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별빛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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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 읽기
별빛속에
글 백소애
통기타 교본을 보며 코드를 짚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C-Am-Dm-G7으로 이어지는 슬로우록 주법의 기타코드를 말이다. 그것은 기타를 처음 배울 때 나오는 전설의 바이블 코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외 많은 노래를 이 코드에 대입할 수 있다. <별빛속에> 마지막 장을 덮은 날, 고교생이었던 나는 그 벅찬 감동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설픈 슬로우록 주법을 이용해 작사, 작곡을 했다. (정말로!) 노래를 완성한 후 당시 제일 잘나가던 가수 신승훈에게 연락해서 꼭 이 노래를 부르게 하자고 다짐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가소로운 일이지만 당시엔 제법 진지했다.
오락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 만화는 그야말로 인기였다. 특유의 종이냄새가 가득한 만화방에 들어서면 책장 가득한 만화 더미 속 저마다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순정만화, 소년들은 명랑이나 스포츠, 무협만화, 성인 남자들은 무협지 코너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가끔 짜장면 먹방을 시전하곤 했는데 어린 우리 눈에는 가진 자의 여유가 느껴져 무척 부러웠다. 만화방 전성시대가 지나고 IMF가 터지면서 만화대여점 시대가 왔다. 반납이 늦으면 연체비를 내야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인기 만화가 들어오는 날에는 엄청난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 시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만화가 중의 한 명이 바로 <별빛속에>의 강경옥이다. <별빛속에>는 강경옥 작가가 무려, 고2 때 구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맨스를 전제로 순정만화의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은 SF판타지 만화이다. 강경옥 작가는 이후 <노말시티>라는 SF판타지를 또 내놨는데 마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를 봤을 때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android) :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는 로봇 또는 공상 과학 소설 따위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와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고찰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져주었다.
<별빛속에> 주인공은 17세의 유신혜이다. 신혜는 천문학 교수인 아빠와 함께 사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고등학생이다. UFO와 외계인, 우주 과학에 관심이 많고 태권도가 특기며, 아빠와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행복이자 취미다. 어느 날 그런 신혜의 집에 초능력자인 사라와 레디온이 기거하게 된다. 안하무인 사라와 그런 사라의 보디가드 같은 레디온의 관계가 의아한 가운데 신혜의 주변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동네에 UFO가 떨어지고 사라와 레디온은 또 다른 초능력자, 외계인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사건은 ‘카피온’이라는 별에서 잃어버린 제1왕녀를 찾기 위해 레디온을 비롯한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오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들은 왕녀가 있는 곳이 ‘지구’라는 얘기만 듣고 12년간 생물이 살고 있는 행성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들이 찾는 왕녀 ‘시이라젠느’의 조건은 첫째 인간형의 여자, 둘째 초능력자, 셋째 검은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여야 하고 마지막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가 다가오면 초능력이 강해지고 일시적으로 피의 색깔이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것. 여기에 부합하는 지구인 동양계 여자를 찾는 과정에서 신혜가 왕녀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지구에서 103만 광년이나 떨어진 행성 카피온으로 건너간 신혜에게는 왕녀라는 영광이 남은 것이 아니라 왕권을 향한 치열한 암투와 고단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여왕으로 인정받거나 권력을 누리기도 전에 카피온을 위협하는 무기를 블랙홀로 옮기는 임무를 ‘스스로’ 홀로 맡으며 쓸쓸히 우주 속으로 떠난다.
시이라젠느의 마지막은 마치,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우주로 파견된 굴착기술자들과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마겟돈>(1998)과 미확인 혜성의 지구 충돌에 맞선 인간군상을 다룬 <딥 임팩트>(1998)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별빛속에>는 이들 영화처럼 직관적이지도 신파적이지도 않다. 그 결이 다른 이유는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철학적 사유, 존재의 근원을 묻는 작가의 섬세한 사고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열여덟의 우리는 독자의 기대를 깨고 기어이 ‘새드 엔딩’을 선사해버린 작가에 대한 원망과 슬픔으로 한동안 우울모드로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군다나 웃는 얼굴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레디온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과 가슴 아픈 운명으로 밤을 새웠던 기억…….
‘안녕바다’라는 록 밴드의 노래를 좋아한다. ‘쏟아져 내린 도시의 밤으로 쏟아져 내린 나의 마음이 이렇게나 자라버렸고’ 3) 안녕바다의 노래 <별 빛이 내린다>, 2009
열여덟의 나는 파란 피를 흘리는 소녀에게 빠져들었다. 1987년 처음 선보여 순정만화계에 핵폭탄을 터트린 <별빛속에>. 인터넷도 없고 신간 정보를 얻기가 힘들던 시절, 대본소(만화방) 만화의 다음 호 발간을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시 <별빛속에>를 읽어보니 30여 년 전 서사는 여전히 먹먹한 감정에 빠져들게 해서 ‘지나간 추억에 따스함 위로, 별빛이 내린다.’
강경옥 지음/ 별빛속에1~8권/ 애니북스/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