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용초골(龍愀谷) 놋요강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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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용초골(龍愀谷) 놋요강 소리
글. 김범선
“이보시오 길을 비키시오. 파란 가마의 선가마꾼인 돌쇠가 험상궂게 인상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뭐라? 네놈들이 뒤로 물러서라.” 턱수염이 시커먼 맞은편 노란색 가마의 선가마꾼이 고함을 지르며 노려보았다.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선가마꾼 돌쇠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옛날 수비면 계리 용소(龍沼)에는 높은 폭포가 있었다. 그 위로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하필 신행길에 오른 가마 두 채가 마주쳤다. 가마는 앞에서 가마를 메고 가는 선가마꾼이 있고 뒤에서 가마를 메는 후가마꾼이 있다. 가마 안에는 시집을 가는 신부가 타고 있는데 장시간 먼 거리를 가다보니 소피가 보고 싶어도 가마에서 내릴 수가 없어 가마 속 한 쪽에는 놋요강을 두었다. 가마는 2인 1조의 신부 운송 수단이다. 문제는 2인 1조 가마가 강을 건너는 좁은 섶다리나 산길에서 마주 쳤을 때 지금의 승용차처럼 조금씩 서로 양보를 하거나 비켜주는 행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가마꾼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먼저 양보하는 가마 속의 신부는 1년 이내에 소박을 맞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가마꾼은 마을에서 제일 힘이 세고 날쌘 사람을 앞세웠다. 가마꾼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좁은 길에서 다투고만 있으니 가마 속의 신부는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파란 가마에 탄 신부는 심성이 곱고 미인이었는데, 노란 가마에 탄 신부는 심술궂고 시기심 많았다.
“이놈들아 비켜라!” 고함을 지르며 돌쇠가 앞으로 돌진했다. 돌쇠는 평소에 성질이 급해 우물도 통째로 들고 마시는 건달이었다. 두 채의 가마가 용소 절벽 위 좁은 길에서 서로 부딪치며 용을 쓰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말았다.
“으악!”하고 가마꾼들과 신부는 비명을 지르며 천길 절벽 아래 용소로 떨어져 모두 죽어버렸다. 그 후 용소 위를 지나는 과객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신부의 울음소리와 “쏴아”하는 놋요강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수비면 계리는 옛날부터 계화낙지(桂花落地)라고 불리며, 마을이 강을 따라 들어선 사시사철 푸른 나무가 울창한 계곡이었다. 용초골(용소)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천년 묵은 뱀이 오래 살아 머리에 두 귀가 달리고, 용이 되어 하늘에 승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이팔도’라는 사내가 나무 한 짐을 지고 용소를 지나가는데, 어떤 낭자가 강가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팔도는 경주 이 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집성촌 이촌골(李村谷)에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혼자 살던 노총각이었다. 이팔도는 강가에 서있는 낭자를 보자 눈이 번쩍 띄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낭자가 살포시 웃으며 다가와, “소녀, 조금 전부터 낭군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는 게 아닌가? 이팔도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하늘하늘 날아갈 듯한 파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강바람에 파란 치마가 나부낄 때마다 마치 파란 나비 같았다.
“소녀 낭군님께 부탁이 있사옵니다.”
“무... 무슨 부탁이요?” 이팔도는 놀라서 낭자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용초골에 살고 있는 천년 묵은 이무기인데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요?”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하고, 홍수가 지면 폭우를 멈추게 했지요.”
“좋은 일을 했구려.”
“옥황상제님이 소녀를 가상히 여기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라 하시는데, 그때마다 이곳에 같이 살고 있는 노란 이무기가 승천을 못하게 방해를 한답니다. 그 이무기는 심술이 궂어 소녀가 가뭄에 비를 오게 하고, 폭우로 홍수를 멈추게 하면 사사건건 방해를 했지요. 그리고 또 이곳에 유난히 안개가 많이 끼는 것도 심술궂은 이무기가 내뿜는 입김 때문이랍니다.”
“못된 이무기 같으니라고. 낭자,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소?” 이팔도의 가슴속에 정의감이 들불처럼 일기 시작했다.
“소녀 잠시 후에 하늘로 승천 할 때 낭군님이 그 이무기에게 이렇게 욕을 해주세요.”
“어떻게 말이요?”
“두 귀도 없는 못된 이무기 놈아, 넌 용이 못돼. 라고 욕을 해주세요. 그럼 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답니다.”
“알았소, 그렇게 하리다.” 이팔도가 분기탱천하여 대답을 하자,
“소녀가 무사히 용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면 보름달이 뜰 때마다 낭군님을 뵈러 이곳에 내려오겠어요.”
“오! 알았소. 알았소. 내 꼭 그리 하리다.”
이팔도가 낭자에게 다가서며 다짐하자, 눈앞에 있던 낭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끼고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더니 용소에서 파란 이무기와 노란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서로의 몸을 감고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팔도는 너무 놀라고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을 땅에 묻고 벌벌 떨며 강가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라 용기를 내어 하늘을 쳐다보니, 노란 이무기가 파란 이무기의 목을 물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을 본 이팔도는 화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황소같이 고함을 지르며 욕을 퍼부었다.
“두 귀도 없는 못된 노란 이무기 놈아, 넌 용이 못 돼!”
노란 이무기가 이팔도의 욕에 놀라 잠시 멈칫하는 순간, 파란 이무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란 이무기의 목을 물어 부러뜨려 버렸다. 목이 부러진 노란 이무기가 용소에 떨어지자, 천지를 진동시키던 번개와 천둥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던 파란 이무기가 이팔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낭군님, 이번 보름달이 뜨면 오겠어요.”
그 후에 사람들은 둥근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용초골 강가에 두 남녀가 서로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계1리 절터길, 용화리 삼층 석탑이 있는 곳을 사람들은 사골(寺谷)이라고 불렀는데, 그곳에는 500년 전에 황용사(黃龍寺)라는 큰 절이 있었고, 사찰 경내가 아주 넓어 이 마을을 절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용소는 현재 절터 길을 따라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계리지(저수지)가 그것이 아닌가? 더듬어 짐작해본다.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