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청송 산소맛길을 찾아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5-04-22

 

구름에 달 가듯이

 

 

청송 산소맛길을 찾아

 

 

   글. 사진/ 강병두

 

*이 글은 산불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2024년) 작성된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산불 피해 지역인 청송에 방문하는 '착한 여행'에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년 전 즘, 경상북도가 주관하는 2023년 ‘우리 동네 명품 먹거리 조성’ 공모사업에 청송군의 『주왕산 산소맛길 조성사업』이 선정되었다. 사업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봄이 만개했을 주왕의 얼굴이 보고 싶어 나들이를 계획했다. 기회가 되면 유명하다는 ‘더덕구이정식’ 또한 맛보자하여 나들이 일정에 넣었다. 청송군에서는 대전사 입구의 식당거리를 ‘산소맛길’이라 명명하면서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 있는 중이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정비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주방천 물길 옆으로 데크를 깔아 등산객들에게는 안전을,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대전사 ⓒ강병두

 

다소 소란한 도로 공사장을 지나 넓은 주차장에 들어섰다. 승용차의 경우 하루 주차 요금이 5,000원이다. 근처 식당에 주차하면 무료이나 다양하게 둘러 볼 계획이라면 주차하고 마음 편히 길을 떠나길 권한다. 가볍게 걷는 산책코스를 다녀와 식당을 찾을 계획이라 좌우로 늘어선 식당과 카페 등 위락시설을 눈여겨보았다. 그 가운데 로또판매점이 보이는데, 누군가 소원을 이루고자 주왕산의 영검한 정기를 모아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찍어 내려가는 상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대전사 ⓒ강병두

 

주왕산국립공원은 주왕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있는 여러 봉우리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중심이 되는 주왕산은 산세가 우뚝 솟아 있으며 기암절벽과 특이한 자연경관이 한 폭의 동양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천년 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계곡, 폭포, 산봉우리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용연폭포 ⓒ강병두

 

주왕산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중국 진나라의 주왕(周王)이 이곳에 피신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신라시대에 주원왕(周元王: 金周元)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설이 있다. 주왕산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는 데에서 신라시대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식당가를 지나니 보물인 보광전이 있는 대전사 절이 나온다. 부처님오신 날이 지척이라 봉축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절을 지나면 맨발걷기를 안내하는 표식이 있다. 초급, 중급, 고급의 세 가지 코스가 있으며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자연을 만끽하러 온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산길이지만 평탄한 길을 걷다가 ‘시루봉’ 바위봉우리를 마주하니 1988년에 출간된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원작: TOUCHING THE VOID, Joe Simpson)라는 산악소설이 생각난다. 

 

영국인 등반가인 조 심슨과 파트너 사이먼 예이츠는 1985년 6월 페루의 안데스 산맥의 시울라 그란데(6,400m) 서벽을 세 번의 비박 끝에 정상등정에 성공한다. 하산도중 조 심슨이 추락해 다리가 부러지고 사이먼이 조를 안자일렌(Anseilen)해서 내려오지만 오버행 빙벽에 매달리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부상당해 매달린 조와 그를 살리려는 사이먼 사이의 목숨을 건 갈등이 생기고 둘 중 한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판단으로 결국 조의 자일을 자르게 된다. 조는 추락하나 기적적으로 살아 베이스캠프로 돌아간다. 조 심슨은 생환한 뒤 여섯 번의 수술을 받았고 의사가 결코 등산을 할 수 없을 거라 했으나 2년 뒤 그는 다시 히말라야를 찾는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살아났지만 과연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라면, 혹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그 등반 후에 조 심슨은 사이먼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소설은 2003년엔 영화로 제작되었고, 2004년 개정판『난 꼭 돌아간다』로 출간 되었으며, 20여년이 흘러 원작의 묵직한 감동을 섬세하게 살린 세 번째 개정판  『터칭 더 보이드』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최근엔 국내에서 연극 작품으로 막을 올려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안자일렌을 같이 하는 사람이란? 암벽이나 빙벽을 오를 때 안전을 위해 서로가 같은 자일을 허리에 묶고 등반하는 사람임을 뜻하지만 이는 단순히 끈을 묶는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자일 묶음은 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지만 같은 자일을 묶는 당신을 무한적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목숨을 담보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평지에서 서로 손을 잡고 산보삼아 걷는 이들을 보며 떠오른 ‘신뢰’에 대한 생각이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까지 흘렀다. 

 

길 우측에서 주방천으로 흘러내려가는 계곡물에는 수달래가 많이 피어 예전부터 화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월 초 축제의 시기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붉은 수달래 꽃으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룬다. 산철쭉으로도 불리는 수달래가 유난히 붉은 까닭은 설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꽃이 주왕의 죽음으로 흘러내린 핏물로 피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전한다. 

 

자하교 갈림길에서 왼편 계곡길을 따라 계속 오르막으로 나아간다. 이어 나타난 용추협곡에는 제1폭포인 ‘용추폭포’가 자리해 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잔도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인묵객이 따로 없이 절로 시가 지어지고 노래 가락이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영상 속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임을 발견하게 된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다람쥐를 친구삼아 평탄한 길을 꾸준히 걷다보면 바위 위에서 자라는 나무가 가끔 보인다.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으라는 문구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오르는 나무를 보면 자연의 에너지와 생명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게 된다. 

 

절구폭포 ⓒ강병두

 

주방천에서 우측으로 빠져 제2폭포인 ‘절구폭포’를 찾아본다. 주변에 이끼가 많아 ‘이끼폭포’라고도 부르는데, 작지만 아담하고 소담스럽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이끼의 생장을 돕고 있었다. 한참을 이름 모를 풀이나 꽃들에 취해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계를 보고 ‘벌써..’ 한다. 시간을 기분 좋게 도둑맞은 것만 같다. 다시 주 진입로를 찾아간다. 금세 다다른 것이 제3폭포이자 ‘용연폭포’라 불리는 곳이다. 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애로를 겪은 참인지 관람을 위한 진입로와 출로를 분리해 데크를 설치하고 안내판도 붙여 놓았다. 산길도 정체 구간이 있다니, 이름이 알려진 명산들에는 조만간 신호등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하산 길에선 올라오는 내내 경험해 보고 싶었던 맨발걷기에 도전했다. 입구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 고급코스부터 중급 거쳐 초급, 역순으로 이어진다. 안전도순이 아닌 강도의 고급이라 만만치 않았지만, 돌 부스러기를 밟고 물웅덩이를 지나고 낙엽 있는 풀 더미를 헤치는 것에서 오는 쾌감이 좋았다. 시도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으나 안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청송 산소맛길 상가풍경 ⓒ강병두

 

몸을 움직였더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걷기에 바빠 미처 보지 못한 귀한 음식이 있다. 가게마다 입구에 진열해 놓은 청송사과막걸리다. 사과를 상징하는 빨강이나 푸른색이 아닌 유혹을 일으키는 노란색 플라스틱 병에 담아 손님을 반기는데, 새콤하고 깔끔한 막걸리 맛이 상상되면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산행객이나 관광객들이 가져가기 좋게 소량으로도 포장해 놓았다. 더덕을 안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옆구리에 한보따리 챙겨 들었다.

 

청송 사과막걸리 ⓒ강병두

 

‘산소맛길’ 30여 곳의 식당에는 거의 비슷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어느 가게가 어떤 음식을 얼마나 더 맛깔나게 장만하는지 특별한 소개가 필요하진 않을 듯하다. 모두가 주왕산에서 직접 캔 산나물과 지역 농산물로 만든 자연식이요 건강식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더덕구이정식’이 대표 메뉴라는 것이다. 가격은 18,000~20,000원으로 상에 올라오는 생선의 종류가 고등어냐 조기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더덕구이는 특유의 알싸한 향과 고추장 발라 구워 아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고사리나물과 호박잎 등 신선한 제철나물 5종과 장아찌 2종류, 알싸한 도토리묵, 곰삭은 고추김치와 입맛 도는 김장김치, 시원하고 칼칼한 물김치 등 먹음직스러운 밑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온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와 토실토실한 생선구이까지 있어 밥을 한공기만 먹고 나오는 사람은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니어서 대전사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더덕구이도 좋았지만 의외의 매력을 선사한 나만 알고 싶은 음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산나물 전이다. 식전이나 식후에 먹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막걸리와도 잘 어울렸다. 고소한 기름을 입힌 바삭하고 향긋한 전을 한입 먹고, 달큰하고 깔끔한 막걸리를 한잔 털어 넣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맛만 보고자 시킨 칼국수도 은은한 버섯 향을 입은 찰진 면이 탱탱거리며 입안에서 씹히는데, 경박하지 않고 묵직하며 구수하다. 주왕산 식도락을 꼭 즐겨보길 추천한다. 

 

 

주왕산에서 직접 캔 산나물과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건강식 ⓒ강병두

 

 

인근의 달기약수에 토종닭과 흑미, 각종 약초가 들어간 ‘흑미약물닭백숙’도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입은 하나고 먹거리는 여러 가지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동냥과 눈동냥으로 음식의 맛과 질을 가늠해 본다. 다음 방문에서는 꼭 먹어보는 걸로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방문한 식당의 주인장에게 청송군에서 추진하는 ‘주왕산 산소맛길 조성사업’에 거는 기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음식을 명품화 하고 안락한 공간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상가지구의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음식을 개발해 주고 또 급격한 변화보다는 기존상권을 세심히 살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부적 조율은 청송군에서 하겠지만 주왕산 상가지구는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지역인 만큼 지역의 로컬푸드를 활용한 특화된 먹거리를 개발했으면 한다. 

 

 

주왕산에서 만난 다람쥐 ⓒ강병두

 

 

오랜 친구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주차장까지 걸어가며 배웅하는 주왕산 주봉이 동무마냥 살갑게 다가온다.

글쓴이 : 강병두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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