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엄의식_봉화 마을길 걷기]이름에 손색 없는 백천명품마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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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이름에 손색 없는 백천명품마을길
글. 사진/ 엄의식
백천마을은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봉황열목어마을 캠핑장(옛 대현분교)에서 2.8km 남짓 떨어진 곳에, 현불사 주차장부터 백천탐방지원센터까지 약 1.6km 구간에 걸쳐 6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2016년 이 지역이 국립공원태백산지역에 편입되면서 국립공원공단에서는 백천마을을 「제16호 국립공원명품마을」로 지정하였다. 예전에는 마을을 상백, 중백, 하백으로 나뉘어 불렀으며 지금 우리가 백천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은 중백에 해당한다. 화전민 이주 정책으로 대부분의 가구가 떠날 때까지, 78가구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백천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소나무(춘양목)가 벌채되었고, 해방 후에는 영암선 철도 침목을 만들기 위해 참나무를 베어갔던 곳으로 좋은 나무들을 가득 안고 있었던 마을이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74호 봉화군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되어 마을 개발과 외주인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이로 인해 백천계곡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명품마을’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공원공단에서는 2010년부터 ‘명품마을제도’를 시행·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예전처럼 공원구역과 아닌 곳을 정확하게 나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원지역 내 자연을 보존하되 거주 주민들과의 상생을 모색하며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정책으로 백천명품마을 주민들도 만족해하는 듯하다. 상황이 좀 다를 수는 있겠으나 지금은 없어진 주왕산국립공원 구역 내의 유명했던 내원마을이 떠올라 안타까워진다. 마을이주가 결정되어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해 많은 방문객이 다녀갔던 곳이다. 2005~2007년 사이에 이주가 진행되었고 지금은 안내판만 남아있다. 마을의 수질처리장을 만들어 수질을 보호하면서 내원마을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무척 성공적인 명물 상생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립공원공단에서 2010년부터 명품마을제도를 시행했다고 하니 그 때 부터 사고의 전환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치, 사회적 변화에서 오는 개인기본권 및 사유재산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변화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국립공원은 공원 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인 국립공원을 스스로 보전하면서, 잘 보전된 생태계와 경관‧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주민 소득과 국립공원의 가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명품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2010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매도(觀梅島) 명품마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7개소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출처 -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
이 글에서 “백천명품마을길”은 대현리 입구 태백산국립공원 백천분소 주차장 – 현불사 주차장(2.8km) - 백천탐방지원센터(1.6km) - 계곡 깊은 길(인가 2.0km)까지 약 6.4km 길로 정의해본다. 탐방지원센터에서 공원 내 인가까지 약 2.0km 남짓한 『계곡 깊은 길』은 올해부터 산불방지 입산 금지기간 중에도 예외적으로 입산이 허용되는 평탄한 멋진 도보길이다. 작년 겨울에 입산금지 표시만 있어 잠시 거닐려고 들어갔다가 CCTV를 보고 올라온 직원에게 훈계를 들었었는데 올해는 주민들의 요구로 인가까지 개방되어있다.
대개 사람들은 차로 현불사 주차장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현불사까지 오는 길도 계곡과 나무, 바위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차를 백천분소 주차장에 두고 도보로 접근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코스가 시작되는 대현리는 예전에 연화광산이 있던 곳으로, 광산 사택으로 쓰던 50가구 아파트 3채가 덩그러니 빈집으로 남아있다. 주변 광업소 자리에는 일본인 기술자를 위한 벽돌집 숙소도 아담하게 지어져 있어 당시 광산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어렴풋하게 지난 광산촌 사람들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탄기가 남아있는 버려진 작업화, 담벽에 희미하게 남은 아이들의 그림 그리고 깨진 유리조각들... 세월의 무상함과 고단했던 그들의 삶의 애환이 느껴져 절로 숙연해진다.
태백산국립공원 백천분소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 걷다보면 졸졸졸 시냇물 소리에 귀가 청아해진다. 이곳에 열목어(Manchurian Trout)가 살고 있다. 열목어는 물 수온이 낮고 용존산소율이 높아야(최소 6ppm) 살 수 있는데, 여름에는 하천에서 가장 시원한 상류에서 살고 겨울에는 중류지역까지 내려와 월동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봉화 석포면 대현리의 열목어 서식지는 열목어가 살 수 있는 세계적인 남방한계선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덧붙여 이곳 조록바위봉에는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Long-Tailed Goral)과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Eurasian Otter)이 살고 있다. 멸종위기 천연기념물이 3종이나 살고 있다는 것은 이곳이 아주 희귀한 청정지역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징표다.
동물이나 물고기 서식지라는 표지만 있을 뿐 그 자취마저 희미한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의 열목어는 오는 손님들을 배려하며 늘 그 모습을 보여준다. 현불사 주차장 입구에는 열목어 관람대가 있어 쉽게 열목어를 볼 수 있다. 몇 년 전 탐방지원센터 근처에서 열목어를 보았는데, 3월 말에서 4월 초에 중류에서 올라온 열목어는 상류의 평평한 돌밭에 산란하고 현불사 근처에 머물다가 겨울에는 하류로 내려간다고 한다.
옛 대현분교의 자리에 위치한 봉화열목어캠핑장은 캠핑장 겸 연수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백천계곡의 작은 물놀이장도 관리하고 있다. 물이 차가워 오래 들어가 있을 수 없으나 깨끗한 물에 소나무 숲 그늘이 운치가 있어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건 외지인에게는 1일 2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끼리 가볍게 이용하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든다.
물놀이장을 지나면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키가 큰 소나무들이 길 따라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어 광릉수목원길이 연상된다. 분위기가 좋아 차로 지나가던 사람들도 일부러 차에서 내려 걷거나 사진을 찍으며 소나무의 정절을 감상한다. 이 멋진 가로수 길은 현불사 도착 전에 다시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
소나무길을 지나면 약간 넓어진 길 왼편으로 바위벽이 보인다. 이 바위벽 사이사이에 바위떡풀이 있다. 바위떡풀은 줄기 없이 뿌리에서 잎이 나는데 잎자루가 길고 거친 털이 있는 게 특징이다. 7~8월에 꽃이 피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데 바위에 더덕더덕 붙어 자라는 모습이 이름에 걸맞게 소담스럽다. 10년 전에도 야생화를 사진에 담기 위해 왔다가 만났었다. 그때는 내가 서울살이를 접고 10년 뒤 봉화에 터를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이어졌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며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참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현불사 주차장을 지나면서 백천마을이 시작되는데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길이 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에 6가구와 카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가는 길에 국립공원 해설사가 진행하는 ‘생태·힐링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탐방객을 만났는데 어떠셨냐고 물으니, 자유로운 분위기에 편안해서 즐거웠다고 한다. 매 주말 운영하는 이 체험프로그램은 해먹에서 쉴 수도 있고, 요리를 하거나, 냇물에 발을 담그며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는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주말 반나절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면 선택지에 넣어도 좋을 듯하다.
마을 길섶에서 만난 당집과 당나무, 당집은 오래되어 쇠락했으나 길가의 당나무는 누군가의 염원으로 최근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집들은 저마다의 택호를 붙여 멋진 명판을 만들어 놓았다. 『옛집』을 지나면 『끝집』과 『백천탐방지원센터』가 있고 『계곡 깊은 길』을 따라 태백산 경내로 들어간다. 계속 계곡을 따라가면 천제단 가는 길과 문수봉 가는 길이 나눠지고 인가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백천명품마을길이다. 마을 자체가 해발 650m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나 거의 경사를 느낄 수 없는 완만하고 한적한 멋진 길이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다 보면 제일 마지막 집, 즉 올라갈 땐 첫째였던 집이『투방집』인데 10월까지 백천면옥이라는 간이음식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마을 설명글을 보면 투방집은 귀틀집의 다른 말이라고 하며 벌채가 한창이던 시절 이 투방집은 함바집으로, 인부들이 식사하던 곳이라고 한다. 백천면옥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증조할머니께서 사시던 곳이라고 하니 ‘먹는 인연’이 있는 집이다. 이 집의 산나물전은 감자전분에 어수리를 많이 넣어 향긋하고 쫄깃해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석포면 석포양조장의 좁쌀막걸리는 인근 면에서도 일부러 사러 올 정도로 인기가 있는 술이다. 전 한 조각에 좁쌀막걸리 한 잔은 이미 풍광에 거나해진 흥취를 한껏 높여주어 돌아오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준다. 그래서 백천명품마을길은 돌아서면 그리워지고 또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지는 그런 길이다.
- 글쓴이 : 엄의식
-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졸업하고 33년간 직장생활 후에 사과농사를 종신직업으로 선택하였다. 2014년부터 봉화군에서 "봉화 즐거운 사과밭"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