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初夏 ⓒ 혼다 히사시

산을 봐도 들판을 봐도 다채로운 초록빛이 쏟아져 나와 공기 중에 섞여 이윽고 풋내 나는 바람이 되어 골짜기를 지나간다. 수영 잎을 흔들고 콩 덤불에 숨어 있다가 빠져나와서는 논두렁길과 언덕을 뛰어가는 모습을 ‘바람의 개’라고 부르련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엄청난 수의 ‘바람의 개’가 뛰어다니고 있다.

꽃에 둘러싸여 있는 놈, 나무에 뛰어오르는 놈, 마을 아이들에게 달려들어 꼬리를 흔드는 놈. 힘이 좋은 놈은 지칠 줄 모르고 나무에 기어오르고, 어떤 놈은 도랑을 건너 산의 경사면을 기어올라 능선을 넘는다.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와 풀꽃들은 그 생각을 씨앗에 맡겨 ‘바람의 개’의 초록빛 체모에 숨겨 산을 넘는다. 그것을 알게 된 나도 먼 옛날의 추억을 ‘바람의 개’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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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 가지에 하얀 꽃봉오리가 빼곡하게 뿜어 나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산호가 산란하는 광경과 겹쳐져 사라졌다. 그렇다, 이것은 계절의 알이다. 이윽고 여름을 부화시키기 위한.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만, 세어보니 한 가지에 오 육백 개의 꽃봉오리가 달려있다. 한 그루의 귤나무 가지가 천개라면, 오, 육십만의 꽃봉오리가 달려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귤나무가 천 그루라고 하면 오, 육억 개의 꽃봉오리가 달린 셈이다. 마치 하얀 꽃봉오리의 은하 같다. 이 은하를 수십억 개의 잎이 둘러싸고 그것을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둘러싸고, 또한 그 도랑사이를 부는 바람이 건넌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있으면서 광대한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런 생명의 소용돌이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을 기뻐한다. 나는 하늘을 향해 어깨를 활짝 펴고 힘껏 숨을 들여 마신다. 그러자 반대로 엄청난 호흡이 나를 호흡하는 착각에 빠진다. 소생시킨다는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