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현주_파리 통신]빈센트 반 고흐의 자취를 찾아서
- 김현주
프랑스식 달력으로 11월은 이 세상을 하직한 영혼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1월 1일은 ‘뚜생’이라고 불리는 ‘모든 성인들의 축일’이며, 이튿날인 2일은 모든 고인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프랑스의 국교가 가톨릭인 만큼 여기서 성인이란 가톨릭 성인들을 의미하지만, 뚜생은 국가공휴일로서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너나할 것 없이 가족들의 묘를 찾아가는 날이다. 이러한 11월을 맞이하여 이국땅인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 화가 반 고흐가 말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와즈를 소개하고자 한다.
▲ 오베르성에서 보이는 오베르 쉬르 우와즈 시 풍경
반 고흐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이곳에서, 1890년 7월말 권총으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두 달 동안 정신병 치료를 받았으며, 이 기간 동안 마을 주변의 풍경을 담은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곳은 일 년 내내 전 세계 각지에서 고흐를 아끼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상업화되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200년 전 반 고흐가 캔버스를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곳을 따라 마을을 거닐 수 있도록 장소마다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원작이 소장되어 있는 대형미술관과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마을의 표지판
그러면 마을 주변을 산책하면서 풍경을 담은 사진을 따라 여정을 시작해보자. 먼저, 마을 중심에 위치한 오베르 노트르담 성당은,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16세기가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그 자체로 로만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이지만, 작은 도시에 있는 이 성당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반 고흐의 작품〈오베르 쉬르 우와즈 성당〉이다. 현재 성당의 종탑이 보수 중이지만 참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 오베르 쉬르 우와즈 성당, 오베르 성당의 측면
1890년 남쪽 프로방스 지방을 떠나 가쉐 박사의 호의로 반 고흐가 말년의 70일을 머문 이곳 오베르에서 남긴 작품 수는 80여점에 이른다. 그러니 매일 1점 이상의 작품을 그린 셈이다.
▲ 반 고흐 공원, 반 고흐 동상
초췌한 모습으로 캔버스를 들고 오베르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을 고흐를 상상해보며 마을 여기저기를 걷다보면, 반 고흐 덕분에 오베르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도시가 명소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고흐 그림3, 고흐 그림3의 모델
▲ 고흐 그림2, 고흐 그림2의 모델
이 마을에 정착한 기간 내내,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와즈 시청 맞은편에 있는 라부씨 여관에서 머물렀다. 현재 ‘반 고흐의 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개인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반 고흐 생전의 간소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여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 여관
▲ 여관 벽에 쓰인 문구. 여관의 벽에는 «화가 반 고호가 이 집에서 살았으며 1890년 7월 29일 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쓰여 있다.
오베르 쉬르 우와즈는 당시 반 고흐뿐만 아니라, 폴 세잔(Paul Cezanne), 카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 오노르 도미에(Honoré Daumier)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요람이었는데, 여기에는 찰스 프랑스와 도비니(Charles François Daubigny: 1817-1878)가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1854년 이곳에 정착한 도비니는 야외스케치를 처음 시도하였고, 우와즈 강의 수면 위에 비친 빛의 현상을 보고 이것을 표현하는 기법을 모색하였으며, 이것은 후일 인상주의 운동으로 이어진다.
▲ 도비니 아뜰리에 입구, 도비니 아뜰리에 표지
반 고흐는 마을 뒤편에 있는 오베르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묘지로 가는 길목에 펼쳐지는 넓은 들판은 바로 그의 유명한 그림〈까마귀가 있는 밀밭〉의 배경이다. 현재는 밀밭을 추수한 후라 황금빛 밀밭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200년이 지난 오늘도 까마귀 떼들이 들판을 찾고 있었다.
▲ 오베르 들판 1, 오베르 들판 2
오베르 공동묘지에 들어서자마자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 두 형제의 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반 고흐 형제 묘
▲ 오베르 공동묘지 전경
묘지를 나오면 농가와 화원이 보이는데, ‘뚜쌩’을 며칠 앞둔 화원에서는 국화꽃 수확이 한창이었다.
▲ 국화 화원
며칠 후면 저 국화꽃들이 프랑스 각지의 묘지를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이국의 한적한 마을에서 이 세상의 유배생활을 스스로 마감한 반 고흐의 묘에도, 그를 아끼는 이들이 국화꽃 화분을 들고 찾아오리라.
- 글쓴이 : 김현주
-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한용운, 윤동주, 박목월 등의 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출판하였으며, 프랑스의 서적을 한국에 번역하여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번역 출판된 책으로는 논어와 성서 비교서가 있다. 파리제3대학(소르본느 누벨)대학에서 번역학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