 하며, 끝내 그들의 삶에 배 놔라 감 놔라 오지랖을 떨어야 하겠는가? 얼마를 벌어서 어떻게 나누든 짜장 그건 그분들 일이다. 그들끼리 좀 우아하게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부디 물러서시자들!

글쓴이 : 김만동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