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문화포커스

[안종화_의성 시가기행, 산들에 대한 이야기]빙계계곡 두 번째 이야기, 빙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옛터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4-03-06

안종화와 함께 떠나는 의성 시가기행

의성의 명소 빙계계곡 두 번째 이야기

『빙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옛터』

글. 안종화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이 풍혈(風穴)과 빙혈(氷穴) 앞에서는 10분 이상 서 있지 못한다고 한다. 이 원인의 기본적 부분을 들어보면 지진으로 말미암아 못이 뭍이 되자 이 같은 석굴(石窟)이 생겨나서 혹은 얼음이 얼고, 혹은 바람이 불어 나오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부근 일대에는 사계절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는다고 하며, 경치가 뛰어나게 좋다. 빙계동 입구 좌우에는 기묘한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이 보기 좋게 솟아있고, 쉬지 않고 흐르는 맑은 물이 이편저편으로 은빛 물결을 치면서 흐름에 따라 시인묵객(時人墨客)과 피서객들이 연락부절하고는 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한 바위에는 『빙계(氷溪)』라고 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글도 있다. 지금, 이 빙혈과 풍혈은 동네에 거주하는 윤연구씨가 관리한다.

- 1927. 1. 13.『동아일보(東亞日報)』 기사에서 -

빙계동이라 각석(刻石)이 있는 바위와 경북팔승지일이라 새겨진 비(碑)

환경부 생태조사보고서 등에 의하면, 의성 빙계리 얼음골(천연기념물)은 산기슭 돌무더기로 뒤덮인 너덜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밀양의 ‘얼음굴’과 같은 현상이라 한다. 빙산의 ‘빙혈’과 ‘풍혈’은 절벽 틈 사이 물들이 얼고 녹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된 큰 바위들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형성된 동굴의 특이한 내부 구조로 인한 것이다.

겨울철에는 경사면에 쌓인 암괴들(Talus, 崖錐) 틈에 저장된 찬 공기가 지하의 물을 얼리면서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주변 지역이 오히려 더 따뜻해지고, 여름철에는 제일 아래쪽의 차가운 바람이 외부의 더운 공기와 만나 물방울과 얼음을 만들어 한겨울을 느끼게 하는 등 희귀하고 신비한 기상 현상을 보인다.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던 옛날에는 무척 신비로웠을 것이다. 계곡 형성과 관련하여 하나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용의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에 생겼다고 하는 용소

아득한 옛날 힘센 장수와 큰 용이 산중에서 개울을 내기로 의논하였다. 용은 서쪽으로 낼 것을 주장하고, 장수는 북쪽으로 낼 것을 주장하였으므로 서로 뜻이 맞지 않았다. 둘은 다투다가 결국 힘내기로 둘 중 산맥을 빨리 끊어서 내(川)를 만드는 쪽이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으로 하였다.

용은 꼬리를 쳐서 서쪽 산맥을 끊어 내기로 하였고, 장수는 쇠스랑으로 북쪽 산맥을 끊어 내기로 하고 대결을 시작하였다. 용은 끝까지 꼬리와 몸을 움직여서 서쪽 산맥을 끊고 하천을 내는 데 성공했으나, 그만 용의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에 개울에 큰 소가 만들어졌다. 이를 두고 훗날 사람들은 용추(龍湫) 혹은 용소(龍沼)라 하였다. 반면, 힘센 장수는 쇠스랑으로 북쪽의 산맥을 너무 급하게 끊다가 자루가 부러지는 바람에 개울을 내지 못하고 용에게 지고 말았다. 지금도 북쪽 능선에는 쇠스랑에 찍힌 자국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바위는 그때 깨진 바위들이라고 한다. 웅덩이였던 자리는 지금의 마을이 되었다. 한편 그때 북쪽으로 내를 내려고 용과 싸운 것은 장수가 아니라 부처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부처가 쇠스랑으로 찍은 자국이라고 하여 부처막(佛頂)이라 부르기도 한다.

참고문헌 : 유증선 『영남의 전설』

빙계는 신비스러운 자연현상으로 예부터 납량(納涼) 장소로 유명했는데,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서 놀던 이후 많은 시인과 이름난 선비들, 그리고 피서객이 드나들곤 했다. 『호곡집(壺谷集)』에 ‘빙계기이(氷溪記異)’라고 하는 시가 있다. 기이하다고 여긴 옛사람들이 느낌을 묘사하고 있다.

풍암과 빙혈이란 그 이름 옛날에 들었다

유월에 찬 기운이 골짜기에서 생기다니

자연의 이치는 본래 다 알기 어려운 것

조물주가 여기에 특별히 다정하네

만일 지신(地神)이 청액(淸液)을 뿜어냄이 아니라면

정히 이는 산신령이 수정을 쌓은 게지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응당 딴 세계로다

겁회를 누가 다시 곤명으로 분변하리

風岩氷宂舊聞名

六月凌寒萬壑生

天理本來難盡究

化翁於此太多情

如非富媼噓淸液

定是山靈蘊水精

開闢以前應別界

劫灰誰復辨昆明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빙산사(氷山寺)가 등장한다.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때인 1270년[원종11]에 이미 사찰이 자리하였다. 이후 도교·유교와도 관련되면서 유·불·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 보자.

빙계계곡(氷溪溪谷) 입구 왼쪽에는 물레방아(水碓; 빙계 5경)가 있고, 오른쪽으론 바위 절벽이 있다. 그 아래에는 많이 메워지긴 했으나 오랜 세월 빙계수(氷溪水)에 닳아 반구형으로 움푹하게 파인 곳이 있다. 용의 머리가 부딪치면서 생겨난 웅덩이라 용추(龍湫; 빙계8경) 또는 용초(용소)라 하는 곳이다. 또 용이 등천하기 이전 잠시 쉬었을 만한 곳에는 유교문화 사업으로 서원을 중창하면서 문루, 강당, 동재, 내삼문, 사당 등이 복원되어 있다.

전설의 그 옛날 개울을 낸 용이 등천할 때 만들어졌다는 용로(龍路)를 따라 형성된 계곡에는 주빙하기후(周氷河氣候) 환경 하에 형성된 바위 부스러기들이 쌓여있고, 물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빙계동(氷溪洞)’이란 글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는 높이 5m 정도의 큰 바위가 있다. 구전(口傳)에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새겼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새긴 글이라는 설이 있는데, ‘계(溪)’ 자(字)의 크기는 76×94㎝, 깊이 2.7㎝이다. ‘빙계동(氷溪洞)’ 전체 글자 크기는 282×94㎝이다.

보물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

이어 철교가 보이고, 반대편에 마을이 있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며 오른쪽을 바라보면 의각(義閣; 빙계 4경)이 있다. 의각을 지나치면 평탄 지형이 전개되며, 보물 의성 빙산사지 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 빙계 6경)이 있다. 한때 국보였던 높이 8.15m의 이 석탑은 보물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의 형식을 모방한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규모가 작고 부분적으로 생략된 곳이 있다.

이 탑은 1973년에 완전히 해체․보수하였는데, 그때 3층 옥개석 석함 속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9.9cm 높이의 금동사리외합 안에는 3.9cm 높이의 푸른 유리 사리병이 들어 있었고, 그와 함께 불상 광배로 보이는 얇은 금동판과 풍탁 등 여러 공양구가 함께 나왔다. 전형적인 상자형 사리장치로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 탑이 있는 것은 과거에 빙산사(氷山寺)가 있었기 때문이다. 1407년[태종7] 12월 의정부에서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전국 88개의 자복사(資福寺)를 명찰(名刹)로 대신할 적에도 절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사찰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절을 찾는 이들이 드물었는가 보다. 포은집(圃隱集)에 ‘빙산사 주지에게 부치다.’라는 제목의 시가 전해오고 있다.

가을 산의 기세는 수천 층도 더 되지만

산중의 벽안승과는 어찌 같을 수 있으랴

종일토록 주지 방에는 일 하나도 없는데

사미승이 때때로 불법을 다시 물어보네

秋山氣勢幾千層

孰與山中碧眼僧

盡日上房無一事

沙彌時復問傳燈

이후 임란 때인 1592년[선조25] 권응수(權應繡) 장군에 쫓기던 왜군이 상주로 철수하며 절을 불태운 까닭에 폐사되었다. 폐사 한 뒤 서원이 자리하였기에 빙산사지(氷山寺址)를 빙계오현단소(氷溪五賢壇所)라고도 한다.

왼쪽부터 금동방형투각사리기, 금동보주형광배, 청동풍탁, 금동제동곳, 녹유리사리병.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단소 앞 큰 나무 아래에는 너비 1.2m, 높이 2.4m의 ‘어진 바위’가 있다. 정오가 되어 햇볕이 강하게 비칠 때이면「인(仁)」자 모양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이라 한다. 소산 이광정(李光靖)의 『소산집(小山集)』에 전해오는『문소산수가유기(聞韶山水可遊記)』라는 기행문에 “옛날부터 인자석(仁字石)이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래 이전부터 인암(仁岩; 빙계3경)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인(仁) 자 형태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어진바위

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 즉, ‘사람다움’의 본질을 인(仁)으로 보았다. 따라서 인(仁)은 사람이 당연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禮智信) 가운데도 으뜸이다. 인(仁) 자(字)를 그림자로 드리워 세상의 인속(人俗)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바위가 있었기 때문일까? 폐사지에 서원이 들어섰다.

맨 처음 1556년[명종 11년] 장천(남대천)의 상류 지역 구봉산 기슭에 서원을 창건하였으며, 김안국(金安國)을 존향(尊享)하였다. 1576년[선조9]에 ‘장천(長川)’이라 사액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0년[선조33]에는 이곳 빙산사지(氷山寺址)로 옮겨 ‘빙계서원’이라 이름을 고치고, 이언적(李彦迪)을 추향하였다.

1689년[숙종15]에는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장현광(張顯光)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들은 모두 관향(貫鄕), 외가향(外家鄕), 취향(娶鄕) 또는 군재(群宰)로서 의성과 인연 깊은 분들이었다.

남몽뢰(南夢賚)가 쓴 기문에 의하면 이건 할 당시 전란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으나 경내에 강당, 동재, 서재, 전루(前樓), 동몽재, 공수청(公需廳) 등 총 30여 칸 규모였다고 한다. 그 뒤 서루(西樓), 강당 등을 중건하며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에 훼철(毁撤)되었다.

유교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중창한 빙계서원

서원으로 변화한 이곳을 방문한 오봉 신지제(梧峯申之悌)는 당시 빙산사 벽에 윤상국이 쓴 짧은 율시를 차운하였던 것을 기억하고는 다음과 같이 감회를 적은 시를 지었다.

빙산사의 모임 문득 떠올리니

어느덧 삼십 년이나 지났네

고금의 일은 꿈처럼 덧없고

삶과 죽음에 시름 금할 수 없네

비루한 불법일랑 쓸어버리고

그윽한 학궁을 마련하였네

무더운 날에도 얼음 같은 바람

가서 잠시나마 머물렀으면

빙忽憶冰山會

居然三十秋

古今惟有夢

存歿不禁愁

汛掃千燈陋

安排一畒幽

冰風三伏日

欲往少遲留

공터를 지나 마주한 산자락에는 석조 건물이 하나 있고, 건물 내부에 빙혈(氷穴; 빙계 1경)이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오층석탑 감실에 있던 금동불좌상은 훔쳐 가 버리고 남겨둔 불대좌(佛臺座) 방면으로 계단을 오르면 풍혈(風穴; 빙계2경)이 있다. 전설에 부처가 낸 쇠스랑 자국이라는 불정(佛頂 : 빙계 7경)으로 향하는 길에 주춧돌 흔적만이 남은 태일전(太一殿) 옛터가 있다.

1434년[세종16] 건립한 이래로 매년 정월 보름에 중앙에서 향(香)을 내려 하늘에서 가장 존귀한 신인 천제(天帝)에 제사 지내던 태일전은 1479년[성종10] 충남 태안군 백화산으로 옮겨갔다. 태일은 태일성(太一星)이 하늘에 있는 궁을 45년 동안 머물다 옮겨 다닌다고 여겨 태일성이 머무르는 지역에 건립하였다. 구방(九方) 가운데 손방(正東과 正南사이)에 있던 의성의 궁수가 차서, 곤궁(서남쪽)에 있는 백화산 서남쪽 고성사 북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빙산의 명승은 나라의 으뜸이라(氷山名勝擅吾東)”고 칭송하던 신인손(辛引孫)은 다음과 같이 태일전을 노래하였다. 제때 비가 오고, 순조롭게 바람 불기를 기원하면서…

태청(하늘)의 새 전각은 빙산에 창건되었고,

하한(은하수)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둥글게 돌아가고 있다

오색 보석이 내는 빛은 인간 세상에 이어졌고

생명의 꽃 덮개들은 중간의 자미성을 옹호한다

마음을 재개하기 열흘, 황궁의 섬돌로 달리고

축수하기를 천년, 황제의 용안을 우러러 절한다

원하옵기는, 비바람 순조롭도록

화기애애함이 인간세계에 가득하도록

太淸新殿創氷山

河漢昭回列定環

五色寶光連下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